아프고 고단한 젊음의 초상…“그래도 연극은 웃겨야 돼요”
연극 ‘미미의 미미한 연애’ 강훈구 연출가

객석에서 탄식이 새어 나온다. 딸에게 폭력을 휘둘러 오래전 이혼한 남편이 그립다며 집을 나가는 엄마라니. 하지만 아동학대 트라우마에 갇혀 살던 ‘미미’의 등을 문밖으로 떠민 건 역설적이게도 이런 상식 밖의 엄마다.
우울한데 엉뚱해서 웃음이 터지고, 연극적인데 현실적이라 마음 아프다. 극단 공놀이클럽이 22일 막을 올린 신작 ‘미미의 미미한 연애’ 얘기다. ‘영어덜트 연극’을 표방하며 요즘 청년들의 속사정을 속사포 호흡으로 무대에 펼쳐내고 있는 강훈구 연출. 지난해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으로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수상한 이후 가장 핫한 연극인이 됐다. 각색에 참여한 두산아트센터 기획 연극 ‘원칙’이 27일 개막했고, 상반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연극내일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하반기 서울시극단, 국립극장과의 협업 등 공공기관 러브콜을 한몸에 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미디어 교육 연극 ‘점프X컷’ 연출도 맡았다.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사진 공놀이클럽]](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30/joongangsunday/20260530002819989xzdt.jpg)
‘미미의 미미한 연애’는 23세 조민송 작가와 2년에 걸쳐 함께 개발한 작품. 대학 강의를 나갔을 때 연극을 하고 싶다며 찾아온 학생이 내민 짧은 습작이 신선했단다.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도 서동민 작가의 데뷔작이었고, 민간 신분으로 드물게 ‘안착한 청소년극 페스티벌’이라는 신작 개발 사업도 하고 있으니 ‘작가 머리올려주기’ 사명이라도 있는 걸까. “신춘문예 응모자가 두 배로 뛰었다죠. 작가 지망생이 정말 많고, 저도 작가 출신이라 그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거든요. 모든 게 작가로부터 시작되는데, 신작을 개발해주는 과정은 거의 없고 연출가 중심으로 돌아가는 데 열받아 연출을 시작했고, 저라도 신작 개발 모델을 만들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힘들긴 하네요.(웃음)”
![‘미미의 미미한 연애’. [사진 공놀이클럽]](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30/joongangsunday/20260530002821283vaxh.jpg)
무대가 비추는 현실의 무게를 날려버리는 건 코믹한 대사들. “공포영화를 굳이 왜 찾아서 봐. 도태되는 이 삶이 공포인데” “비 온 뒤에 땅이 굳고, 화장품은 뚜껑을 열어놓으면 굳는다”는 리드미컬한 언어유희에 빵빵 터진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웃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심각한 이야기에 너무 빠져들지 않게, 멀리서 볼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장치가 웃음이잖아요. 못 웃길 때 제일 속상해요. 애초에 연극을 좋아한 이유도 다같이 웃을 수 있는 공간이라서였거든요.”
강 연출은 고려대를 나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을 배웠다. 고교시절 영화를 동경했지만 이웃 여고와 영어연극 연합동아리를 하며 맛봤던 연극의 즐거움이 여기까지 끌고 왔다. “제가 자란 경주에 강우석 감독님이 운영하는 대왕시네마라는 극장이 있었어요. 거기 걸리는 모든 한국영화를 보며 로망을 품었죠. 감독님들이 다 서울의 좋은 대학을 나왔길래 저도 공부를 열심히 했고요. 막상 기회가 왔을 때 제 호흡과 안 맞는단 걸 알았어요. 연극은 제가 쓴 대본을 1년 안에 다 올릴 수 있지만, 영화는 계약해놓고 기다리다가 엎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죠. 저는 절대 황동만같은 사람은 못될 것 같아요.(웃음)”
영화도 AI가 만드는 시대일수록 연극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프로들이 하는 엘리트 연극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할 만 한 게 연극이라서다. ‘안착한 청소년극 페스티벌’ 등 자신의 프로젝트에 시민과 청소년을 적극 끌어들이는 이유다. “누구든 소자본으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연극이잖아요. 숙련된 서커스같은 작품도 좋지만, 각자의 삶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할 공간으로서의 극장도 필요하거든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깨는 재미도 있죠. 유럽에 가보면 지역 중심에 극장이 있고, 사람들이 모여서 연극을 만드는 문화가 있잖아요. 우리나라도 지역의 극장들이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유주현 기자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