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고글, 머리띠로 사용한다고요?…“45년 한국인 얼굴 분석해 만든 선글라스는 달랐다”

이윤정 기자 2026. 5. 29.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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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D 페이서 선글라스. WTD 제공

지난해 러닝을 취미로 시작해 최근 하프마라톤을 준비 중인 직장인 송수빈씨(46·가명)는 유명 해외 브랜드의 고가 러닝 고글을 구매했다. 하지만 몇 차례 착용 후 결국 고글을 머리 위에 얹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다. 달릴 때마다 프레임이 광대뼈를 반복적으로 눌렀고, 땀이 차면 고글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현상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송씨는 “처음엔 러너들이 많이 쓴다고 해서 샀는데 장거리 러닝을 하면 얼굴이 아플 정도였다”며 “결국 벗고 뛰거나 머리띠처럼 올려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국내 러닝 인구가 급증하면서 스포츠 아이웨어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시중 제품 상당수는 해외 디자인을 기반으로 제작돼 한국인 얼굴형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얼굴 광대뼈에 닿거나 달릴 때 흔들리고, 장시간 착용 시 압박감이 심하다는 불만이다.

이 같은 시장 틈새를 파고든 곳이 국내 스포츠 아이웨어 제조기업 한국OGK다. 업계에서는 ‘한국 스포츠 고글 산업의 뿌리’로 불리는 회사다. 스키·오토바이 고글부터 사이클·러닝 아이웨어까지 45년 가까이 스포츠 광학 제품을 만들어왔고, 국내 스포츠 선글라스·고글 시장의 절반 이상이 이 회사를 거쳐 생산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WTD 홈페이지.

현재 국내 아이웨어 시장 상당수는 중국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생산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해외 인기 제품 디자인을 모방한 이른바 ‘카피형 스포츠 고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스포츠 선글라스용 금형 설계부터 플라스틱 사출, 고기능 광학 렌즈 개발까지 자체 기술로 대응 가능한 국내 기업은 사실상 한국OGK이 유일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스포츠 아이웨어 생태계 상당수가 한국OGK를 거친다”며 “실제 국내 주요 스포츠 아이웨어 브랜드 상당수가 한국OGK 출신 인력이나 생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한국OGK는 수십년 동안 축적한 한국인 얼굴형 데이터를 분석해 2015년 스포츠 아이웨어 WTD를 선보였다. ‘기존 질서를 뒤흔들겠다 (Willing to Disrupt)’는 브랜드명처럼 패션 중심으로 흘러온 스포츠 아이웨어 시장을 다시 ‘퍼포먼스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방향성을 담았다. 이지훈 한국OGK 브랜드팀장은 “WTD는 단순 패션형 스포츠 선글라스가 아니라 ‘기록을 위한 장비’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40년 넘게 한국인의 얼굴을 연구하고 데이터를 축적해 가장 한국인 얼굴에 맞는 스포츠 고글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글로벌 1위 스포츠 브랜드용 OEM도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경찰용 스포츠 아이웨어 공급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는 등 세계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팀장은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선글라스 금형과 스포츠 렌즈 노하우를 모두 갖고 있다”면서 “HD급 렌즈 왜곡 제어 기술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포츠 고글은 일반 패션 선글라스와 달리 순간적인 시야 왜곡도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빛 굴절 편차를 최소화하는 광학 설계 또한 WTD의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WTD 페이서 선글라스. WTD 제공

WTD는 지난해 육상선수 김민지와 협업한 ‘레디(Ready)’ 모델을 출시해 러너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었다. 전문 러닝 기업 ‘런콥(RunCop)’ 코치진, ‘뉴발란스 북촌 런 허브’ 트라이얼 이벤트 등을 통해 실제 러너들의 피드백을 수집하고, 이를 제품 개발에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정선군청 육상단을 비롯해 로드바이크 프로팀인 양양군청팀과 연천군청팀, 그리고 장애인 국가대표팀 선수단 등에 스포츠 아이웨어를 공식 후원하며 전문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입지도 넓혀왔다.

최근 WTD가 선보인 ‘페이서’ 모델은 러너들의 실제 불편 해결에 초점을 맞췄다. 제품 무게는 21g 수준이다. 프레임을 최소화한 프레임리스 구조에, 방풍 기능까지 렌즈 자체에 구현했다. 일반 스포츠 고글처럼 두꺼운 프레임으로 바람을 막는 대신, 렌즈 곡률과 구조 설계를 통해 눈 안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줄였다는 설명이다.

이 팀장은 “보통 방풍 기능을 강화하면 프레임이 무거워지고 앞으로 쏠리는 문제가 생긴다”며 “이번 제품은 렌즈 자체가 기능을 담당하도록 설계해 무게 균형을 최대한 맞췄다”고 설명했다. ‘한국인 얼굴형’ 맞춤 디자인도 핵심 차별점이다. 글로벌 스포츠 아이웨어 시장을 주도하는 서구권 브랜드 상당수는 서양인 얼굴 기준으로 설계돼 한국인 착용 시 광대 압박이나 코받침 들뜸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기존 해외 제품은 얼굴 양옆 광대에 닿는 경우가 많아 실제 러닝 중 불편함을 호소하는 소비자가 많았다”며 “한국인의 평균 얼굴 길이와 광대 구조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팅 각도를 새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러닝 시장 변화도 제품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 스포츠 고글이 사이클·등산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젊은 러너층이 빠르게 늘면서 ‘가볍고 흔들리지 않는 착용감’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이 팀장은 “예전에는 스포츠 고글이 기능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일상 착용까지 고려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며 “하지만 여전히 많은 제품이 실제 운동 성능보다 패션 액세서리에 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닝 아이웨어의 본질은 결국 기록과 퍼포먼스”라며 “달릴 때 흘러내리고 흔들리는 선글라스가 아니라, 기록에 집중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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