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영남·제주 기후 공약, 과장했거나 침묵하거나

정도영 기자 2026. 5. 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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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영남·제주 광역단체장 후보의 기후·에너지 공약을 들여다보면 지역마다 온도 차가 크다. 재생에너지 공약이 쏟아지는 호남에서는 탈탄소보다 산업 유치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 석탄·조선·철강 등 전환 이슈가 집중된 영남에서는 정작 관련 공약이 드물다. 제주에서는 해상풍력이 선거 최대 쟁점이 됐지만 규모의 현실성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호남·영남·제주 기후 공약, 과장했거나 침묵하거나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재생에너지 공약, 본심은 탈탄소 아닌 산업 유치

29일 <뉴스펭귄> 취재를 종합하면 호남·영남·제주 지역 기후·에너지 공약에는 두 가지 뚜렷한 경향이 나타난다. 재생에너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탈탄소가 아닌 산업 유치·지역경제 활성화의 수단으로 제시하거나, 기후·환경 현안이 가장 직접적인 지역에서도 관련 공약을 아예 내지 않는 경우다.

호남은 세 권역 중 기후 공약의 양이 가장 많지만 RE100·재생에너지가 반도체·AI 기업 유치를 위한 포석인 경우가 많았다. 영남은 석탄발전, 조선업 탈탄소, 철강 전환 등 에너지전환 이슈가 가장 집중된 권역인데도 광역 후보 대부분이 이 의제를 꺼내지 않았다. 제주는 해상풍력이 이번 선거의 실질적인 쟁점이 된 유일한 지역이지만, 그것도 한 후보의 공약을 다른 후보가 공격하는 방식으로 부각됐다.

기후정치바람 등 시민사회가 광역·기초단체장 후보 624명의 공약을 전수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에너지전환 공약을 낸 후보 254명 중 215명이 햇빛소득·바람소득을 내세운 도(道) 단위 후보였고, 탄소중립 로드맵이나 감축목표를 제시한 후보는 전체의 3.4%(21명)에 그쳤다.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상당수가 데이터센터·AI 산업 등 전력 다소비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은 반면 재생에너지 보급 공약은 4건에 불과했다. 오용석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기후대응을 말하면서 정작 온실가스를 늘리는 공약을 나란히 제시하는 후보들이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호남, 공약은 가장 많지만 목적은 따로 있다
전남 신안군 태양광 집적화단지 (사진 신안군)

호남은 전남 석유화학단지(여수)와 조선·해운(목포·영암권), 새만금 재생에너지 인프라라는 복합적인 기후 현안을 안고 있다. 공약의 양만 보면 세 권역 중 가장 풍부하지만, 뚜껑을 열면 재생에너지가 탄소중립보다는 첨단산업 유치의 조건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민형배 후보는 영산강 생태축 복원, RE100 산단 조성, 전기·수소버스 확대, 기후·생태 예산 관리체계 마련을 묶은 공약을 제시했다. 생태복원과 에너지 전환, 기후적응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려는 시도로 이번 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구성이다. 반면 국민의힘 이정현 후보와 진보당 이종욱 후보는 RE100을 반도체·AI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한 인프라 조건으로 접근했다.

정의당 강은미 후보는 호남 권역 광역단체장 후보 중 석유화학 탈탄소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뤘다. 여수·광양을 전국 최초 정의로운 전환 특구로 지정하고, 해상풍력 특화단지를 중심으로 수소 생산과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전남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국 2위 수준이며 여수국가산단에는 GS칼텍스·LG화학 등 대형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에서는 민주당 이원택 후보와 무소속 현직 김관영 후보 모두 새만금 RE100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새만금은 태양광·해상풍력·그린수소 인프라가 집적된 국내 최대 재생에너지 거점이다. 그러나 두 후보 공약 모두 재생에너지는 반도체·AI·방산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전력공급 조건이다. 
전남광주 기초단체장 후보 기후공약 현황 (자료 기후정치바람)

기초단체 수준에서는 수익공유 모델(신안), 에너지전환과 탄소감축의 직접연결(여수), 자원순환 정책(순천)이 눈에 띈다. 

신안군 민주당 박우량 후보는 전국에서 가장 구체적인 에너지 수익공유 모델을 들고 나왔다. 신안군은 2021년부터 햇빛·바람연금을 실제로 지급해온 전국 유일의 사례다. 5년간 지급액이 580억원에 달하며, 이재명 정부의 햇빛소득마을 정책도 신안 모델을 전국화하려는 시도다. 

박우량 후보는 2030년까지 전 군민에게 월 50만원 지급으로 확대하고, 전국 지자체를 지원하는 햇빛·바람연금 아카데미 설립을 공약했다. 재생에너지 수익 공유가 구호가 아닌 실제 행정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후정치바람은 이 공약을 전국 우수 사례로 언급했다.

여수시 조국혁신당 명창환 후보는 LNG 허브 기능 강화와 재생에너지 산업도시 구축, 햇빛·바람연금 도입을 함께 제시했다. 석유화학 밀집 지역에서 에너지 전환을 언급한 드문 사례이지만, LNG 인프라 확충이라는 '반기후' 공약과 공존한다.

순천시 진보당 이성수 후보는 에너지가 아닌 다른 각도로 기후 문제에 접근했다. 순환경제 100% 도시를 목표로 폐플라스틱·폐배터리 재활용 클러스터 조성, 시민 참여형 자원순환 보상제, 공공부문 순환 자원 우선 구매 의무화 등을 공약했다. 건물·수송·산업 전환 공약이 전국적으로 극히 드물다는 기후정치바람 분석을 고려하면, 소비와 폐기 단계의 탄소를 줄이는 이 접근은 호남 기초단체 공약 중 가장 다른 성격을 보인다.

군산에서는 민주당 김재준 후보와 조국혁신당 이주현 후보가 나란히 새만금 RE100 산단과 시민 배당을 공약했고, 전주 진보당 강성희 후보는 전주에너지공사 설립과 반도체 산단 조성을 묶었다. 세 후보 모두 재생에너지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반도체·AI 유치가 목적이라는 점에서 전북도지사 후보들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전북 기초단체장 후보 기후공약 현황 (자료 기후정치바람)

영남, 이슈는 가장 많고 공약은 가장 없다

영남은 이번 선거에서 기후 관련 공약의 공백이 가장 두드러지는 권역이다. 하동·고성 석탄발전소 폐지, 거제·창원 조선업 탈탄소 전환, 포항 수소환원제철, 울산 석유화학 탈탄소 등 전국에서 기후 전환 이슈가 가장 집적된 지역이지만, 광역 5개 단체 중 관련 공약을 의미있게 제시한 후보는 손에 꼽힌다.

경남이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민주당 김경수 후보는 소형모듈원전(SMR)·방산·우주항공·조선해양·전력기기를 5대 주력산업으로 내세웠고, SMR이 목록 첫 번째에 올라 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소규모로 건설할 수 있는 차세대 원자력 발전 방식으로 정부와 일부 산업계는 탄소배출 없는 전력원으로 주목한다. 

하지만 상업운전까지 수십 년이 걸릴 수 있고 핵폐기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탄소중립 수단으로 내세우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이유로 기후정치바람도 SMR 공약을 반기후공약으로 분류했다. 

하동·고성 석탄발전소 폐지나 조선업 탈탄소 전환을 다룬 공약은 없다. 국민의힘 박완수 후보도 마찬가지다. 하동군은 전국 석탄발전 설비 중 상당 부분이 집중된 곳이고, 거제는 한화오션 본거지로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탄소규제가 직결되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두 후보 모두 이 의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도지사선거 후보자 토론회. 더불어민주당 오중기 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이철우 후보 (사진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유튜브 캡쳐)

경북은 민주당 오중기 후보가 수소환원제철 중심 저탄소 철강산업 전환, 경북형 에너지연금, 발전 수익 도민 환원을 묶은 공약을 제시했다. 포항 철강산업의 탈탄소 전환 과제를 광역 단위에서 다루면서, 재생에너지·원전 발전 수익을 도민 소득으로 환원하는 구조까지 연결한 점은 경남·부산 등 다른 영남 광역 후보들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차이다. 

다만 원전 수익을 에너지연금 재원으로 포함시키는 등 기후-반기후 공약을 섞어서 제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이철우 후보는 구미 반도체·포항 배터리·경주 SMR 등 권역별 산업벨트 구상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RE100·수소·원전·SMR 기반 에너지 인프라 확충 등 오중기 후보와 마찬가지로 기후-반기후 성격을 합쳐서 제시하기도 했다. 오용석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정당을 가리고 공약을 보면 어느 정당인지 맞추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울산은 두 후보자 모두 에너지전환 공약이 있는, 영남에서는 예외적인 지역이다. 민주당 김상욱 후보는 부유식 해상풍력과 LNG 비축 기반 동북아 에너지 허브를, 국민의힘 김두겸 후보는 청정수소·부유식 풍력·암모니아 벙커링·원자력 혁신 클러스터를 함께 제시했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에너지전환을 산업 경쟁력 강화의 맥락에서 접근하는 등 기후정치바람이 지적한 기후공약과 반기후공약의 공존이 나타난다.

부산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와 대구시장 후보 세 명은 기후·에너지 공약이 사실상 없다. 대구는 36년째 이어진 낙동강 수질 문제가 유일한 환경 의제로, 민주당 김부겸·국민의힘 추경호·개혁신당 이수찬 후보 모두 취수원 이전 혹은 수질 개선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부산 민주당 전재수 후보는 RE100 생태경제도시 공약을 내걸었는데, 영남 광역시 후보 중 의미 있는 에너지 전환 공약을 낸 드문 사례다.
경북 기초단체장 후보 기후공약 현황 (자료 기후정치바람)

기초단체 수준에서는 포항이 영남 전체를 통틀어 가장 주목할 지역이다. 포스코는 현재 석탄 대신 수소로 철을 환원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전환을 준비 중이다. 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과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조달 압박이 커지면서 철강 산업의 탈탄소는 선택이 아닌 수출 조건이 되고 있다.

민주당 박희정 포항시장 후보는 취임 즉시 철강산업 전환 비상대응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포항을 수소환원제철 국가전략 거점도시로 지정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포항형 그린수소 클러스터 조성과 시민주도 RE100도 별도 공약으로 분리해 제시했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와 협력업체 부담을 막겠다는 정의로운 전환 조항도 포함돼 있다. 기후정치바람도 이 공약을 전국 산업전환 분야 우수 사례로 언급했다.

국민의힘 박용선 포항시장 후보도 수소환원제철 조속 실현 지원을 철강 고도화 공약 안에 포함했다. 광역인 경북도지사 후보보다 포항시장 후보들의 공약이 보다 구체적인 셈이다.

제주, 재생에너지가 선거 쟁점 된 유일한 지역

제주는 전국에서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가장 높지만 계통 용량 한계로 발전을 강제로 멈추는 출력제한이 반복되고 있다. 생산은 되는데 쓰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공약 경쟁의 대상이 됐다.

민주당 위성곤 후보는 제주 해역에 10기가와트(GW) 규모 해상풍력 단지를 조성하고 초고압직류송전(HVDC) 방식으로 수도권 반도체 산단에 전력을 공급하는 이른바 '해상풍력 슈퍼그리드'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연간 수익 최소 1조원을 에너지 기본소득으로 도민에게 환원하겠다는 구상이다. 

2035 탄소중립 목표, 기후안전망 구축, 지하수 관리 고도화 등 기후적응 항목도 함께 포함했다. 광역단체장 후보 전체를 통틀어 기후적응을 명시한 드문 사례다.

국민의힘 문성유 후보는 관련 공약을 내지 않고 위성곤 후보의 10GW 공약 현실성을 지적했다. 정부가 2030년까지 전국 누적 10.5GW를 목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제주 단독 10GW는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TV토론에서 이 공방이 이어지면서 해상풍력이 제주 선거의 가장 뜨거운 의제가 됐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도지사선거 후보자토론회 (사진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유튜브 캡쳐)

한편 기후솔루션이 제주의 핵심 환경 현안으로 짚은 저탄소 축산 문제는 양측 모두 공약에서 다루지 않았다. 제주 축산업은 도내 온실가스 배출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의제화되지 못했다.

호남·영남·제주를 통틀어 기후·에너지 공약이 가장 선명하게 나온 후보들은 대부분 소수 진보정당이거나 기초단체장 후보들이었다. 광역 단위에서, 특히 양대 정당 후보들은 재생에너지를 산업 경쟁력의 언어로 포장하거나 의제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오용석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이번에 선출될 지자체장들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의무가 있지만, 지자체장이 직접적인 권한을 가진 수송·건물 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적극적인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