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균열…캐나다 극단주의 부상은 어디서 왔을까[이한재의 세계 인권 현장](10)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복귀를 앞두고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더 좋을 것”이라 말해 세계를 당혹시켰다. 그는 취임 후 실제로 관세를 무기로 캐나다를 압박하고, 캐나다 총리를 “주지사”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 2026년 1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규범 기반의 국제 질서는 종결됐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가 이날 주창한 “중견국들의 연대로 강대국의 강압에 맞설 수 있다”는 중견국 연대론은 한국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빅토리아 쿠케츠(Victoria Kuketz)는 10년 이상 캐나다 민주주의의 현장을 지켜온 정책 전문가다. 그는 비영리 민주주의 연구기관 사마라 민주주의 센터(Samara Centre for Democracy)와 온타리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그는 민주주의 참여에 장벽을 마주한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일을 했다. 이후 캐나다의 대표적 정책 싱크탱크인 공공정책포럼(Public Policy Forum)에서 캐나다 정치적·정서적 양극화 연구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캐나다 양극화 상황을 이렇게 진단한다. “단순히 정치 견해의 차이가 아닙니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붕괴,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계급 갈등의 문제입니다.”
‘다문화주의의 성지’ 캐나다에 드리운 그림자
캐나다는 어떤 나라인가? 이 질문에 빅토리아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세계 그 자체(the world itself).” 전 국민의 4분의 1 이상이 이민자인 나라, 다문화주의를 헌법에 명문화한 나라 캐나다. 그러나 그 속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캐나다의 혼란은 코로나19 위기 당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22년 1월, ‘백신 반대 트럭 시위대(Freedom Convoy)’가 수도 오타와를 3주간 점거했다. 경적이 밤낮없이 울렸고, 캐나다 국기가 거꾸로 게양됐다. 시위는 곧 캐나다-미국 국경의 주요 검문소까지 봉쇄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부품과 농산물의 운송이 마비되면서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이 가해졌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계좌를 동결하는 초강수까지 두었다. 캐나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빅토리아는 이 시위대를 단순한 극단주의자들로 보는 시각을 경계한다. “단순히 극우의 행진만이 아니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보기보다 더 복합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어요. 거기에는 유색인종도 있었고, 원주민 공동체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고, 평범한 부모들도 있었어요. 백신 회의자 중에는 이전에 있었던 오피오이드 사태(제약사의 과장 광고로 인해 의사들이 마약성 진통제를 무분별하게 처방해 북미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로 가족이 사망한 유족이 많았어요. 그 결과 그들은 새 백신에 대한 의료 시스템의 권고를 쉽게 신뢰할 수 없었던 거예요.”
몇 년 후 캐나다는 또 다시 양극화된 정치를 마주하고 있다. 캐나다 석유 생산의 80%가 집중된 앨버타주에서 급기야 분리 독립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빅토리아의 설명에 따르면 연방정부가 부과하는 다양한 환경 규제, 석유 시추 제한 등의 조치가 이곳에서는 지역 경제와 생계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트럼프의 관세 위협이 앨버타 석유 산업을 직격하면서, 분리 독립을 향한 정세가 거세졌다. 마침내 2026년 5월 21일, 앨버타 다니엘 스미스 주지사는 TV 연설을 통해 올해 10월 19일에 앨버타의 분리 독립을 묻기 위한 주민투표 사전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캐나다의 정치 양극화는 말 그대로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우리는 이미 멀리 있고, 더 멀어지고 있다
전통적 지표로 보면 캐나다는 미국·유럽과 같은 극단주의화 징후가 한 번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수치상 늘 임신중단·이민·성소수자 권리 등 핵심 이슈에 대한 진보적인 사회적 합의가 단단한 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캐나다에서 국가를 뒤흔드는 정치적 분열이 깊어지는 것처럼 보일까?
이 사태는 사실 예견돼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한참 전에 시작된 양극화의 흐름이 ‘진단’돼 있었다. 캐나다 공공정책포럼이 다년간 연구 끝에 2023년 8월 발표한 ‘멀어지고, 벌어지다: 캐나다 양극화의 부상(Far and Widening: The Rise of Polarization in Canada)’ 보고서는 “캐나다인의 정신과 마음이 이미 심각하게 양극화됐다”고 진단했다. 트럼프가 재부상하기도 전, 겉으로 드러난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기 한참 전부터 시민들의 마음에는 깊은 골이 파여 있었던 것이다.
빅토리아가 설계한 이 프로젝트는 청년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진행함과 동시에 31개 도시에서 커뮤니티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해 시민의 목소리를 기록했다. 이에 더해 정치인, 언론인, 활동가, 원주민 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결합한 야심 찬 연구였다. 빅토리아는 특히 이 연구에서 다양한 위기 속 청년들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저는 가장 잊히고, 간과되고, 투자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조사 결과 중 흥미로운 수치 하나는 ‘미래에 대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캐나다 청년들의 대답이었다. 조사 결과 1위는 기후위기나 경제 불황이 아닌 ‘이념적 양극화’가 꼽혔다.
보고서는 2023년 당시 이미 캐나다의 정치적·정서적 양극화 수준이 심각한 것으로 진단하면서 그 주요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정당적 분리(partisan sorting)다. 시민이 독립적으로 정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 정당에 따라 선호를 끼워맞춘다는 것이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진영 간 적대감은 수치상 2배 폭증했다. 둘째, 온라인 양극화다. 분노를 촉진하는 알고리즘 속에서 시민들은 “분노로만 서로를 위로하는 닫힌 사이클”에 갇혀 상대를 악마화한다. 셋째, 팬데믹이다. 전례 없는 공포 속에서 정부가 과학적 확신 없이 다양한 정책을 밀어붙였고, 음모론이 틈입하며 사회적 신뢰가 붕괴했다.
광장의 시간을 지나 물어야 할 것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는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빅토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이념적 양극화는 한순간에 하늘에서 떨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제도,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을 겁니다.” 파국이 닥치기 전부터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해 낸 캐나다 시민사회의 저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은 온몸으로 2024년 12월 불법 계엄과 그 이후 광장의 시간을 통과해왔다. 하지만 ‘지지 정당’을 묻는 단순 여론조사를 넘어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진짜 어떤 균열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일베 금지법’이나 ‘역사 왜곡 처벌법’ 같은 처방에 앞서, 극단주의의 부상과 분노가 어디서 잉태됐는지 그 근원을 확인하는 일이 급선무다. 전 세계적으로 극단주의 정치가 번지는 지금, 캐나다의 치열한 반성은 결국 우리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한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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