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들어내자” 두 살배기에 청천벽력 통보…기적 만든 수술[메디컬 인사이드]
안와·안검에 생긴 종양, 안구적출 없이 완벽 제거
양성 종양도 시신경 압박해 시력·시야 손상 위험
‘3D 프린팅을 이용한 안와 재건 기술’ 특허 보유
최소침습수술로 기능·심미성·삶의 질 회복 도와
다학제 협진 시스템 기반해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

“한쪽 눈을 들어내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이는 고작 두 살이었어요. 수술이 무사히 끝나더라도 한쪽 눈 없이 자라며 아이가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29일 서울아산병원 안과 외래 진료실에서 만난 서경제(12·가명) 군의 엄마는 10년 전 상황을 묻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부부가 아들의 이상 증세를 느낀 건 두 돌이 채 되기 전이었다. 출생 직후부터 양쪽 눈의 위치나 모양이 달라 보였으나 타고난 외모 탓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아이가 자랄수록 한쪽 눈이 조금씩 앞으로 밀려 나오더니 작고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동네 병원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돼 대학병원을 찾았다가 눈에 종양이 생겼다는 청천변력 같은 진단을 들은 것이다.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에 따라 수차례에 걸친 항암 치료를 시행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안구(눈알)를 포함해 시신경, 근육 같은 구조물을 전부 적출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은 엄마는 2016년 이맘 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수소문 끝에 이 병원에서 안구 적출 없이 눈에 생긴 종양을 치료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낱같은 희망을 살렸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사물을 보는 눈에도 종양이 생긴다. 안구 자체 뿐 아니라 두개골 안에서 눈을 둘러싼 뼈와 근육, 지방, 혈관, 신경, 눈물샘이 포함된 공간인 안와(眼窩)는 물론 눈꺼풀(안검)에도 종양이 생길 수 있다. 서군의 경우 눈에서 안구를 움직이는 ‘외안근’에 악성종양인 육종(sarcoma)이 생긴 상태로, 안와종양 중에서도 드문 유형이었다.
안과 전문의인 사호석 교수는 안와골절, 종양 등 성형안과 분야의 독보적인 전문성을 토대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안와종양 환자를 치료한다. 미국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방문 교수를 지냈던 경험에 3차원(3D) 프린팅을 이용한 안와 재건 기술 특허를 바탕으로 연평균 200건 이상의 안와 및 안검 종양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정상 조직을 건들이지 않은 채 종양만 완벽하게 제거하기란 결코 쉽지 않아보였다. 영상의학과 협진을 통해 서 군의 컴퓨터단층촬영(CT) 및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검사 결과를 면밀히 살핀 끝에 안구와 주변 조직을 모두 들어내는 ‘안와 내용물 제거술’ 대신, 종양만 절제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눈 주변의 뼈를 임시로 절제해 접근로를 확보한 뒤 안구를 건드리지 않고 종양만 정교하게 들어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눈을 움직이는 근육 자체를 제거하는 만큼, 수술 후유증으로 사시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재건 과정에도 힘을 쏟았다. 근육의 역할을 해줄 실을 활용해 안와 내벽 골막에 안구를 고정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절개 흔적은 눈꺼풀 안쪽 결막 속으로 숨겼다. 그 결과 사시가 발생하기는 커녕 서군의 얼굴 어디에서도 수술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군은 수술 이후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추가로 시행하지 않았음에도 재발과 전이 없이 10년째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군의 엄마는 “워낙 어렸을 때 생긴 일이라 주변 사람들은 (아이가) 눈 수술을 받은 줄도 모른다”며 “지금 돌이켜보면 기적 같은 일”이라고 감격해했다.
인기과로 꼽히는 안과에서도 안종양 분야는 그다지 선호도가 높지 않다. 기본적으로 수술 난이도가 높고 위험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라식 같은 시력 교정 수술이나 백내장, 녹내장 등 소위 ‘돈이 되는 분야’로 몰리다 보니 안종양이나 재건 수술을 주로 담당하는 안과 전문의는 손에 꼽는다. 국내외를 통틀어 경쟁자가 드물다보니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줄지어 서 교수의 수술 노하우를 배우러 온다. 최근 5년간 서 교수에게 안와재건술 등 고난도 수술법을 직접 지도받은 안과 전문의는 17개국 34명에 달한다. 전문의 대상 펠로십 프로그램은 이미 2030년까지 예약이 차 있다.
일반적으로 양성 종양은 악성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여겨지지만, 발생 부위가 눈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양성 종양도 크기나 위치에 따라 시신경을 눌러 시력이나 시야에 영향을 미치고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능적 문제뿐 아니라 외관상 변화가 크면 심리적 문제를 유발해 환자들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서울아산병원이 안과를 중심으로 영상의학과, 병리과, 방사선종양학과, 종양내과, 류마티스내과 등과 다학제 진료 시스템을 갖추고 개별 환자에 맞는 치료 전략을 결정하는 데 집중하는 배경이다. 서 교수는 “안성형 및 재건 수술은 단순한 미용의 영역이 아니다”라며 “안구와 시신경의 기능을 보호하면서 안와, 눈꺼풀 등에 생긴 종양을 완벽하게 제거해야 하는 데다 심미성과 수술 이후 삶의 질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구 적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다 병을 키우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라며 “눈꺼풀에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지면서 해당 부위의 속눈썹이 빠지거나 사물이 겹쳐보이는 복시, 안구 돌출, 잘 낫지 않는 다래끼, 시력 저하 모두 안와종양의 신호가 될 수 있으므로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회장이 직접 달랬는데 직원 불만 더 폭발…“소통 아닌 발표회” TSMC 내홍
- 흔들리는 세계 최강 스텔스기 F-22 ‘랩터’도 약점 있다
- 이란 “美 공습, 휴전 위반” 루비오 “타결에 며칠 더”
- 주한미군사령관 “韓, 中 겨누는 단검...삼성과 클라우드 인프라 개발 중”
- 블룸버그 “삼전닉스 성과급 30조 될 것…집값 상승 부추긴다”
- 또 꺼낸 트럼프 화전양면술···이란은 자산동결 해제 강력 요구
- SK 최태원, 젠슨 황과 ‘진짜 깐부’로…대만서 또 만난다
- 고개 숙인 정용진, ‘쇄신’ 나선다…첫 조치는 스벅 선불카드 전액 환불
- 정용진 회장, 스타벅스 ‘탱크데이’ 마케팅 관련 대국민 사과문
- “예금 깬 서민들까지 몰렸다”…10분 만에 동난 ‘국민성장펀드’ 첫날 87%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