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루이 14세 노예법, 341년 만에 역사 속으로… 佛 의회, 식민 과거 청산 ‘한 걸음’
프랑스 하원이 17세기 재정한 노예법 코드 누아르(Code Noir·흑인법)를 노예제 폐지 178년 만에 지웠다. 28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과 AP, 프랑스24,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 주요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프랑스 하원인 국민의회는 이날 코드 누아르 폐지 법안을 표결에 부쳐 참석 의원 254명 전원 찬성, 반대 0표로 통과시켰다. 표결이 이뤄지는 동안 의사당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의원도 있었다고 AP는 전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은 만장일치로, 법안은 상원으로 넘어갔다. 주요 매체들은 이 법안이 성격 상 상원을 무난하게 통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드 누아르는 1685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서명한 60개 조항짜리 노예제 규칙이다. 법조문은 노예를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다뤘다. 44조는 노예를 동산(動産·움직이는 재산)으로 규정해 주인이 사고팔거나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했다. 38조는 도망친 노예를 처음 붙잡으면 귀를 자르고, 어깨에 프랑스 왕실 상징인 백합 문양으로 낙인을 찍은 뒤, 두 번째에는 다리 힘줄을 끊고 다시 낙인을 찍으라고 했다. 세 번째에는 사형에 처하도록 명시했다. 코드 누아르에 따르면 노예 신분은 어머니를 따라 세습된다. 이 때문에 자유민 아버지에게 태어나도 어머니가 노예면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노예로 취급했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살라몰랭은 이 법을 “가장 끔찍한 근대 법전”이라 불렀다.
이 법은 사탕수수 경작을 위해 아프리카인 노예를 부리던 마르티니크와 과들루프, 오늘날 아이티에 해당하는 생도맹그 같은 카리브해 지역에 처음 적용됐다. 이후 프랑스령 기아나와 루이지애나, 인도양 레위니옹과 모리셔스까지 적용 범위를 넓혔다. 프랑스는 당시 포르투갈과 영국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노예무역국이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프랑스가 이 법을 토대로 노예로 삼은 아프리카인은 약 140만명에 달한다. 끌려간 이들 대부분은 사탕수수밭과 설탕 끓이는 공장에 투입됐다. 사료에 따르면 높은 노동 강도와 혹독한 날씨 탓에 노예들 가운데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았다. 농장주들은 죽은 노예를 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으로 채웠고, 프랑스 항구도시 낭트와 보르도는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노예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번성했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을 거쳐 1848년 노예제를 폐지했다. 그러나 노예제라는 제도가 사라졌을 뿐, 코드 누아르 법조문은 누구도 법전에서 들어내지 않은 채 효력 없는 글자로 178년 동안 남아 있었다. AP는 “프랑스가 사람을 재산으로 규정한 자국 법 문장을 공식적으로 지운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번 표결 과정에서 많은 의원을 충격에 빠뜨렸다”고 전했다.
법안을 발의한 막스 마티아생 의원은 이번 폐지가 “기억과 정의, 그리고 인정(recognition)을 위한 강도 높은 행동”이라고 했다. 다만 이것만으로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한다”고 덧붙였다. 마티아생 의원은 프랑스가 보유한 가장 오래된 식민지인 과들루프 출생이다.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 프랑스령 기아나, 레위니옹 네 곳은 1946년 프랑스의 정식 해외 도(道·département)로 편입돼, 형식상 본토와 똑같이 파리 중앙정부가 다스리는 프랑스 영토가 됐다. 프랑스24는 “약 190만명에 이르는 이곳 주민 대부분은 노예 후손이자 프랑스 시민”이라며 “이 지역은 여전히 프랑스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남아 실업률도 높다”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법안을 지지하면서 코드 누아르 60개 조항이 “노예제 폐지 이후 결코 살아남아서는 안 됐다”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거의 두 세기 동안 코드 누아르에 대해 지켜온 침묵과 무관심을 더 간과할 수 없다”며 “그것은 프랑스에 대한 일종의 모욕”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프랑스 정부는 노예제에 관한 실질적 배상 문제에 대해선 이번에도 언급을 피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노예제에 대한 공식 사과까지 하진 않았다. 그는 법안 지지 연설에서 구체적인 보상금은 약속하지 않았다. 대신 진실을 밝히는 일과 교육, 역사 연구를 우선하는 방식으로 배상하겠다고 정의했다.
그러나 애초에 수백 년 전 노예제 피해를 두고 프랑스 내에서도 ‘누구에게 어떻게 갚느냐’에 대한 합의는 이뤄진 바가 없다. 현재 배상 논의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처럼 노예 후손이 다수 거주하는 프랑스 해외 도 주민에게 보상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2005년부터 마르티니크에서 시작된 배상 소송에서 프랑스 대법원은 ‘개인이 직접 피해를 입증하지 못했고, 공소시효도 지났다’는 이유로 청구를 거듭 기각했다. 다른 하나는 국가 단위 배상이다. 현재 카리브공동체(CARICOM) 14개국은 프랑스를 포함한 옛 유럽 식민국을 상대로 사과와 배상을 담은 10개 항목 요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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