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 이중옥 "CG·와이어도 없었다…맨몸으로 거꾸로 뭉쳐 매달린 좀비 떼에 경탄" [영화人]
지난 5월 21일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 영화 '군체'가 프랑스 칸 영화제 초청 소식에 이어 국내 극장가에서도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K-좀비물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는 평가 속에서, 극 중 왜소한 체구의 대테러팀 팀장 '이봉석' 역을 맡아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 배우 이중옥을 만나 '군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중옥은 현재 한국 영화계가 마주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깊은 감사를 느낀다며 극장 개봉에 따른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칸 영화제라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먼저 작품이 소개된 것에 대해서도 배우로서 큰 반가움이자 뜻깊은 현상이었다고 회상했다. 완성된 영화를 스크린으로 처음 마주했을 때는 "제가 출연했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정도로 스토리에 깊게 매료되어 집중했다"고 고백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연상호 감독의 첫 좀비물 '부산행'에 이어 '방법', 그리고 '군체'까지 세 번째 작품을 함께 한 이중옥이다. "연상호 감독은 특유의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와 '집단지성'이라는 화두가 작품마다 관통하고 있어 신뢰가 깊다. 특히 머릿속에 확실한 그림을 가지고 쓸데없는 컷을 배제한 채 효율적으로 촬영을 끝내는 과감한 선택 능력이 배우들에게 최고의 작업 환경을 제공한다"고 세 번째 작업의 소감을 밝혔다.
그가 연기한 이봉석은 체격은 비록 왜소할지언정 대테러팀을 이끌며 시민을 보호하고 극한의 상황을 제압하는 힘을 지닌 인물이다. 이중옥은 "피지컬의 크기가 카리스마나 제압 능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창적인 제어의 힘을 캐릭터에 녹여냈다. 실제로 역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가까운 경찰서를 직접 찾아가 오가는 이들 사이에서 경찰들의 행동 패턴을 살피고 자문을 구하는 등 연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기도 했다"며 캐릭터를 설명했다.
극 중 봉석은 초반의 시민을 보호하는 대테러 팀장의 면모와 달리 후반에 일행의 다리를 총으로 쏘아 좀비들의 인질로 삼는 등 살아남기 위해 철저히 이기적인 선택을 감행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낸 이 장면에 대해 이중옥은 "연상호 감독이 선과 악의 구도를 구태여 보여주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그 상황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데 집중하라는 미션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명목 아래, 살고 싶은 본능적인 욕망과 인간적인 갈등을 동시에 품은 봉석을 연기했다"는 이중옥은 좀비 영화 특유의 '오래 살아남는 악당형 민폐 캐릭터'로서 극의 팽팽한 긴장감과 재미를 견인했다.

이중옥이 현장에서 직접 체감한 '군체'의 좀비들은 기존 좀비물과는 차원이 다른 진화를 보여주었다. 초기 사족 보행에서 이족 보행으로 진화해 나가는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영악해져 인간을 조롱하기에 이른다. 좀비끼리 협력해 키보드를 입력하거나 핸드폰 문자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급기야 "문 열어 달라", "구하러 왔다"며 눈앞에서 직접 인간의 언어로 말을 건네기까지 한다. 이중옥은 "좀비와 좀비 사이를 끈끈하게 연결하는 특수 물질인 '점액질'의 비주얼과 폐쇄적인 둥우리 빌딩의 종(縱)적인 공간감이 시각적 압박감을 더하더라"라며 현장의 비주얼을 이야기하고, "점액질로 가득 찬 건물 내부를 보며 마치 인큐베이터 안에서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시발점 같더라"는 심도 있는 개인적 해석을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 비주얼의 이면에는 CG를 거의 배제한 채 맨몸으로 부딪친 배우들의 피나는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하루 8~10시간씩 온몸에 끈적이는 점액질 분장을 유지해야 했던 전문 배우들의 고생이 상당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지하에서 여러 명의 좀비가 한데 뭉쳐 거꾸로 매달린 채 기괴하게 움직이는 공포스러운 명장면은 와이어 등의 기계적 도움 없이 오롯이 무용수들이 맨몸으로 서로를 지탱하며 완성해 낸 경탄스러운 결과물이라며 이중옥은 현장의 비하인드를 전했다.
이중옥은 "연기했던 입장에서 엘리베이터 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정된 공간에서 좀비 떼가 순식간에 덮치는데, 이건 연기라는 걸 알고 상대방도 분장한 배우들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큐 사인이 떨어지고 마구 밀고 들어오니까 실제 같은 공포가 느껴지더라. 그리고 각자 상대해야 하는 좀비들이 정해져 있었는데 좁은 공간에서 마주하니까 내가 상대해야 하는 좀비를 찾는 것도 힘들었다. 엉켜서 허우적거리다가 '내 좀비가 아니네' 하고 다른 좀비를 찾고 그랬었다"며 웃픈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몇몇 배우들은 사람으로 등장해 좀비로 변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중옥은 사람으로서의 모습만 보여준다. 평소 좀비 흉내를 좋아해 직접 좀비 분장을 해보고 싶었다는 아쉬운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함께 출연한 전지현, 구교환 배우와의 호흡에 대해서도 찬사가 이어졌다. 어두운 작품 분위기와 달리 촬영장은 늘 웃음이 끊이지 않고 화기애애했으며, 전지현이 초반의 복잡하고 방대한 설명조의 대사들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탁월한 연기력에 크게 감탄했다고 밝혔다. 또한 좀비와 기괴하게 교감하는 역을 맡은 구교환에 대해서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선택을 믿고 밀어붙여 관객을 납득시키는 대단한 배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덧 2000년 연극 '돼지 사냥'으로 데뷔한 지 22년 차를 맞이한 이중옥은 자신의 연기 인생을 '매 순간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20대에는 남을 즐겁게 하는 것, 30대에는 감동을 주는 것, 40대에는 생계에 대한 고민과 나이에 맞는 책임감으로 시기마다 고민이 변해왔다"는 그는 "향후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처럼 대중이 깊이 공감하고 함께 사회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근한 배우로 남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극한직업', '타인은 지옥이다', '마약왕' 등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는 현재 쿠팡플레이 '가족계획 2'에서 또 다른 나쁜 역할로 촬영에 매진 중이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 고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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