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왕’의 나라에 펼쳐진 AI 시대, ‘인문학적 본질’로 돌아가는 의학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1)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 나이지리아 이보족의 속담 -
인류가 처음 땅을 밟은 아프리카에는 마을 전체가 아이의 양육에 참여해야 한다는 속담이 구전된다. 이는 갈수록 혼란에 빠져드는 21세기 대한민국 교육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마을은 미숙한 아이의 도전을 격려하고 실수를 포용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런 마을에서 성장하는 아이는 상호작용에 자신감을 얻고, 공동체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아를 형성한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결속된 집단이 번영하는 것은, 원시시대 부족에서 세계화 시대 국가까지 관통하는 문명 집단의 제일 경쟁 원리다. 이를 배양하는 교육이 무너진 공동체에는 미래가 없다.

”죄송합니다. 오늘 조금만 놀게요.“ 얼마전 초등학생들이 붙인 운동회 사과문이 뉴스로 보도되었다. 이미 어떤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을 금지하는 학교가 삼분의 일을 넘는다고 한다. 주변의 민원 때문이다. 놀이터 소음은 아파트 주민 사이 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물론 세태를 탓하고 이기적 행태로 낙인찍기도 어렵다. 밀집한 도시 환경에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피해자에게 무조건 참으라고 강요하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건 어른들의 사정이고, 자신의 소리가 공해로 취급된다는 경험을 아이들이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교육이 최우선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아이의 입을 틀어막는 대신, 차음벽을 세우거나 학교를 이전하는 강력한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은 분화된 기능을 수행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독립적 개인들이 우리라는 공동체를 인식하려면 공유되는 기억이 필요하다. 누구나 소풍, 운동회, 수학여행 등의 전날에 잠을 설치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친구와 뛰어놀던 추억의 공유는 집단 공감의 실마리가 된다. 하지만 소풍도 운동회도 없애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민원이 흘러넘치고, 법적 소송까지 벌어지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까지 평균 4억원이 든다는 대한민국에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은 언급조차 식상하다. 그런데도 비정상적 상황이 일반화되는 것은, 학교는 떠들고 노는 곳이 아니라 조용히 공부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집단의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 주입하고 시험을 쳐서 줄을 세우는 것만 교육이 아니다. 미성숙한 아이의 지적, 육체적, 정서적, 사회적, 인지적 성장을 유도해 공동체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시키는 모든 과정이 교육에 포괄된다.

끝없이 달려야 제자리에 있을 수 있는 나라
교육의 상호작용 주체는 학생과 선생님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에는 제삼자이면서 그 사이에 부모가 존재하면서, 경쟁의 동력을 제공한다. 부모의 교육열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한민국이다. 젊은 부모가 태어난 아이의 자라는 모습에 기쁨을 누리는 시간은 잠시다.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이면 경쟁의 막이 오른다. 초등학생 51만원, 중학생 63만원, 고등학생 79만원. 학년에 비례해 사교육비는 늘어나고, 반비례해 부모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진다. 수험생이 되면 교육의 무게는 감당이 어려울 지경이 된다. 세상 근심을 모두 짊어진 듯한 가족이 있으면 십중팔구 그 집에는 수험생이 있다. 붉은 여왕의 나라처럼 멈추면 도태되는 경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치열해진다. 그러다 입시가 끝나는 순간 교육에 대한 관심은 거짓말처럼 사그라진다.
이와 같은 경쟁이 우리 사회가 교육에 대해 공유하는 경험이다. 누구나 부모는 처음이고 부모가 되는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따라서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자식의 미래를 판단하게 된다.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이 특별하기를 원하지만 모두가 일등할 수는 없다. 이는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강력하게 자식 교육에 개입하도록 유도한다. 자연 생태계에서 적자생존은 거역할 수 없는 진화 원리지만, 문명에서 적자생존은 인간성을 소멸시킨다.

무한경쟁 교육의 축소판이 된 의대 입시
무한경쟁은 출산율을 떨어뜨린다. 이제 대학 신입생 선발 정원보다 고 3 학생이 적다. 그래도 경쟁의 관성은 사라지지 않고 대학의 줄을 세운다. 경쟁의 최종 목표는 대학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돈을 잘 버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서열을 따지고 의학계열을 목표로 한다. 대치동 유치원에서는 의대입학반을 모집한다. 자식의 미래에 대한 협박 앞에서는, 전문가의 아동 발달 단계 조언은 헛소리로 묵살된다. 입시 경쟁의 정점에는 의대가 놓여있다.
의대는 붉은 여왕 효과가 가장 도드라진 곳이자, 대한민국 경쟁 교육의 축소판이다. 여기에는 십수년의 줄 세우기에서 0.01% 안에 든 아이들이 모인다. 하지만 경쟁은 끝나지 않고 인기과를 위해 다시 달려야 한다. 인기과의 서열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 소위 메이저 5라는 내외산소정(내과,외과,산부인과, 소아과,정신과)이 인기과였던 것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IMF 구제금융 사태 전후로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이 떠오르더니, 정재영(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그리고 마방진(마취과, 방사선과, 진단의학과)이 앞에 선다. 줄서는 기준이 자존심, 돈, 워라밸로 변해왔기 때문이다.
과잉경쟁에 잊혀져 가는 의학의 본질
과잉경쟁은 의대 교육에서도 많은 부작용을 양산한다. 그 시점은 우연히도 의대가 입시의 최상위권에 올라선 시점과 겹친다. 과잉경쟁 상황에서는 동기가 경쟁자 이상이 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부적 상황에 상관없이 사회가 발전하면서 의사의 사회적 책무가 점차 강조되었다. 이런 차원에서 의대에서 의료윤리와 직업정신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었다. 본질적으로 의학은 이공계보다는 인문계에 가깝다. 자연이나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 대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환자를 보기 어렵다. 하지만 각자도생의 경쟁으로 평생 살아온 아이들에게 인문학 교육은 난관이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을 시험공부 하듯 배우기는 어렵다.
극장 효과는 과잉경쟁으로 모두가 힘들어지는 기전을 설명한다. 극장에서 앞사람이 일어서면 뒷사람도 일어서야 화면을 볼 수 있다. 맨 앞줄의 사람이 일어서면 뒤의 사람들이 전부 일어서야 한다. 앉든 서든 영화를 봤다는 결과에는 차이가 없지만, 서서 보면 힘들기도 하거니와 제대로 영화 감상하기도 어렵다. 모두 한마음으로 앉으면 해결되지만 경쟁에 매몰된 상태에서는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기 어렵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쟁으로 달뜬 아이들을 앉히려면 학교에서 강제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몇몇 의대가 줄 세우기에 특화된 상대평가를 과감히 중지하고 절대평가를 도입하고 있다. 물론 단순한 절대평가 전환은 더 많은 문제를 가져올 수 있기에, 다양한 평가 전략을 통합한 고유 교육을 학교마다 각각 시도하고 있다.

인공지능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걸 찾아야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기 과 줄서기 판도가 다시 변할 조짐을 보인다. 흥미롭게도 환자와 직접 상호작용이 필요한 영역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의대생은 인공지능을 가장 적극적으로 쓰는 집단의 하나다. 의대 공부와 인공지능은 찰떡궁합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의 검색이나 리포트부터 임상실습 케이스 과제까지 뚝딱 해결해준다. 인공지능의 파급력을 몸소 체감하는 것이다. 그리고 줄 서기에 도가 튼 학생들은 앞으로 어떤 과가 영향을 받을지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불안한 과를 차례로 소거해나가면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운 환자와 소통이 필수인 과가 남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의학의 본질로 되돌아가게 만든 셈이다. 필자가 학생일 때 어떤 교수님이 의사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 말한 기억이 난다. 사람을 고치는 보람이 있으면서 돈도 벌게 해준다는 것이다. 인기 과가 어떻게 변하든, 사람을 돕는 것이 적성에 맞는 사람에게 의사는 영원히 좋은 직업이다.
공부를 잘 한다는 이유로, 수능 대박이라는 이유로 의대를 선택하는 것은 이제 안전하지 않다. 자식 세대가 살아갈 시대는 부모가 경험했던 시대와 다르다. 정보 비대칭이 사라진 사회에서 지식정보 전문직은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십년의 경쟁이 보상된다는 보장이 없다. 소위 경쟁 가성비가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인공지능으로 사라질 직업과 각광받을 직업을 점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인간 사회라는 복잡계의 미래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무엇이 변할지가 아니라 무엇이 변하지 않을지다. 인간의 육체적 지적 능력을 대체하는 기술이 일반화되면 남는 것은 마음이다. 거대한 확률계산 기계인 인공지능은 사람의 마음과 소통하지 못한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인문학적인 소통 능력이 중요한 차별점이 된다는 것은 불변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 연재에 부쳐-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진단이 먼저다. 교육 문제도 해결을 위해서도 문제 인식의 공유가 먼저다. 이런 차원에서 앞으로 5W1H(why, who, what, when, where, how)를 꼭지로, 그동안 의대 교육 관점에서 우리 교육에 대해 느낀 점을 정리하려 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경쟁이 아닌 공동체 관점에서 교육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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