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다음은 로봇이다…이선엽 "피지컬 AI는 차원이 다른 시장"

권순우 기자 2026. 5. 2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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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등장하면서 국내 증시의 수급 구조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대한 기대는 더 강해졌지만 시장 한편에서는 쏠림과 변동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선엽 AFW파트너스 대표는 이번 흐름을 단순한 테마 장세로 보지 않았다. 메모리 반도체의 장기 공급 계약과 피지컬 AI 확산이 한국 증시의 평가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도체에 대한 시장의 시각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는 경기 순환 산업으로 분류됐다. 경기가 좋을 때는 PC와 스마트폰 수요가 늘면서 실적이 급증했지만 경기가 꺾이면 이익이 급감했다. 그래서 시장은 메모리 기업에 높은 밸류에이션을 주지 않았다. 일반 제조업 평균 PER이 10배 안팎이라면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5배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AI가 이 구조를 바꾸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AI 서버 투자가 늘어나면서 메모리 수요가 단기 경기 변동이 아니라 장기 인프라 투자와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 공급 계약이 중요하다. 과거에도 장기 계약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3년에서 5년 단위 계약이 논의되고 있으며 계약 불이행 시 페널티가 붙는 구조라는 점에서 구속력이 더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익의 안정성이 높아진다면 기업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UBS와 바클레이즈 등 해외 금융기관이 마이크론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지금 시장이 이들 기업에 6배에서 7배 수준의 PER을 주고 있다면 장기 이익 안정성이 확인될 경우 10배 이상으로 재평가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다. 일부에서는 15배까지도 거론한다. 그렇게 되면 같은 이익을 내더라도 주가의 계산 방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다만 이 대표는 투자자들이 레버리지에 무작정 올라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반도체의 구조적 변화는 인정하되 상품 구조에 따른 위험은 따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레버리지 상품은 하루 변동률을 추종하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했다가 다시 반등해도 원금 회복이 단순 계산처럼 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시장이 횡보하거나 등락을 반복할 때는 손실이 누적될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조정을 받을 때마다 대기 매수세가 강하게 유입되는 모습도 확인됐다. 이 대표는 이를 두고 반도체를 사고 싶어 하는 투자자들이 여전히 많다는 뜻이라고 봤다. 다만 이런 매수세가 레버리지 상품까지 확산될 경우 주변 종목의 수급은 더 취약해질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돈이 몰리면서 다른 개별주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선엽 AFW파트너스 대표 

금리 변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우려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언급한 소수 의견이 나오면서 시장이 흔들렸지만 이 대표는 금리 인상이 추세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압력을 제어하기 위한 제한적 조치라면 증시의 방향성을 바꿀 정도의 변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4~5% 수준의 예금 금리보다 반도체와 AI 관련주의 기대 수익률이 훨씬 크게 느껴지는 국면이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상향도 시장에는 완충재로 작용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비중 목표를 높이며 강제 매도 부담을 일부 줄였다. 이 대표는 국민연금이 시장 전망을 바꿔서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규정상 비중 조절을 하는 것이라면 투자자들이 과도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외국인 매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시장에 대한 부정적 판단 때문인지 단순 리밸런싱 때문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피지컬 AI다. 이 대표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방한과 LG그룹 회동 가능성을 언급하며 시장이 피지컬 AI를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봤다. 피지컬 AI는 소프트웨어 안에서만 작동하는 AI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기계와 로봇을 움직이는 AI다. 데이터센터 안에서 토큰을 생성하는 AI가 1단계라면 공장과 물류센터와 가정에서 실제 물건을 들고 옮기고 판단하는 AI는 전혀 다른 단계다.

피지컬 AI의 핵심은 로봇이다. 하지만 로봇은 단순히 팔과 다리가 달린 기계가 아니다. 손의 정밀도와 촉각 센서와 무게 감지와 카메라와 디스플레이와 액추에이터와 제어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복합 시스템이다. 이 대표는 로봇 손이 1g 단위 무게까지 감지할 수 있고 컵을 잡을 때 깨지지 않게 힘을 조절해야 하며 물리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람처럼 일하려면 사람처럼 듣고 판단하고 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기업의 기회가 열린다. 로봇은 수많은 부품으로 구성된다. 카메라와 디스플레이와 모터와 감속기와 액추에이터와 배터리와 제어 시스템이 필요하다. 미국이 소프트웨어와 AI 칩을 장악하고 있다면 한국은 실제 기계를 만드는 제조 역량을 갖고 있다. 중국도 부품과 조립 능력을 갖고 있지만 미국과 서방 진영에서 중국산 부품에 대한 신뢰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미국이 중국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한국이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현대차그룹이 로봇 기업으로 재평가되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과거 현대차는 자동차 회사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로보틱스와 자율주행과 제조 자동화가 결합되면서 시장은 현대차를 단순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피지컬 AI 기업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테슬라 역시 전기차 기업으로만 평가받지 않고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도 같은 방식의 인식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LG그룹도 피지컬 AI의 또 다른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LG는 로봇의 각종 부품과 디스플레이와 카메라와 전장 부품에서 강점을 가진다. 로봇의 얼굴은 디스플레이가 될 수 있고 로봇의 눈은 카메라가 될 수 있다. 로봇이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움직이려면 이런 부품들이 필수다. 젠슨 황 CEO가 LG그룹과 만난다면 시장은 이를 단순한 회동으로 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엔비디아의 AI 컴퓨팅과 한국 제조 대기업의 피지컬 AI 부품 역량이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피지컬 AI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기술 변화가 3년에서 4년 단위로 나타났다면 지금은 6개월 단위로 체감될 만큼 빨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현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베이징에서 열리는 월드로봇컨퍼런스를 매년 방문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와 데이터만으로는 기술 발전의 속도와 방향을 제대로 읽기 어렵고 실제 로봇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비즈니스 모델로 적용되는지를 봐야 투자 아이디어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의 로봇 전시 현장에는 어린이들도 많이 온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로봇을 보고 자라면 공학과 제조 기술에 대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 대표는 한국도 이런 현장을 더 많이 보고 경험해야 한다고 했다.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남보다 먼저 보고 먼저 질문하고 먼저 변화의 방향을 느끼는 사람이 시장에서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메모리 반도체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경기 순환 산업으로만 평가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AI 데이터센터와 장기 공급 계약이 이익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밸류에이션은 다시 계산될 수 있다. 다만 레버리지 상품은 그 변화에 베팅하는 강한 도구인 만큼 변동성의 위험도 함께 커진다.

다른 하나는 피지컬 AI가 한국 산업의 다음 장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AI가 데이터센터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로봇과 공장과 물류와 자동차와 전력 인프라로 내려오면 한국의 제조 역량은 다시 부각된다. 반도체가 AI의 뇌를 만드는 산업이라면 피지컬 AI는 그 뇌가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도록 몸을 만드는 산업이다. 이 대표가 피지컬 AI를 차원이 다른 변화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