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의 언어… I am Goods
공부·일·SNS… 바쁜 청년들
키링 하나로도 즉각표현 가능
단순수집을 넘어선 ‘취향소비’
“팬 활동할 시간 없어 굿즈 사”
짱구 등 ‘추억 캐릭터’도 인기
“정체성과 동심을 동시에 충족”
관련상품 구매 경험 79% 달해
편의점 등 유통가도 잇단 협업
생활 문화이자 산업으로 진화

“요즘은 작품을 다 챙겨보진 못해요. 그래도 그걸 좋아하는 사람으로는 남고 싶어요.” 서울 마포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30대 직장인 A 씨의 방은 각종 캐릭터 피규어로 가득하다. 그는 가방에도 캐릭터 키링을 달고 다닌다. 10대 시절 꾸준히 좋아했던 만화 캐릭터다. 하지만 그는 근 몇 년간 그 만화를 거의 보지 못했다. 최신화의 내용은 물론 휴재 중인지 연재 중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키링은 계속 들고 다닌다. 그는 “일이 바빠 만화를 못 본 지 꽤 됐다”면서도 “여전히 그 만화를 좋아하던 시절의 내가 남아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굿즈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과거엔 애니메이션·아이돌·게임 팬덤 중심의 ‘덕질 문화’로 여겨졌던 굿즈 소비가 이제는 일상적인 소비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지하철에서 정장을 입은 직장인의 가방에 캐릭터 키링이 달려 있는 풍경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포토카드, 인형, 피규어, 스티커, 키링, 캐릭터 협업 제품 등 이른바 ‘굿즈’가 하나의 생활문화가 된 것이다.

◇나날이 성장하는 굿즈 시장= 굿즈 시장 규모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캐릭터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캐릭터 상품 구매 경험률은 79.8%로 나타났다. 캐릭터 상품 이용 경험률은 91.7%, 캐릭터 프린팅 상품 구매 경험률은 66.6%로 조사됐다. 팝업스토어 방문 경험률도 46.3%로 전년 조사보다 0.8%포인트 높아졌고, 팝업스토어·전시회·행사·공연에서 캐릭터 상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58.4%에 달했다. 글로벌 라이선싱 시장 규모도 2024년 3696억2300만 달러(약 557조1690억 원)로 전년보다 1.5% 증가했다. 캐릭터 상품 중 구매 경험이 가장 많은 품목은 인형 63.6%, 피규어·프라모델·아크릴 등신대·키링 53.2% 등 순이었다.
굿즈 소비는 이제 특정 ‘오타쿠 문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편의점·카페·패션·명품 브랜드까지 캐릭터 협업에 뛰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콘텐츠의 부가상품 정도로 여겨졌던 굿즈가 이제는 브랜드 정체성과 소비자 경험을 연결하는 핵심 산업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통업계에서는 “캐릭터 협업 상품이 일반 제품보다 구매 전환율과 재방문율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단순 제품 기능보다 ‘어떤 감성을 느끼게 하는가’가 소비 결정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유행하는 랜덤 포토카드나 블라인드박스 문화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단순 수집을 넘어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소비하는 형태에 가깝다는 것이다.

◇바쁘지만 덕질도 하고 싶어요=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MZ세대의 삶의 방식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팬덤 문화는 상당한 시간과 노동을 요구했다. 아이돌 컴백 일정과 콘텐츠를 챙기고,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작품 세계관을 따라가는 식이다. 하지만 지금의 MZ세대는 과거처럼 하나의 취향에 긴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워졌다. 직장과 학업, SNS, 인간관계 관리까지 동시에 요구되는 환경에서 취향 생활은 점점 짧고 압축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다. ‘좋아함’ 자체보다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굿즈는 일종의 압축된 ‘정체성 저장 장치’가 된다. 키링 하나, 포토카드 한 장, 캐릭터 인형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대 시절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를 좋아해 팬클럽 ‘카시오페아’에서도 활동했던 30대 직장인 B 씨는 “기억은 휘발되지만 물건은 남는다”며 “결국 기억을 추억하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시절엔 돈이 없지만 시간을 들여 따라다닐 수 있었다”며 “이젠 직장 생활을 하며 팬 활동을 할 시간도 심적 여유도 없고, 다만 굿즈를 사면서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런 현상은 20∼30대 직장인층에서 두드러진다. 사회에 진입해 역할과 책임은 커졌지만 개인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작은 굿즈가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닻’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인기 굿즈 상당수는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캐릭터들이다. 포켓몬스터, 산리오, 짱구, 디즈니 같은 장수 지식재산권(IP)들이 다시 소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소비자들이 단순히 캐릭터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캐릭터를 좋아하던 시절의 자기 자신과 연결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소비 행태는 단순히 스스로에 대한 위안일 뿐만 아니라 ‘정체성 소비’가 확대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굿즈 소비가 현실의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으면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창구라는 것이다. 여기에 과거에는 지역·직업·가족·조직 같은 공동체가 개인 정체성을 규정했다면 지금은 그런 기반이 약해지면서 소비를 통해 스스로를 설명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굿즈 소비 증가에 대해 “어릴 때의 좋았던 감정을 떠올리며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 수단”이라며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성장 가능성 여전한 굿즈 시장= 업계에서는 굿즈 시장이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다양한 산업군에서 캐릭터 IP를 활용한 사업이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직업 안정성은 약해지고 인간관계는 더 유동적으로 변하는 가운데 위안을 얻으면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는 ‘물성매력’이 있는 상징물을 더 찾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향후 굿즈 시장도 단순 캐릭터 상품 판매를 넘어 ‘정체성 플랫폼’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 기능과 품질보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가’가 소비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다 큰 어른의 굿즈 구매를 창피하게 여겼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자신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며 “결혼 후에도 굿즈를 통해 아이의 동심과 자기의 동심을 함께 충족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가 줄어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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