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터지고도 ‘인생 연주’…“10여년 전 정명훈이 뿌린 ‘금관의 씨앗’이었다” [인터뷰]
서울시향 ‘바티 아카데미’ 출신
“직함보다 내 음악의 고수 될 것”
![남관모 KBS교향악단 트럼펫 수석의 말러 교향곡 5번 공연 영상 캡처 [KBS교향악단 유튜브]](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9/ned/20260529091759514igmv.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낮은 숨소리마저 천 근의 무게로 내려앉는 공연 시작 60초 전. 지휘자의 등 뒤에선 결의가 느껴진다. 침묵의 선율 위를 단숨에 가로지르는 트럼펫 한 대.
‘따다다 단-, 따다다 단-, 따다다 단 단 단 단-’
‘죽음의 행진곡’을 알리는 네 마디가 단 한 사람의 숨으로 터져 나온다. 말러 교향곡 5번 1악장. 약 70분의 명운을 쥔 트럼펫은 셋잇단음표의 도약을 허공으로 길게 뿜어냈다. 비장한 트럼펫의 군보는 단숨에 공기를 압도했다. 이토록 완벽하고 서늘한 사운드를 뿜어낸 주인공은 KBS교향악단 금관 파트의 최전선에 선 남관모(34) 수석이다.
이날의 공연에서 그는 단연 발군이었다. 2022년 10월 입단해 올해로 KBS교향악단 4년 차, 남관모 수석은 늘 자기 자리를 지켜왔지만, 그의 진가가 이토록 빛난 적은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날의 압도적 연주는 ‘부상 투혼’이 만들어낸 결과였다는 사실이다.
“리허설 하루 전날 데드리프트를 하다가 헬스장에서 허리를 다쳤어요. (웃음). 원래 많이들 다친다고 하더라고요.”
구독자수 22만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이면서 전 세계로 쳐도 톱클래스에 꼽히는 KBS교향악단 유튜브 채널에 최근 ‘그날의 비하인드’를 담은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영상 속 남관모 수석은 공연을 앞두고 허리를 부여잡은 채 잘 걷지도 못했다. KBS교향악단 다른 단원과 정명훈 지휘자의 걱정스러운 눈빛, 의사의 ‘공연 만류’까지 교차 편집됐다.
![KBS교향악단 트럼펫 수석 남관모 [본인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9/ned/20260529091759751qzko.jpg)
당시를 떠올리며 남 수석은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척추에 가장 안 좋다고 해서 병원에선 당부했지만, 리허설과 공연을 취소할 수 없었다”며 “그날 한의원과 병원을 오가며 주사와 진통제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털어놨다. 복대까지 차고 무대에 오르니 정작 공연 중엔 아픈 줄도 몰랐단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영상은 유튜브 콘텐츠의 특성상 연출과 양념이 많이 가미된 것”이라며 웃었다.
그가 통증을 안고 무대에 선 것은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길 원해서가 아니었다. 책임감과 조직을 향한 배려 때문이었다. 남 수석은 “연주를 통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의 곡”이라며 부상 투혼을 발휘했다.
그의 예술적 투지가 화답을 받은 걸까. 연주 이후 “한국에 이런 트럼페터가 있었냐”는 극찬이 줄을 이었다. 정작 그는 “아픈 사람이 무대에 올라간 모습이 미화돼 기록으로 남으면, 향후 다른 단원 선생님들이 병가를 쓸 때 눈치 보이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돌아본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 인근에서 만난 남 수석은 “이젠 말끔하게 ‘정상의 상태’로 돌아왔다”며 “그날 이후로 데드리프트는 절대 안한다”며 명랑한 눈빛을 빛냈다.
남관모 수석은 올해부터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이끄는 정명훈(76) 음악감독과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남 수석은 정 감독이 10여년 전 한국 클래식계에 뿌린 ‘금관의 씨앗’이 발아한 대표적인 ‘정명훈 키즈’다.
“제 인생 첫 교향악단 연주가 서울시향이었고, 당시 지휘자는 정명훈 감독님이셨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대학생 시절 객원 단원으로 스승님 옆자리에 앉았어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유럽 투어 전 프리뷰 공연이었죠.”
경남 산청에서 나고 자라 초등학교 시절 ‘인원 충당’을 위해 관악부에서 트럼펫을 잡았던 남관모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14년이다. ‘트럼펫 연주자’치곤 상당히 이른 나이에 악기를 배운 그는 중학교 때 전공을 시작, 서울예고로 유학 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왔다.
“군 복무 중이었을 때였어요. 친구들이 서울시향에 ‘바티 브라스 아카데미’가 생겼는데 너무 좋으니 전역하면 꼭 오디션을 보라고 하더라고요.” 정명훈 감독이 서울시향을 이끌던 시절이었다.
![KBS교향악단 트럼펫 수석 남관모 [본인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9/ned/20260529091759941elap.jpg)
남 수석은 한국 오케스트라 사운드에서 고질적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던 금관 파트의 ‘역사적 전환점’을 온몸으로 통과한 연주자다. 정 감독은 한국 ‘금관 파트’의 약점을 간파, 15년간 이끌었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를 서울시향 수석으로 영입하며 ‘바티 브라스 아카데미’를 시작했다. 정 감독이 한국의 금관 연주자를 양성하기 위해 시작한 아카데미다. 세계 최정상 트럼페터는 정 감독의 부름을 받아 만 7세부터 20대 초반까지의 한국 학생을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 달에 10만 원만 내면 최고 수준의 레슨을 받을 수 있었으니, 엄청난 혜택을 누린 거였죠. 수업은 굉장히 혹독했어요. 매 학기 시험을 봐서 태도가 안 좋거나 기량이 준비되지 않은 학생들은 걸러지는 서바이벌 시스템이었어요. 총정원을 10명 안팎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식이었으니, 학생들은 팽팽한 긴장 속에 살았어요.”
오직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남 수석은 “트럼펫 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옥한 자양분이었다”고 고백한다. 이곳에서 그는 정명훈과 바티라는 ‘인생의 거장’들을 만났고, 동료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동시에 서로에게서 배움을 구했다.
“둥글게 앉아 다 함께 수업받을 때가 있어요. 어린 초등학생들의 자연스럽고 탄탄한 기본기를 보며 깊은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어요. 저희 대학생들이 기교적으로는 더 화려하게 연주할지 몰라도, 트럼펫 본연의 기본을 완벽하게 지키며 연주하는 아이들을 보며 본질을 깨달았어요. 정말 값진 경험이었어요.”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금관 르네상스’를 이끈 바티 아카데미는 수많은 주역을 배출했다. 남 수석을 비롯해 한국인 최초로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하고 현재 프랑스 낭시 로렌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수석으로 있는 김현호, 현재 KBS교향악단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주원 부수석 등이 모두 이 아카데미가 배출한 ‘정명훈-바티 키즈’들이다. 10여 년 전 척박한 토양에 뿌린 씨앗이 오늘날 한국 금관의 ‘울창한 숲’이 된 셈이다.
![남관모 KBS교향악단 트럼펫 수석의 말러 교향곡 5번 공연 영상 캡처 [KBS교향악단 유튜브]](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9/ned/20260529091800185yhnp.jpg)
당시 그의 스승이던 알렉상드르 바티는 프랑스를 오가는 바쁜 일정 중에도 매일 아침 연습실로 제자 남관모를 불러 1대 1 스파르타 레슨을 진행했다.
남 수석은 “당시 선생님께서 베를린필 수석 오디션을 준비 중이었는데, 본인의 연습을 하면서 레슨도 함께 봐주셨다”며 “세계 최고를 겨루는 선생님의 소리를 바로 옆에서 매일 들으니 눈높이가 달라졌고,세계 최고 수준의 기준점이 내 몸에 박혔다”고 돌아봤다.
대학생 남관모는 이 혹독한 훈련을 계기로 서울시향에 처음 생긴 제2수석 오디션에서 유일한 1차 합격자로 이름을 올렸다. “2차 오디션 때는 정명훈 감독님과 스베틀린 루세브 악장, 신아라 부악장이 들어왔는데 너무 긴장해 완전히 망했어요. (웃음)”
남 수석은 바티 아카데미 시절부터 서울시향에 ‘객원’ 단원으로 활동했고, 2018~2020년까진 기간제 단원으로 함께 했다. 서울시향이 바티 아카데미에서 손을 뗀 이후엔 외부에서 운영, 보조강사로도 일하며 ‘티칭’하는 방법을 익히기도 했다.
당시 거장들의 곁에서 체화한 ‘무서운 기준점’은 지금도 그를 밀어붙이는 거울이다. 남 수석은 자신의 강점을 ‘자기 객관화’라고 말한다.
“공연이 끝난 뒤 제 연주에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어요. 냉정하게 바라보면 못 한 것만 보이니까요. 유튜브를 켜면 전 세계에 기가 막히게 잘 부는 메이저 오케스트라 수석들이 너무 많아요. 그걸 보는 순간 제 안의 확신은 다 사라져요. 연주자들은 자기가 제일 잘 알아요. 지금 내가 뭐가 부족한 지를요.”
과거 아카데미의 수장과 학생, 타 악단의 음악감독과 객원 단원으로 만난 정명훈 감독은 이제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돼 수석 남관모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최근 감독님께서 ‘잘했다’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러면서도 ‘더 성장할 가능성이 크니 많으니, 나이가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더 밀어붙여야 한다. 나이가 더 들면 발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셨어요. 더 열심히 밀어붙여야죠.”
남 수석의 시간은 KBS교향악단에서도 흐르고 있다. 그는 “처음 2년 동안은 중압감 때문에 무대 위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쉰 것 같다”며 “이제야 비로소 음악 안에서 숨통이 트인다”고 나직하게 말했다.
트럼펫은 오케스트라에서 위험하도록 ‘튀는 악기’다. 모든 소리를 잠재울 압도적 존재감을 자랑하지만, 한 음만 삐끗해도 모두가 알아차린다.
![KBS교향악단 트럼펫 수석 남관모 [본인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9/ned/20260529091800403mxak.jpg)
남 수석은 “다이내믹의 폭이 넓어서 극소음부터 극대음까지의 차이가 매우 크고, 소리가 직관적으로 두드러지는 만큼 절대적인 정확도를 요구한다”며 “특히 트럼펫 소리를 나침반 삼아 따라와야 하는 파트가 많아 늘 긴장 상태에 놓여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사실 제 본래 성향과는 굉장히 맞지 않는 악기다. 전 리드하기 보단, 따라가는 편”이라며 “사실 수석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고 고백한다.
서울시향에 몸담았던 시절, 그는 세계 유수 악단의 트럼페터를 객원 수석으로 맞으며 감탄과 연민을 동시에 느꼈다.
“유튜브로만 보던 거장들이 객원 수석으로 오고, 제가 바로 옆에서 세컨드 트럼펫을 불며 정말 많이 배웠어요. 솔직히 그 시절엔 ‘와, 정말 유학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함께 연주하고 배우며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고,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저 힘든 걸 어떻게 하나, 아이고 불쌍하다,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웃음)”
가까이에서 지켜본 세계적인 연주자들은 무거운 왕관을 짊어진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는 “대가들도 무대 뒤에서 긴장하고 가끔은 흔들리는 걸 보며 ‘하아, 진짜 안됐다’, ‘정말 고단한 직업이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됐다”며 웃었다
그가 KBS교향악단 수석 자리에 오른 것은 요행도 우연도 아니었다. 팬데믹이 오며 국내 클래식 음악계가 멈춰 섰을 때, 그는 독일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현지에선 메이저 오케스트라의 오디션을 경험하며 벼려졌다.
남 수석은 “독일 A급 오케스트라 오디션의 최종 라운드까지 잇따라 오르며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며 “결과와 상관없이 트레이닝의 기회로 삼아 오디션을 보던 중 KBS교향악단의 합격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10년 가까이 공석이었던 KBS교향악단의 트럼펫 수석 자리를 메운 구원투수가 됐다.
오케스트라는 단 한 사람의 주인공을 위해 연주하지 않는다. 남 수석은 홀로 빛나기보단 ‘사운드의 숲’을 이루는 음악을 지향한다.
그는 “트럼펫은 귀에 꽂히는 악기인 만큼 정확한 음정을 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오케스트라 안에서 조화로워야 한다”며 “독주일 땐 빛을 발하되, 함께 할 땐 다른 악기들과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기를 과시하기보단 관계와 조화를 먼저 아우르는 가치관은 사운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그의 트럼펫은 때때로 오보에나 플루트 같은 목관악기의 부드럽고 따스한 질감처럼 귀를 감싼다.
![남관모 KBS교향악단 트럼펫 수석 [KBS교향악단 유튜브]](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9/ned/20260529091800623dtgv.jpg)
“투박하게 큰 소리를 지를 때보다 리스크가 더 크지만, 늘 목관의 정밀함과 따뜻함을 지향해요. 물론 섬세하게 소리를 모으려다 보면 음이 깨질 확률이 높아요. 하지만 (바티) 선생님께서 항상 말씀하셨어요. ‘실수의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관객에게 감동이 간다’고요. 안전망 안에서의 연주는 관객에게 감동적으로 전달되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그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견인해야 할 순간엔 주저 없이 총대를 맨다”고 했다. 그가 매 순간 바늘방석 같은 긴장감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이유다.
악단 생활과 여러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지독한 루틴을 고수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신체 단련으로 하루를 열고, 매일 최소 3시간 30분 이상 트럼펫 마우스피스를 입술에 붙인다. 이같은 루틴은 그가 만난 세계 최정상 트럼페터들에게 배운 위대한 유산이다.
남 수석은 “스승 바티 선생님은 42.195㎞ 마라톤 풀코스마저 시시하다며 3일 동안 잠을 안 자고 산을 뛰는 울트라 마라톤을 즐기셨다”며 “오전 10시 서울시향 리허설이 있으면 이미 새벽에 러닝 10㎞를 마친 심장으로 연습실에 들어오셨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트럼펫은 입술이 아닌 몸 전체를 사용해 소리를 내는 악기다. 좋은 트럼펫 소리는 손끝이 아니라 팽팽한 폐활량과 횡격막, 복근에서 시작되는 체력전이다. “서양 연주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아시아인 연주자가 메이저 사운드를 뚫고 나오려면, 영혼을 갈아 넣는 신체 트레이닝이 필수적”이라는 게 남 수석의 지론이다. ‘데드 리프트’는 끊었지만, 남 수석 역시 러닝과 헬스로 몸을 단련하는 이유다.
말러 5번 당시 ‘부상 투혼’을 발휘했던 그는 28일 완벽한 몸 상태로 말러 6번을 통해 관객과 다시 만났다. 무대 위에 트럼펫 6대가 공존하는 대폭발을 일으키는 금관 대작이다.
남 수석은 “트럼펫 연주자에게 말러는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곡이자, 오디션 때마다 등장하는 고난도의 곡”이라며 “부드럽고 감미롭되 강렬함이 공존하는 연주가 많다. 트럼펫이라는 악기의 진짜 매력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오늘도 ‘리스크’를 기꺼이 끌어안고 트럼펫을 분다. ‘자기 확신’보다는 철저한 ‘의심’을 성장의 발판 삼아 수석 4년 차를 맞은 지금을 “이제 시작”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원대한 목표를 전시하진 않지만, 그는 매 순간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고 말하는 수행자다.
“대학 시절 은사님이 교수 임용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날이었어요. 술자리에서 선생님은 껄껄 웃으며 ‘교수는 안 됐지만, 고수(高手)가 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아! 나도 고수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어느 오케스트라의 수석이냐, 어느 대학의 교수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의 전 제 음악에서 ‘고수’가 되기 위한 여정에 있는 것 같아요. 계속하다 보면 뭐든 돼 있겠죠. 만족하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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