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아니야?”…20년 만에 돌아온 ‘젤리 퍼킨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에르메스 버킨백을 닮은, 이른바 ‘퍼킨백’ 열풍이 불고 있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가짜를 뜻하는 ‘페이크’(Fake)와 버킨(Birkin)을 합친 ‘퍼킨’(Firkin)이다.
버킨백 특유의 사각 토트 형태에 플랩, 벨트 잠금장치, 자물쇠 디테일까지 닮았지만, 소재는 완전히 다르다. 반짝이는 가죽 대신 말랑말랑한 PVC와 TPU 소재를 사용했다.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색감 덕분에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가격은 더 놀랍다. 수천만 원짜리 명품 가방 분위기를 내지만, 실제 가격은 2만~8만 원대. 올여름 ‘가볍게 들기 좋은 가방’으로 10, 20대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그룹 키키의 멤버 키야가 연두색 젤리 퍼킨백을 든 콘셉트 포토를 공개한 뒤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키야가 든 가방 뭐냐”는 질문이 쏟아졌고, 온라인 쇼핑몰에는 ‘키키백’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최화정이 꺼낸 추억의 가방이 Z세대의 손을 타고 다시 ‘핫 아이템’이 된 셈이다.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의 ‘젤리 백’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19% 급증했고, 거래액 또한 467%나 늘었다. 길어진 여름과 빨라진 더위도 한몫했다. 비 오는 날 툭 들기 좋고, 물에 젖어도 부담 없는 데다 보기에도 시원하다.
무엇보다 요즘 세대는 가방 안까지 꾸민다. 투명한 젤리 백 안에 키링과 파우치, 캐릭터 인형을 넣어 ‘내 가방 속 취향’을 드러낸다. 예전엔 수영장이나 목욕탕 갈 때 들던 가방이 이제는 인증샷 소품이 됐다.
퍼킨백의 급등세에 맞물려 갑론을박도 제기되고 있다. “재미있는 패러디 같다”는 반응과 “결국 짝퉁 아니냐”는 날 선 비판의 혼재가 그 예다. 실제로 미국 월마트가 버킨백을 닮은 ‘워킨백’을 출시해 완판 열풍을 일으키며 비슷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패션업계는 이런 흐름을 ‘듀프 소비’로 본다. 명품 자체보다 비슷한 분위기와 감성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기려는 방식이다. 불황이 길어질수록 “진짜 명품은 못 사도 무드는 즐기겠다”는 심리가 강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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