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국엔 HBM 흔든다"…삼성·SK 노리는 中반도체 우회전략

강민경 2026. 5. 29.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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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화웨이, EUV 없이 1.4나노 성능 '로직폴딩' 공개
미세공정 대신 '3D 적층'…2031년 실제 구현 목표
전문가 "中 적층·본딩 기술, HBM 추격 변수 될 수도"

중국 화웨이가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새로운 승부수를 꺼냈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없이도 사실상 '1.4나노급' 성능 구현이 가능한 반도체 설계 기술을 공개하면서다. 중국이 그동안 뒤쫓던 '미세공정 경쟁'에서 벗어나 칩을 수직으로 접고 쌓는 '3차원(3D) 설계 혁신'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 스마트폰 칩 기술이 아니라 향후 인공지능(AI)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 구도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적층·패키징 전략으로 보고 있다.

화웨이의 새 승부수는 '칩 접기'

화웨이는 최근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 국제회로시스템심포지엄(ISCAS 2026)에서 '타우(τ) 스케일링 법칙'과 '로직폴딩' 기술을 공개했다. 칩 안 회로를 평면으로 길게 늘어놓는 방식에서 벗어나 위아래로 접고 쌓아 신호 이동 거리를 줄이는 개념이다.

그간 반도체 업계는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여 같은 면적 안에 더 많은 회로를 집적하는 방식으로 성능을 끌어올려 왔다. 도로를 계속 넓혀 차량 속도를 높이는 방식과 비슷했다. 반면 화웨이는 이동 경로 자체를 줄이는 접근을 택했다. 멀리 떨어진 회로를 수직으로 직접 연결해 데이터 전달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이를 "도시를 반으로 접는 개념"에 비유했다. 도시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평면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접듯 공간 자체를 좁혀 두 지점을 연결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화웨이는 이 기술을 활용해 오는 2031년까지 1.4나노급 반도체를 구현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 역시 2028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영역이다. 미국 제재 속에서도 첨단 반도체 격차를 빠르게 좁히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주목되는 부분은 미국 제재로 접근이 막힌 EUV 장비 의존도를 낮추려 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네덜란드 ASML의 EUV 장비를 확보하지 못해 첨단 미세공정 경쟁에서 밀려 있었다. 이에 화웨이는 회로 구조를 입체적으로 재배치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틀었다.

아울러 화웨이는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의 7나노 공정으로 만든 신규 '기린(Kirin)' 칩에 해당 기술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칩 내부 트랜지스터 밀도가 기존보다 50% 이상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다음 목표는 HBM?

다만 전문가들은 아직 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이 많다고 본다. 가장 큰 과제는 양산성이다. 칩을 여러 층으로 쌓을수록 발열과 수율 문제가 빠르게 악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웨이퍼 접합 과정에서 한 층이라도 불량이 발생하면 전체 칩을 폐기해야 해 생산 효율과 비용 부담이 크게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 교수는 "화웨이가 확보한 것은 진짜 1.4나노 공정이라기보다 1.4나노급 트랜지스터 밀도를 구현한 개념에 가깝다"며 "EUV 없이 초미세 공정을 돌파했다기보다 적층과 본딩 기술을 활용해 성능을 끌어올린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핵심은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다. 서로 다른 웨이퍼를 초미세 단위로 정밀 접합해 신호 전달 거리를 줄이는 방식이다. 화웨이는 연결 간격을 기존 2~3마이크로미터에서 1.5마이크로미터 수준까지 좁혔다고 주장했다.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 특징./그래픽=비즈워치

외신들도 기술 검증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미국 CNBC와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컨설팅업체 DGA그룹의 폴 트리올로 책임자는 "집적도 향상 가능성은 있지만 공정·수율·발열 문제까지 해결됐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역시 "대규모 양산 단계에서는 열 문제와 패키징 복잡성이 치명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는 화웨이의 목표가 단순 스마트폰 칩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로직폴딩 기술은 차세대 HBM과도 연결된다. HBM 역시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병목을 줄이는 구조다. 결국 화웨이가 확보하려는 적층·본딩 기술이 AI 반도체 핵심 메모리 영역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 낸드 업체 YMTC는 이미 '엑스태킹(Xtacking)'이라는 자체 적층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여기에 중국 D램 업체 CXMT 기술과 화웨이의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 결합될 경우 중국식 HBM 개발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권 교수는 "이번 기술의 핵심은 단순 미세공정이 아니라 첨단 패키징 기술에 가깝다"며 "평면 방향 미세공정 경쟁이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만큼 반도체 산업은 3D 적층과 패키징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본딩·적층 장비까지 국산화하기 시작하면 향후 HBM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빠르게 추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美 봉쇄에 커지는 中 독자 생태계

중국은 설계 생태계 자립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베이징대 연구진은 최근 화웨이의 로직폴딩과 연동 가능한 3D 전자설계자동화 소프트웨어 프로토타입도 공개했다. 

층별로 따로 설계한 뒤 쌓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칩 전체를 하나의 3차원 구조물처럼 통합 설계하는 개념이다. 연구진은 이를 적용한 결과, 칩 내부 배선 길이가 30% 줄었고 발열과 전력 효율도 개선됐다고 언급했다.

업계에선 미국의 강한 대중 반도체 제재가 오히려 중국의 '우회형 자립'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경쟁력을 흔들 수준은 아니지만 중장기적으로 적층·패키징 중심의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송천 KAIST 경영대학원 교수는 "반도체 역시 결국 제조 기반 산업인 만큼 중국이 시간을 두고 따라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전기차나 철강처럼 대규모 투자와 생산 능력을 앞세워 격차를 빠르게 좁혀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특히 한국 반도체 산업이 제조 경쟁을 넘어 소프트웨어 중심 구조로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세계 주요 빅테크 대부분은 소프트웨어 기반 기업들"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AI 시대에도 메모리와 생산 역할에만 머문다면 장기적으로 성장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마이크로소프트·애플·테슬라 같은 기업들은 이제 필요한 반도체까지 직접 설계하려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단순 생산 능력보다 소프트웨어와 AI 생태계를 함께 장악한 기업이 시장 주도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고 제언했다.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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