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28일 국민성장펀드 기금운용심의회를 열고 AI 반도체·데이터센터 등 첨단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4조 원대 투·융자, 대출을 승인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1일 열린 국민성장펀드 출범식./제공 = 뉴스1
정부가 토종 인공지능(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등 국가 미래 먹거리 육성을 위해 4조 14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다. 특히 이번 지원 규모의 80%를 웃도는 3조 6000억 원 이상이 '반도체 설계(두뇌)-데이터센터(인프라)-전력망(혈관)'으로 이어지는 토종 AI 생태계 밸류체인을 완성하는 데 집중적으로 배치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8일 국민성장펀드 기금운용심의회를 열고 국산 AI 생태계 확장을 비롯해 차세대 백신, LFP 배터리 등 총 5건의 프로젝트에 4조 1400억 원의 자금(프로젝트 총규모 기준) 지원을 승인했다.
이번 자금 집행은 글로벌 빅테크에 맞서 '소버린 AI(독자적 인공지능)'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특히 전체 승인액의 대부분인 3조 6000억 원가량이 반도체 설계부터 인프라, 전력망으로 이어지는 'K-AI 밸류체인'을 완성하는 데 집중적으로 쏠렸다.
가장 규모가 큰 핵심 투자처는 국내 AI 반도체 팹리스 기업인 퓨리오사AI다. 첨단전략산업기금 3700억 원을 포함해 총 8000억 원 내외의 대규모 직접 투자가 단행된다. 국민성장펀드가 직접 투자하는 기업으로는 리벨리온과 업스테이지에 이어 세 번째 사례가 된다.
퓨리오사AI는 확보된 실탄을 바탕으로 최근 양산에 돌입한 2세대 신경망처리장치(NPU) '레니게이드'의 생산 물량을 대폭 늘리고, 차세대 HBM4를 적용한 3세대 칩 개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토종 AI 칩이 가동될 인프라 기반도 다진다. 중견 게임사 스마일게이트가 경기도 고양시에 건립하는 2조 8000억 원 규모의 K-콘텐츠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지분투자와 후순위대출을 합쳐 5000억 원을 지원한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해외 플랫폼에 쏠린 수요를 국내로 돌리고, 자체 인프라가 없는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서버를 임대해 준다는 복안이다.
아울러 AI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수적인 배전반을 생산하는 ㈜근우에도 200억 원의 저리 대출을 내어주며 전력 병목 현상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이번 승인안에 대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단순히 개별 기업 지원에 그치지 않고 반도체 설계부터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등 첨단 신산업의 가치사슬 전반을 촘촘히 엮어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며 "민간 자본 단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K-AI 밸류체인 구축에 정책 금융이 성공적인 마중물 역할을 해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국민성장펀드가 혁신 벤처를 위한 '모험자본'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시장에서 충분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대형사들의 '안전한 대출 창구'로 쓰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로 이번 심의회에서는 AI 분야 외에 SK바이오사이언스의 프리미엄 백신 공장 증설(3000억 원)과 엘앤에프 자회사 엘앤에프플러스의 LFP 양극재 양산 시설 구축(2200억 원)에도 10~12년 장기 대출이 승인됐다.
일부 금융권 관계자들은 "SK바이오사이언스나 엘앤에프 계열사와 같은 기업들은 그룹사의 신용도나 사업 규모 측면에서 민간 금융시장의 자금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며 "모험자본의 본연의 목적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자금 수혈이 시급한 초기 단계 기업들을 발굴하는 데 좀 더 비중을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기업의 대규모 공장 증설 지원이 지역 균형 발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펀드 집행 실적을 채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회수가 확실한 사업에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