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무슨 번아웃?”…10대 현실은 전쟁터다 [.txt]

엄지원 기자 2026. 5. 29.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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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번아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영국의 임상 심리학자가 펴낸 ‘내가 벌써 번아웃이라고?’에서는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 기후위기 등 세계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청소년의 번아웃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모녀의 말다툼을 엿들을 기회가 있었다. 사정인즉 대학생인 딸이 ‘휴학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엄마가 ‘후회하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답하면서 양쪽 모두 포문을 연 것이다. 딸은 ‘고등학교 때부터 쉬지도 못하고 달려왔다. 취업하면 평생 쉬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평생 쉬어서 내 마음을 모른다’는 망언을 내뱉기에 이르렀다. 이후 상황은 생략하겠다.

엄마에 대한 망언은 차치하고라도, 딸의 번아웃 호소에 선뜻 공감이 가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였다면 생각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임상 심리학자와 그림책 작가가 공동 집필한 책 ‘내가 벌써 번아웃이라고?’에서 저자들은 청소년 번아웃의 증상과 해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들은 “(청소년의 번아웃을) 주변 어른 중에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라며 “번아웃은 오랫동안 싫은 일을 억지로 해 온 어른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콕 짚는다. 뜨끔했다.

내가 벌써 번아웃이라고? l 나오미 피셔·일라이자 프리커 지음, 이민희 옮김, 창비, 1만4000원

번아웃은 왜 찾아올까. 우리 마음속에는 “일상이 크게 버겁지 않게 흘러가는 상태”, 즉 안정 구역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되돌아올 수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너무 오래 이어지면 더는 몸과 뇌가 괜찮다고 느끼는 안정 구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학업 경쟁을 비롯해 외모 경쟁, 교우 관계 등 전쟁터 같은 교실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10대들에게도 번아웃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지난 몇년간 코로나19, 기후위기 등 세계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청소년의 번아웃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청소년의 마음을 다독이는 책은 많다. 이 책의 미덕은 공감이다. 저자들은 ‘번아웃은 네 탓이 아니며, 오히려 몸이 제대로 작동한 결과’라고 일러준다. “학교는 선택지가 거의 없는 곳”이라며, 학교생활이 어떤 청소년에게는 얼마나 견디기 어려울지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해 준다. 꼭 학교에 다닐 필요는 없다는 말까지 해주니, 청소년에겐 든든하고 함께 읽는 부모에겐 다소 불편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회복 과정에 대한 안내가 친절하다. ‘고장’ 단계에서는 압박을 덜기 위해 피해야 하는 상황들을 제시하고, 나를 돌보기 위한 ‘수리’ 단계에서는 엉망이 된 수면 패턴을 되돌릴 방안까지 꼼꼼히 안내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에 새겨진 ‘희망’이라는 두 글자 또한 반갑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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