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가정·뜻깊은 직업… 한국서 행복한 삶 이뤘죠"
영국 유학 중 한국인 남자 만나
12년 원거리 연애 끝 가정 이뤄
출산·산후 관리 전문가로 활동
"새 생명 맞는 여정 동행 보람"
두 딸 키우며 독립심 함양 강조
대화·인내 통해 부부 갈등 풀어
이웃 친구 사귀고 취미생활 즐겨
공공 행정업무 등서 차별 느껴
머나먼 타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들은 정착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지만, 가족과 이웃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제 지역 사회 속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갈등과 이해를 반복하며, 평범하지만 단단한 일상을 만들어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이탈리아에서 온 아델 씨에게 들어봤다.
아델 씨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던 1998년,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운명처럼 지금의 한국인 남편을 만났다.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서로 멀리 떨어져 원거리 연애를 이어가다, 마침내 2010년 아델 씨가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두 사람은 함께하게 됐다. 현재 김해에 살고 있는 이 부부에게는 사랑스러운 두 딸과 귀여운 반려견 한 마리가 있다. 아델 씨는 "이 동네를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고 말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델 씨는 출산 및 산후 관리 전문가인 '둘라(Doula)'이자, 출산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초기 육아 단계에 있는 부부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자연주의 출산이나 모유 수유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산모가 병원에서 진통을 시작하거나 아기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곁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그는 "고객의 대다수는 외국인 엄마들로, 그중 절반 정도는 저처럼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국제 가정입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일을 하며 힘든 부분이 없지는 않다. 출산이라는 특성상 늘 '대기 상태(On-call)'여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진통을 시작하면 하던 일을 모두 제쳐두고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며, 때로는 24시간 이상 연속으로 곁을 지켜야 한다. 또한, 남편이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아내를 잘 도울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녁이나 주말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아델 씨는 한 부부가 새로운 생명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숭고한 여정에 동행하고, 출산이라는 경이로운 기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아델 씨의 한국에서의 삶도 녹록지 만은 않았다. 1999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당시만 해도 국제 부부가 많지 않았고, 서양인 여성과 한국인 남성의 결합은 더욱 드물었다. 남편 일가친척이 단번에 환영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특히 남편은 종가의 귀한 외아들이여서, 시댁 어른들로부터 인정받기까지 수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편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 끊임없이 부모님을 설득했다. '그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는 뒷이야기도 전한다. 12년간 떨어져 지내는 동안 아델 씨는 한국의 문화와 사회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한국을 자주 오가며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를 했다. 이 덕분에 이주했을 때 크게 당황하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델 씨의 자녀 양육과 교육관은 어떨까? 아이들에게 강인함과 독립심을 길러주는 한편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에 대해 결코 두려워하지 않게끔 키우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몇 시간씩 학업에 매달리는 한국의 극심한 경쟁 위주 교육 시스템에도 부정적이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청소년 자살률과 아이들이 느끼는 전반적인 불행지수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다. 한국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치안이 좋고 안전하다는 점은 큰 축복이지만, 사회 내면에는 분명 아이들에게 가혹하고 위험한 요소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그저 아이답게 인생을 즐기며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고 강조한다.
부부 간 갈등과 해결 방법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아델 씨는 남편과 함께한 지 올해 28년을 맞았지만 거의 매일 싸운다고 고백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국제 커플이라면 더더욱 의견 충돌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탈리아 속담에는 '싸우지 않으면 진짜 사랑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 결혼 생활이란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아델 씨는 "저희의 공용어인 영어로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려 노력하고, 서로에게 인내심을 가지려 합니다. 이제 저희는 각각 40대 중반, 50대 초반에 접어들면서 고집이 더 세지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고 말한다. 어머니로서 아이들 삶의 중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며, 남편에게는 좋은 부인인 아델 씨는 "저는 단순히 이 가정의 구성원일 뿐만 아니라, 이 집안에서 가장 없어서는 안 될 가장 핵심적인 사람입니다"라고 자랑했다.
아델 씨의 가계 원칙도 인상 깊다. 형편과 소득 수준에 맞춰 분수에 맞게 사는 삶에 만족하며, 빚을 지는 것을 싫어한다. 당장 현금으로 지불할 수 없는 물건은 애초에 사지 않는다.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무리해서 소비하는 문화는 한국 사회의 큰 문제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에서 자녀 교육비 부담이 너무 커진다면, 대학교를 포함한 모든 교육 과정이 무상인 이탈리아로 이주할 수도 있는 선택지가 있지만 이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대신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이 개선돼 이탈리아처럼 변화가 찾아오기를 고대한다.
김해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덕분에 이제는 김해가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아델 씨.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라는 점이 지역 사회에 녹아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아이들의 학교 친구들이 다 알아보고, 반려견도 동네에서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동네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닝(PT)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웃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다. 트레이너 선생님, 단골 카페 사장님과 깊은 친구가 돼 작은 글로벌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모여 보드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가끔은 함께 조깅이나 산책을 즐긴다.
아델 씨의 취미는 무엇일까. 나날이 업무로 바쁜 중에도 틈을 내 동네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출신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자주 시간을 보낸다. 또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세 번씩 PT 스튜디오에 가서 근력 운동을 한다. 여성에게 근력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하는 일이 강도 높은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늘 강인한 체력과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도 때로는 외국인을 향한 은근한 차별을 느끼곤 한다. 백인 여성인 이유로 상대적으로 덜한 편일 수 있지만, 특히 행정적인 절차나 공공 업무를 처리할 때 차별과 장벽을 마주한다. 한 가지 예로 인구주택총조사 같은 공적 조사에서 통계 공무원들이 아델 씨를 세대원 수나 가구원 수에 제대로 포함하지 않아 속이 상했다고 털어놓는다. 이는 외국인도 엄연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으로 마치 외국인은 사람이 아니라는 듯한 메시지를 주는 것과 같아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끝으로 아델 씨는 "행복하게도 저는 지금 제가 늘 꿈꿔왔던 바로 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멋진 직업, 그리고 곁을 지켜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이어 딱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서 "고향인 이탈리아가 한국과 조금만 더 가까워서 친정 가족, 친척들을 더 자주 보러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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