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사이를 전시하다…국립현대미술관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 가보니
6월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3·4·5 전시실
대표작을 비롯해 초기 작업부터 최근 회화 연작까지 50여 점을 선보여

입을 벌린 상어는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잠겼고 해골 위에는 8600개의 다이아몬드가 빛난다.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수천마리의 실제 나비 날개로 만들어졌다. 죽음을 가장 화려하면서도 불편하게 전시해온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세계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6월 28일까지 데이미언 허스트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을 진행한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서울관 지하 1층 3·4·5전시실과 서울박스, 2층 MMCA 스튜디오에서는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천년’ 같은 대표작을 비롯해 초기 작업부터 최근 회화 연작까지 50여 점을 선보인다. 총 4부로 나눠 40여 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망한다.

전시 종료를 한 달여 앞두고 5월 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을 찾았다. 관람 열기가 뜨거워 미술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 시간 단위로 회차를 나눠 입장을 진행하고 있었다. 누리집에는 현장 구매가 가능하지만 온라인 예매를 권한다는 안내 문구도 올라왔다. 실제로 주중 오후였는데도 2시 회차 입장이 시작되자 수백명의 관람객이 길게 줄을 서며 차례를 기다렸다.

1부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에서는 작가의 20대 시절 작품이 주를 이룬다. 전시장 초입에서는 허스트의 초기 콜라주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젊은 시절 그는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방황하던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중 저장강박증을 앓던 노인의 집을 드나들며 수많은 잡동사니와 책, 버려진 물건들을 접했다. 처음에는 무질서한 쓰레기처럼 보였던 사물 속에 노인의 인생이 담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영감을 받아 허스트는 기존 사물을 새롭게 조합하는 방식 속에서 자신만의 조형 감각을 키웠고 이는 훗날 설치 미술 작업의 바탕이 됐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작품은 ‘스핀 페인팅(Spin Painting)’ 연작이다. 회전하는 원형 캔버스 위에 물감을 뿌리면 원심력에 따라 물감이 흩어지며 우연한 무늬가 완성된다. 놀이공원 회전기구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으로 화면에는 즉흥성과 에너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허스트는 ‘아름답게(Beautiful)’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긴 문장 형태의 제목을 붙이며 작품 자체보다 감각과 분위기를 강조하기도 했다.

2부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에서는 데미안 허스트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은 거대한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담아 전시한 작품이다. 입을 벌린 채 유리 수조 안에 놓인 범상어는 금방이라도 관람객을 향해 돌진할 듯한 위압감을 준다. 두꺼운 유리 너머로 보이는 푸른빛은 마치 바닷속 한가운데에 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관람객은 동시에 안전한 위치에 서 있다. 가장 공격적인 포식자의 형상을 눈앞에서 마주하면서도 실제 위험은 느끼지 않는다. 허스트는 이런 긴장을 통해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죽음을 알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경험하거나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죽음을 경험하는 순간에는 더 이상 그것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 제목에 담긴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은 바로 인간 의식의 한계를 일컫는다.

허스트는 또 다른 대표작 ‘천년’에서도 생과 사의 순환을 다뤘다. 작품에는 살아 있는 파리와 죽은 소의 머리, 전기 살충 장치가 함께 놓인다. 파리들은 태어나고 먹이를 찾고 번식하다가 전기 장치에 닿아 죽음을 맞는다. 관람객은 전시장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탄생과 소멸의 과정을 지켜본다. 질병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생물학적 과정이며, 삶 역시 결국 소멸을 향해 흘러간다는 점을 작품에 녹여냈다.

3부 ‘침묵의 사치’ 에서는 다이아몬드 해골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가 등장한다. 실제 인간 두개골 본을 떠 만든 조형물 위에 8600개가 넘는 다이아몬드를 조성한 작품이다. 허스트는 이 작품을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멕시코에서는 해골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죽음을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허스트 역시 찬란한 다이아몬드로 죽음을 감싸며 인간이 품고 있는 영원에 대한 욕망과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데미안 허스트 전시를 본 정경옥씨(서울·56)는 “실제로 보니 작품이 주는 압도감이 예상보다 훨씬 컸다”며 “직접 보니 왜 많은 사람이 찾는지 알 것 같았다”고 말했다. 동물 사체를 활용한 작품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는 “작가와 작품 세계를 충분히 이해한 뒤 바라볼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은 원래 다양한 논쟁을 동반해 왔다”며 “동물보호 관점과 예술적 관점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허스트의 작품은 불편함과 매혹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전시는 죽음을 눈앞에 꺼내놓지만 역설적으로 관람객은 지금 살아 있다는 감각을 깨친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열린다. 관람료는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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