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아파도 수백 가지 검사 “멀쩡한 사람 환자 만드는 사회”

장시간 노동·자연적인 노화 등
신체 기능 저하 질병으로 인식
“한국 의료 시스템에 관심을”
다음 중 책 <가짜 환자>(창비)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1. 보험사기를 치기 위해 아프지 않은데도 입원을 요구하는 환자. 2. 다른 사람 신분으로 진료받는 환자. 3.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수많은 검사를 받다가 사소한 이상까지 발견돼 ‘환자’가 되어버린 사람.
답은 3번이다. 저자 김현아 한림대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사진)는 수십년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환자를 만났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도움을 줄 수 없고 내게 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는 환자가 너무 많이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김 교수는 긴 노동시간과 스트레스, 노화처럼 삶과 환경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불편과 통증까지도 병원 검사로 원인을 찾아 반드시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여기게 만드는 현대 의료 시스템에 주목했다. 이어 “환경 및 사회적 문제를 도외시하고 병원에서만 답을 찾으려다가 불필요한 검사와 투약 등으로 오히려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짜 환자’라는 개념에 담아 최근 책으로 냈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김 교수를 만나 ‘가짜 환자’를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에 관해 이야기했다.
“요즘은 그냥 이유 없이 아프다고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책의 첫 장은 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를 찾는 젊은 환자로 시작한다. 청년들은 통풍, 관절염, 섬유근통 등의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진단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다. 통풍을 진단받은 한 20대 청년은 혈압·콜레스테롤·혈당 수치가 모두 좋지 않았다. 원인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장시간 노동이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일하는 그는 이어지는 야근 탓에 휴일에는 밀린 잠을 자고, 식사는 대부분 배달 음식으로 해결했다.
또 다른 20대 청년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수백만원 상당의 관절염 검사를 받은 끝에 김 교수의 진료실까지 왔다. 귀에 새하얗게 쌓인 귀지를 발견한 김 교수가 하루에 누워 있는 시간을 묻자 “20시간 가까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립·은둔 상태였던 그에게 관절염약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었다. 김 교수는 “이런 환자들을 만나면서 건강한 사람을 병들게 하는 사회의 문제에 관해 깊이 고민하게 되고, 이에 대해 내가 진료실에 앉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좌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책에선 큰 이상이 없다는 설명을 들었는데도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확신하며 검사와 처방을 계속 요구하는 환자들로 가득 찬 진료실 풍경이 묘사된다. 어떤 환자들은 검사를 반복하고,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또 다른 검사를 요구한다.
김 교수는 이를 두고 “‘소비주의’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심리가 맞물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질병이 가져오는 사회적 결과가 끔찍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발버둥 치다” 환자가 되고 나서야 오히려 안심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노화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기능 저하조차 질병으로 규정하고 치료하려 한다. 김 교수는 “퇴행성 관절염은 지팡이를 짚고 활동하면 운동량을 유지해서 수술적인 치료보다도 좋을 수 있는데, 한사코 거부하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한국 의료 시스템의 여러 문제를 사람들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고 싶었다”며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화해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읽은 사람들이 ‘불확실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완벽한 것은 없고,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몸은 수많은 요소가 얽혀 있는 ‘복잡계’라서 검사를 거듭하다 보면 어떤 이상이 발견될 수밖에 없거든요. 결국 건강하다는 것도 마음의 평안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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