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發 매도 충격 피했지만… “국민 노후 자금으로 증시 부양” 비판
수백조원 매물 폭탄 우려 해소
2021년 ‘동학개미운동’ 당시 데자뷰 지적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보유 비율 목표치를 높이면서 일각에서 우려하던 국민연금발(發) 매도 충격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28일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를 열고 전체 투자 자산 중 국내 주식 비율을 현행 기준보다 상향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이번 결정으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노출도가 지나치게 높아지게 됐다.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한국 주식은 글로벌 시장에서 위험성이 큰 자산으로 평가된다. 당장은 반도체 초호황에 국내 증시가 급등했지만,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해 국내 증시가 급격한 조정을 받을 경우 국내 주식 비중이 높은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동학개미운동’으로 국내 증시가 급등했던 2021년 당시에도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렸었다. 하지만 이후 증시가 하락하면서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이 타격을 받았다.

기금위는 이날 오후 4시 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회의를 열고 올해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5.9%포인트(p)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여기에 전략적자산배분(SAA)과 전술적자산배분(TAA) 허용 범위 각각 ±2%, ±3%를 모두 더해 국내 주식 비중을 최대 25.8%까지 늘릴 수 있게 했다.
기금위는 “상법 개정 등에 따른 국내 주식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 가능성과 국내 주식 실제 비중 확대 상황을 고려했다”며 “기금의 장기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이고 리밸런싱에 따른 시장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금위는 또 국내 증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SAA 허용범위도 한시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다만 구체적인 수치는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개하지 않았다.
당초 국민연금은 올해 1월 회의를 통해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14.9%로 설정했다. 단순 계산으로 이에 맞추려면 240조원, 최종 허용 범위인 19.9%까지 맞추려면 320조원까지만 보유할 수 있었다. 국내 주식을 최소 75조원에서 155조원까지 팔아야 했다.
올해 2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기금은 총 1610조원 규모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내주식 395조(24.5%), 국내채권 298조(18.5%), 해외주식 573조원(35.6%), 해외채권 101조원(6.3%), 대체투자 234조원(14.6%), 단기자금 6조원(0.3%)이다.
지난 2월 6300포인트 수준이던 코스피 지수가 이달 8000선을 돌파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은 안도하게 됐다. 기금위가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을 늘리지 않았다면, 기존 비율을 맞추기 위해 국민연금은 대규모 주식을 매도해야 한다. 2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기존 비율(14.9%)을 맞추기 위해 매도해야 하는 주식 규모는 155조원에 이른다. 이 경우 증시가 받는 충격을 클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당장 국민연금발 매도 폭탄은 피했지만, 국민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이 위험한 증시 부양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지금은 국내 증시가 급등하고 있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차익 실현 기회를 놓친 국민연금이 그 손실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2021년 가계 자금 유입으로 증시가 급등했던 ‘동학개미운동’ 당시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21년 코스피 지수는 사상 처음 3000포인트를 돌파하며 강세를 보였다. 개인 투자 자금이 증시로 대거 유입된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의 결과였다.
주가가 급등하자 당시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 주식 평가 가치도 급격히 상승했고, 2021년 국내 주식 목표 비중(16.8%)을 크게 넘었다. 국민연금은 이 비율을 맞추기 위해 국내 주식을 매도했는데, 비판 여론이 커졌다. 여론과 정치권의 압력에 따라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높였다.
하지만 고점에서 차익을 실현하지 않고 버틴 대가는 상당했다. 글로벌 긴축이 시작된 2022년 국내 주식 시장이 가라앉자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수익률은 마이너스(-)22.76%를 기록했다. 전체 기금 수익률도 8.22% 떨어지면서 국민 노후 자금에 큰 손실을 입혔다.
이준서 한국증권학회 회장은 “국민연금의 최우선 과제는 기금을 효율적으로 불려 기금 고갈 시점을 단 일 년이라도 더 늦추는 것”이라며 “과거처럼 여론에 떠밀려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리거나 매도를 유예하는 방식은 향후 하락장이 올 때 연금 자산 전체를 다시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민연금을 국내 주식 부양용으로 활용한다, 혹은 정책적 요구에 따라 움직인다는 지적은 전혀 맞지 않는 말”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시장이 좋아서 벌고 있는데, 이런 장을 포기하고 수익률이 떨어지는 채권 시장에 갈 수 없다”며 “국민연금은 장기 투자자로서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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