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만 260곳…'매도 폭탄'에 떨던 개미들 한숨 돌렸다
하루 최대 리밸런싱 규모 줄여
국내 증시 변동성에 선제 대응
국민연금의 이번 자산 배분 조정은 국내 증시 수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 시가총액의 8~9%를 보유한 최대 장기 투자자로, 지분 5% 이상을 가진 상장사도 260곳 안팎에 달한다. 현재 국내 주식 비중은 27% 이상으로 새 목표치를 웃돌지만 전략적자산배분(SAA) 허용 범위 확대와 일일 리밸런싱 규모 축소가 동시에 이뤄져 매도 물량이 단기간에 집중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어느 정도까지 보유할 수 있는지는 SAA와 전술적자산배분(TAA) 허용 범위에 따라 달라진다. 기존 체계에서는 국내 주식 목표 비중 14.9%에 SAA 허용 범위 ±3%포인트와 TAA 허용 범위 ±2%포인트를 더해 최대 19.9%까지 보유할 수 있다. SAA는 목표 비중과 실제 비중 간 차이를 일정 범위까지 허용하는 장치이고, TAA는 기금운용본부가 시장 상황에 따라 단기적으로 비중을 조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이 완충지대는 더 넓어졌다. 국내 주식 목표 비중 자체가 20.8%로 높아진 데다 SAA 허용 범위도 한시적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구체적인 SAA 허용 범위를 공개하지 않은 것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운용 기준이 시장에 노출되면 투자자들이 이를 선반영해 시장 충격을 완화하려는 취지가 무력화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리밸런싱 규칙을 손질한 점도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기준 비중이 SAA 허용 범위를 벗어나면 매도, 매수를 통해 다시 허용 범위 안으로 조정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일 최대 리밸런싱 규모를 줄여 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를 더했다. 6월 말 리밸런싱 유예가 종료되더라도 곧바로 대규모 매물이 쏟아지는 구조가 아니라 시장 상황을 보며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국민연금은 장기 국내 주식 축소 로드맵에도 변화를 예고했다. 이 기관은 그동안 기금 순유출 시대에 대비해 국내 주식 비중을 2030년까지 매년 0.5%포인트씩 낮추는 방향을 유지해왔다. 고령화로 연금 지급액이 늘어나는 국면에서 국내 자산을 한꺼번에 처분하기 어려운 만큼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 비중을 높여 자산을 분산하겠다는 취지였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국 증시가 재평가되자 국내 주식은 줄여야 할 자산으로만 보기 어려워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주가 코스피지수 상승을 이끌고, 주주환원 확대와 밸류업 기대가 더해져 국내 주식은 국민연금 전체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핵심 자산군으로 부상했다.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현실화한 것도 이 같은 시장 변화를 장기 운용 체계에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중기자산배분 방향도 확정됐다. 기금위는 기존 해외투자와 대체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하면서 2031년 말 기준 자산군별 목표 비중을 주식 55% 내외, 채권 30% 내외, 대체투자 15% 내외로 정했다. 2027년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2026년과 같은 20.8%로 유지된다. 그 밖의 2027년 목표 비중은 해외 주식 35.6%, 국내 채권 21.8%, 해외 채권 7.4%, 대체투자 14.3%다.
장기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증시 랠리에 맞춰 자산 배분 규칙을 손보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2021년에도 동학개미 열풍과 정치권의 매도 자제 압박 속에 국내 주식 목표 비중 이탈 허용 범위를 넓혔다. 당시에는 시장 충격 완화가 명분이었지만 이듬해 글로벌 긴축과 증시 조정이 겹치면서 국내 주식 수익률은 -22.76%로 떨어졌다. 단기 수급 안정과 장기 자산 배분 원칙 사이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가 향후 과제로 남은 셈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이번 중기자산배분은 최근 시장 여건 변화에 대응해 국민연금기금의 장기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이면서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한 결정”이라며 “앞으로도 시장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원칙과 유연성이 조화되는 기금 운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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