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조] 나도 데니아가 정말 싫어

서동규 기자 2026. 5. 2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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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더 먹먹했던 데니아의 결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되묻는 서사가 백미였다
나는 데니아가 정말 싫어... (사진= 쿠로게임즈)

※ 해당 기사에는 명조 3.3 버전 조수 임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쿠로게임즈 '명조: 워더링 웨이브'의 3.3 버전 조수 임무 '어젯밤의 뭇별들'은 출시 직후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방랑자들은 라하이 로이 서사와 에이메스의 이야기에 푹 빠진 채 축제 같은 분위기를 즐겼다.

이후 후반부 업데이트와 함께 추가된 3장 에필로그 '녹아내린 밤하늘 아래'에서는 그동안 떡밥만 무성했던 '데니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풀렸다.

이미 전반부 조수 임무에서 데니아가 잔성회의 창조물이라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졌던 만큼, 많은 방랑자들은 "과연 데니아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불안은 현실이 됐다. 데니아의 서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적인 분위기로 이어진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방랑자에게 부탁한 마지막 소원이 "생일날 함께 외출해달라"는 데이트였다는 점부터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끝내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은 보는 입장에서도 괜히 먹먹해진다.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했지만 끝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감정을 담백하면서도 묵직하게 풀어낸 서사가 인상적이었다. 명조 특유의 화려한 액션 연출 없이도 이 정도 몰입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호불호가 갈릴 요소도 존재한다. 이미 에이메스 서사에서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던 만큼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성을 다루는 주제 자체는 훌륭했지만, 전개 방식과 결말은 취향 차이가 분명하게 갈리는 구조다.

그럼에도 데니아라는 캐릭터에 애정이 있었다면 충분히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실제 커뮤니티에서는 '슬데증(슬픈 데니아 증후군)'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데니아를 좋아했던 방랑자라면 후유증이 남을 만한 서사였다.

 

일상적인 데이트가 더 슬펐던 이유



이미 체념한듯한 데니아 (사진= 서동규 기자)
이거 아무리 봐도 데이트 요청이다 (사진= 서동규 기자)

데니아는 이야기 초반부터 일종의 '사망 플래그'를 세운다. 주파수가 지속적으로 유실되는 시한부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스페이스 콜렉티브가 그녀를 살리기 위해 협업을 제안하지만 데니아는 삶 자체를 포기한 듯 모든 요청을 거절한다.

방랑자를 대하는 태도도 차갑다. "내가 감동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나는 너를 못 믿겠는데" 같은 자조적인 반응을 반복한다.

그랬던 데니아가 갑자기 "이번 주말이 내 생일"이라며 "함께 외출해준다면 협업 제안도 고려해보겠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데니아랑 데이트 이벤트인가 보다"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실제 분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방랑자와 데니아는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데니아는 명식의 공명자'라는 진실을 숨기고 있다. 귀엽고 평범한 대사들이 오가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분위기를 뒤집는 문장들이 툭 튀어나오며 현재 데니아의 상황을 다시 상기시킨다.

찌릿데니아 너무 귀엽다 (사진= 서동규 기자)

시그리카를 만나러 가는 장면도 그렇다. 분명 본인이 먼저 만나자고 했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기 직전 두려움에 도망치려 하는 모습은 평범한 학생 그 자체였다.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 역시 인상 깊다. 귤, 레인보우 빈 팝 캔디, 토치파인 열매, 카라카라까지 모두 시그리카가 좋아하는 재료들이다. 반대로 개그성 연출로 등장했던 괴식 디저트 메뉴들은 전부 시그리카가 싫어하는 음식이었다. 즉, 데니아는 누구보다 시그리카를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생일보다 친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시그리카가 "내게 숨기는 게 있냐"고 묻자 일부러 차갑게 선을 긋는 장면에서는 괜히 마음이 저릿해진다. 자신의 절친에게 "사실 나는 명식의 공명자고, 곧 죽을 것 같아"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어느 정도 진실을 눈치챈듯한 시그리카 (사진= 서동규 기자)

나스타샤를 만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자신 때문에 한쪽 팔을 잃고 기계 의수를 달게 된 선배를 바라보는 데니아의 감정선이 무너지는 듯한 연출은 꽤 인상 깊었다.

결국 이번 에필로그의 핵심은 '데이트'라는 평범한 일상을 통해 데니아라는 캐릭터에 몰입하게 만든 점이다. 가벼운 일상 대화가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지는 괴리감이 스토리 몰입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명조가 말하는 '인간다움'



명조가 말하는 '인간다움'은 무엇일까 (사진= 서동규 기자)
본인의 선택이 어떻든, 남은 사람은 나아갈 수밖에 없다  (사진= 서동규 기자)

생일 외출이 끝나갈 무렵, 데니아는 방랑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오늘은 자신의 진짜 생일도 아니며, 과연 자신이 사람다운 최후를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어 꿈속에서 "데니아, 데니아, 다스비데니아"라는 목소리를 듣는다고 고백한다.

표기는 '다스비데니아'지만, 러시아어 작별 인사인 '다스비다니야'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정작 데니아 본인은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데니아는 방랑자에게 "진짜 이름과 생일이 있다면 사람으로 죽을 수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미 많은 것을 되돌리기엔 늦었지만, 적어도 사람답게 죄를 짊어지고 품위 있게 작별하고 싶다"는 대사는 이번 스토리 핵심을 관통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리나시타 시절에 인간의 마음을 이미 본 전적이 있다 (사진= 서동규 기자)

명조는 꾸준히 '인간다움'을 이야기해왔다. 그리고 이번 데니아 서사는 "비록 인간이 아닐지라도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충분히 인간답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과거 리나시타에서 등장했던 아비디우스와 미아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 점이 인상 깊었다. 이들 역시 잔성회에게 삶을 빼앗기고 이용당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는 인간다운 선택으로 자신의 운명에 저항했다. 이전 스토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데니아 서사의 설득력과 감정선도 훨씬 강해졌다.

 

 

액션 없이도 충분히 강렬했던 결말



결국 데니아는 어둠의 평원으로 홀로 떠난다 (사진= 서동규 기자)
처음 겪었던 공포 게임식 연출 (사진= 서동규 기자)

방랑자에게 마음을 연 데니아는 자신의 성흔 속에 잔성회장이 숨겨둔 무언가가 있다고 밝힌다. 이후 방랑자는 레비아탄의 힘을 분리하는 데 성공하지만, 데니아는 "집에 자주 와"라는 의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방랑자가 케이크를 가지러 간 사이, 데니아는 홀로 어둠의 평원으로 향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구간도 여기였다. 그동안 명조에 공포 연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대놓고 호러 분위기를 밀어붙인 적은 처음이었다.

실제로 한 챕터 전체가 공포 게임처럼 구성되면서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기자는 공포 게임에 내성이 있는 편이 아니다. 그래도 데니아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라하이 로이 정신'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자신의 방에 도착한 데니아는 과거의 흔적들을 하나씩 바라본다. 보이드매터학 교재, 입학 가이드, 시그리카와 찍은 사진까지 아카데미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긴 공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방은 데니아에게 가장 괴로운 장소이기도 했다. 편히 쉬는 '집'이 아니라, 자신을 속박하던 공간처럼 묘사되는 연출이 유독 씁쓸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생일 축하 노래를 리믹스한 듯한 BGM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솔직히 여기까지 오면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밖에 없다. 설마 에이메스에 이어 데니아까지 퇴장시키려는 건가 싶었지만, 쿠로게임즈는 이미 그런 전적이 있는 개발사다.

안돼....그러지 말아다오... (사진= 서동규 기자)
결국 데니아는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사진= 서동규 기자)

결국 데니아는 자신의 방에 숨겨진 실험 시설을 직접 파괴하고, 명식의 조각을 흡수한 뒤 보이드매터 너머로 몸을 던진다. 사람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선택이었다.

특히 데이트 내내 방랑자에게 "싫어"라고 말하던 데니아가 마지막에는 "다음에 만난다면 좋아로 바꿔서 말할게"라고 남기는 장면은 정말 잔인할 정도로 강렬했다. 쿠로게임즈는 정말 인간의 마음이 있는걸까.

물론 완전히 사망했다는 암시는 아니다. 에이메스 역시 보이드스페이스 너머에서 돌아왔고, 데니아 인연 스토리에서도 생존 가능성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에필로그는 오래 여운이 남을만한 이야기였다.

다음 스토리에서 다시 데니아를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꼭 대화 선택지에 '싫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데니아가 정말 싫어.. (사진= 서동규 기자)

hopesre@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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