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정리해고?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는 석달 먼저 안다

“AI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규모로 대체할 실질적 가능성이 있다.”(크리스 올라 앤트로픽 공동 창업자)
“우려했던 만큼 사무직 일자리를 빼앗아 가지 않았다.”(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인공지능(AI)이 인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최근 AI 업계를 대표하는 두 인물의 진단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그렇다면 AI 확산으로 인한 일자리 상실의 피해자 당사자일 수 있는 직장인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문성욱 팀블라인드 대표는 직장인들의 생각을 가장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가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해 운영 중인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Blind)’는 한국과 미국·인도·캐나다 등 주요 기업 재직자 1400만명가량이 이용하고 있다. 미국의 비즈니스 고용 중심의 SNS인 ‘링크드인’이 주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고, 잘 보이려는 공간이라면 블라인드는 ‘가공되지 않은 현실’을 그대로 담아 미국에서 ‘링크드인의 반대편’으로 불린다.
최근 한국을 찾은 문 대표를 만나 블라인드에 나타난 AI 시대 고용 불안의 현실과 전망을 들었다. 문 대표는 AI발 해고는 이미 시작됐고, 그 신호가 직장인들의 익명 대화를 통해 데이터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블라인드의 이직·해고·창업 관련 키워드 검색량은 2022년 약 55만건에서 2025년 약 82만건으로 늘었다”며 “해고는 이미 시작됐고, 아직 시작하지 않은 한국의 구조 조정은 미국보다 더 급격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팀블라인드는 이런 현실을 반영해 고용 변화의 데이터를 읽어내는 AI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해고 3개월 전, 데이터가 먼저 안다”
문 대표는 본지 인터뷰에서 “AI로 인한 해고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블라인드 데이터에서도 그 신호는 뚜렷하게 확인된다”고 했다. 그는 특정 회사가 직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하기 전부터 블라인드에선 직원들의 반응이 나타난다고 했다. 블라인드에서 엿볼 수 있는 해고의 단계는 세 국면에 걸쳐 이용자 행동 변화로 드러난다. 대규모 해고설이 도는 초기엔 ‘RTO(사무실 복귀)’ ‘채용 중단’ 같은 키워드 검색이 늘며 앱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해고 발표 임박 단계에선 ‘레이오프’ ‘PIP(성과 개선 프로그램)’ 검색과 함께 게시물 조회·작성 같은 참여 지표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 해고가 공식화된 이후엔 ‘퇴직금’ ‘이직 제안’ 등을 찾고, 다른 회사에 대한 검색량도 함께 급증한다. 문 대표는 “정리 해고는 실제 벌어지기 3개월 전쯤 미리 파악된다. 아마존·메타의 정리해고 때도 똑같았다”며 “미국 블라인드는 ‘지옥의 아우성’이라 할 만큼 일자리에 대한 성토가 엄청나다”고 했다.
문 대표는 AI발 해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2024년이라고 했다. 그는 “초창기 AI는 제한적으로 능력을 발휘해 초급 엔지니어를 대체했지만 이후 중급·고급, 다시 디자인·데이터 분석 등 다른 직군으로 확산했고 기업의 해고도 이 순서에 맞춰 확산했다”고 했다.
특정 회사의 대규모 해고는 다른 회사 직원들에게도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지난해 10월 아마존이 대규모 감원했을 때 비슷한 규모의 다른 회사 직원들까지 블라인드 접속과 글 작성이 늘었다”며 “‘업계 전반에서 벌어질 일의 시작’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대표는 최근 기업들의 대규모 해고가 ‘AI가 대체 가능한 규모’를 넘어선 과잉 해고라고 진단했다. 그는 “AI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회사들이 과도한 규모로 해고에 나섰고, 막상 해고를 해도 회사 운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다른 회사도 덩달아 과잉 해고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블라인드 데이터에는 연차에 따라 위기를 실감하는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문 대표는 “그동안 주니어들이 활동량 1위였는데 최근에는 10년 차 전후 사용자가 활동량 1위를 찍고 있다”며 “(해고 등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활동 지표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회사에서 잘려도 갈 곳이 있었지만, 요즘은 일자리 찾기가 점점 어려워져 고용의 유연성이 높은 미국에서도 심리적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중간 단계 없는 한국이 더 위험할 것”
블라인드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구조조정은 신입 채용 축소→중간 관리자 해고→전 직군 확산 순으로 진행됐다. 문 대표는 현재 한국은 신입 채용을 줄이는 첫 단계라고 봤다. 문 대표는 “거시지표를 보면 한국의 구인배수(구직자 대비 구인 건수)가 20년 만에 최저치”라며 “미국으로 치면 가장 앞 단계로, 2년쯤 뒤처져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강력한 고용 보호 제도와 해고하는 회사는 나쁜 회사라는 사회적 인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 역시 미국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시기를 못 박지는 않았다. 문 대표는 “1년 뒤일지 2년 뒤일지 정확히 모른다”면서도 “미국은 AI 발전 속도에 맞춰 단계적으로 해고했지만, 한국에선 중간 단계 없이 곧바로 전 직군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 올해 당장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한국에서 대규모 해고가 닥쳤을 때 양상은 미국에서보다 훨씬 급격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 팀블라인드는 이달 말 새로운 AI 서비스 ‘블라인드 AI’를 한국·미국·인도 등 서비스 중인 모든 국가에 동시 출시한다. 13년간 쌓인 각 기업 재직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데이터를 거대언어모델(LLM)을 통해 외부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체류 시간 폭증, 타사 검색량 급증 같은 위험 신호가 어느 회사에서 나타나고 있는지 외부인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기업용(B2B)으로는 경쟁사 대비 기업 문화 비교나 재직자 정신 건강 지표,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리스크와 구조 변화 신호를 제공한다. 개인용(B2C)으로는 이용자 이력서와 가장 잘 맞는 기업을 추려주는 서비스를 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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