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리 토끼가 같은 방향으로’···한은, ‘반도체 독주’ 속 금리 인상 깜빡이 켰다

허아은 기자 2026. 5. 2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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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첫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연 2.50% 동결·성장률 2.6% '상향'
"갈 길 명확" 통화 긴축 사이클 신호탄 시사
내수 양극화 지적엔 "낙수효과 내년 예상"
28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한국은행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8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동결했다. 지난해 7월 이후 8번째 금리 동결이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고유가 충격 속에서도 반도체 중심의 이례적인 독주와 정부 추경 효과가 맞물리며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2.7%로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이번 금통위는 표면적으로는 금리 동결을 택했으나 내면적으로는 사실상 '인상 사이클의 서막'을 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의 딜레마 상황과 비교하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막 뛰어가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딜레마가 있는데 이번에는 예외로 물가를 보나 성장을 보나 환율을 보나 부동산을 보나 갈 길이 비교적 명확하다"라고 발언해 향후 전개될 긴축 기조의 명확성을 예고했다.

성장은 '쾌조' 물가는 '비상'···경제전망 대폭 수정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26년 5월 경제전망(Indigo Book)'은 중동발 물가 충격과 반도체 주도 성장으로 요약된다. 한은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2월 제시했던 2.0%에서 2.6%로 0.6%포인트나 끌어올렸다.

이 같은 강력한 상향 조정의 배경에는 1분기 깜짝 성장(전기 대비 1.7% 성장)을 견인한 글로벌 반도체 경기의 가파른 확장세가 자리 잡고 있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중동 전쟁 여파가 올해 국내 성장률을 0.4%포인트 깎아먹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겠으나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반도체 경기와 IT 수출 호조가 성장률을 0.7%포인트나 밀어 올리는 '상쇄 효과'를 냈다. 여기에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0.2%포인트, 증시 호황에 따른 자산 효과가 0.1%포인트를 각각 추가로 기여할 것으로 추정됐다.

문제는 물가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7%로 상향 조정했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 역시 2.1%에서 2.4%로 올라갔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 등으로 브렌트유가가 2분기 중 평균 103달러까지 치솟는 등 고유가의 직접적 충격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 충격은 가치 사슬을 타고 공업제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전이되는 간접 효과를 낳고 있으며 경기 개선에 따른 수요 압력까지 가세하는 모양새다.

총재는 체감 물가의 심각성을 묻는 질의에 "4월 근원물가는 아직 2.2%지만 다른 지표를 보면 분명히 인플레이션 압력이 섞여 있다는 것을 다 추측하고 있다"며 "특히 소비자물가 중 구매 빈도가 높은 140개 품목을 모은 생활물가지수가 4월에 2.9%를 기록해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소수의견? "전략의 차이일 뿐, 보는 곳 같아"

이번 금리 동결 결정은 만장일치가 아니었다. 금통위원 7명 중 장용성 위원과 유상대 위원 등 2명이 기준금리를 2.75%로 0.25%포인트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인플레이션 상방 리스크가 현실화된 만큼 한은이 선제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는 취지다.

비록 5명 위원의 무게중심이 중동 사태의 전개 추이와 4월 이후 입수될 추가 물가 데이터를 조금 더 확인한 뒤 행동하자 쪽으로 실리면서 금리는 2.50%로 묶였지만 소수 의견의 등장은 사실상 한은의 다음 행보가 인상을 향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신 총재는 이에 대해 "이번에 사실 금리를 올리는 것도 그 당위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케이스를 만들 수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다만 아직 근원물가에 대한 4월 이후의 다음 통계가 없는 상황이어서 불확실성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지켜보자는 의견이 무게중심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수 의견과의 이견에 대해 "대체로 같은 인식 하에서 전략적인 차이, 즉 기술적인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고 덧붙여 금통위 내부에서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물가·성장·금융, 모두 같은 방향 가리켜

흔히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과 성장 지원, 금융 안정(부동산 및 가계부채)이라는 여러 목표가 충돌할 때 깊은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성장세가 꺾이면 물가가 높아도 금리를 올리기 어렵고 가계부채가 지연되면 경기를 위해 금리를 내리기 주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거시경제 지표는 도리어 한은의 손을 한 방향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것이 신 총재의 진단이다. 그는 "우리가 정책을 수행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정책 목적이 서로 상충돼서 두 마리 토끼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할 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막 뛰어가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딜레마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 뒤 "이번에는 예외로 물가를 보나 성장을 보나 환율을 보나 부동산을 보나 갈 길이 비교적 명확하게 돼서 기준금리를 앞으로 상승함으로써 이런 여러 요소를 일관성 있게 관리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성장률이 2.6%라는 수치로 받쳐주고 있으니 경기 위축 걱정 없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체력이 확보됐고 나아가 고공행진 중인 원·달러 환율(1500원 내외)과 다시 고개를 드는 수도권 부동산 및 가계부채 문제를 억제하기 위해서도 금리 인상이라는 단일 처방전이 전방위적으로 유효하다는 판단이라고 풀이된다.

'호조' 반도체, "소비와 투자 통해 전국민에게 돌아갈 것"

기자간담회에서는 한국 경제의 착시 현상과 내수 양극화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반도체 부문만 초호황을 누릴 뿐 소상공인이나 비IT 제조 부문 등 전반적인 내수 현장에서는 낙수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지표적 근거를 제시하며 정면 반박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 3.6%)과 국내총소득(GDI) 성장률(12.3%)의 거대한 격차를 언급하며 "이 수치가 함의하는 바는 같은 양을 생산해도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인해 나라 전체의 실질 소득이 훨씬 크게 늘어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대규모 성과급과 세수 증대 등 증가한 소득이 시차를 두고 경제 전반으로 퍼져나갈 장기 사이클의 초입에 있기 때문에, 낙수효과가 없다는 성급한 진단은 맞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어 신 총재는 "첫째로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한 설비투자와 건설투자가 호전되며 경제 전반의 위치를 옮기고 있고 둘째로 대기업의 성과급 지급과 임금 상승이 소득세 증가로 이어져 내년에 강력한 법인세수 및 재정 확충으로 현실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반도체가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이 정부 재정이라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국민 전체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거시적 낙수효과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논리다.

아울러 최근 화제가 된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의 대규모 성과급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금리 인상을 촉발한다는 일명 성과급 인플레론에 대해서는 "노사 간의 합의가 최우선"이라면서도 "임금 상승이 구매력 증가를 통해 수요측 물가 압력을 키우는 경로는 아주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말해 임금·물가 악순환(Wage-Price Spiral)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을 나타냈다.

하반기 물가 정점 속 '인상 타이밍' 저울질

한국은행은 향후 통화정책 운영 방향에서 "적절한 시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명문화하며 긴축 전환을 공식화했다. 관건은 언제 밟느냐다.

신 총재에 따르면 기본 시나리오 상 국내 물가는 금년 하반기 중에 정점을 찍고 완만하게 내려올 것으로 전망된다. 단 여기에는 중동 사태가 추가로 악화되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량이 연말까지 60%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만약 미·이란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유가는 하반기 내내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며 물가를 추가로 자극하는 비관적 시나리오로 진입하게 된다.

여기에 미국의 고금리 동결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한·미 금리 차에 따른 환율 불안이 지속되는 점도 한은의 인상 시계를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총재는 외환시장 개방과 관련해 "시장 개방이라는 뜻보다는 빛이 있는 영내 시장으로 거래를 끌어들여 원화의 투명성과 위상을 올리려는 취지"라고 부연하며 외환시장 안정화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 국내총생산(GDP): 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가 일정 기간 동안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여 합산한 지표다. 국가 경제의 외형적 규모와 성장 속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거시경제 지표다.

☞ 국내총소득(GDI): 한 나라의 국민이 국내외 생산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총소득을 의미한다. 국내총생산(GDP)에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 무역손익을 반영하여 산출하므로 국민들의 실질적인 구매력과 체감 경기를 더 정확하게 반영한다.

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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