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도 1500억달러 투자…‘AI 반도체 공급망 허브’ 입지 굳히는 대만

대만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는 글로벌 빅테크들의 투자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대만은 AI 혁명의 진원지”라며 대만엔 연간 1500억달러(약 207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대만이 전 세계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더욱 확고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황 CEO는 다음달초 방한해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만나 피지컬 AI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대만 현지언론 등에 따르면 황 CEO는 전날 타이베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지사 착공 행사에서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여기는 칩과 패키징, AI 슈퍼컴퓨터가 만들어지는 곳”이라며 “(엔비디아는) 대만의 놀라운 생태계에 연료를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대만에 대한 투자 규모를 4~5년 전 연간 100억~150억에서 현재는 1000억달러까지 늘렸는데, 이를 다시 1500억 달러 수준으로 대폭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타이베이 북부에 지어지는 엔비디아 지사의 공식 명칭은 ‘엔비디아 컨스텔레이션(Nvidia Constellation). 수많은 별이 조화로운 패턴을 형성하는 별자리처럼, 엔비디아를 구심점으로 대만의 파트너들과 AI 슈퍼컴퓨터 생태계를 구축하고 엔비디아가 그 구심점이 되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는 대만 본부를 발판으로 TSMC와의 ‘동맹’ 강화, 대만 내 AI 서버 제조기업인 폭스콘, 위스트론 등과의 파트너십 강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황 CEO는 “우리의 생태계 파트너들이 이 곳에 있다. 대만은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의 제조, 기술 허브가 될 것”이라며 현재 2000여명인 대만 지사 직원 숫자를 두 배 늘리겠다고도 밝혔다.
앞서 엔비디아의 ‘대항마’ 격인 미 반도체기업 AMD의 리사 수 CEO도 “대만은 필수불가결한 첨단 기술 중심지”라며 100억 달러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AMD는 투자 계획에 대해 “대만 생태계 전반에 대한 투자를 통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AI 인프라를 위한 첨단 패키징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만이 AI 산업 판도를 이끌어가는 빅테크들의 ‘러브콜’을 잇따라 받고 있는 것은 탄탄한 AI반도체 공급망을 갖췄기 때문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TSMC를 비롯해 첨단 반도체 제조의 병목으로 떠오른 후공정(패키징), 소재·부품 기업들이 산업 생태계에 포진하고 있다.
다만 ‘TSMC 쏠림’ 현상으로 인한 반도체 공급망 내 양극화 심화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압박은 대만 반도체 산업에 중장기적인 위험요인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미·중 정상회담 이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은 우리의 반도체를 다년 간 훔쳐 갔다”면서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릴 것을 압박했다.
대만에 대한 빅테크들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TSMC 성숙 및 선단공정 포화로 인해 빅테크들이 칩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삼성전자나 인텔로 눈을 돌리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애플은 자체 설계한 칩을 인텔 파운드리에서 생산하기로 했고, 삼성전자의 텍사스주 테일러 팹 등에서 칩 생산을 하는 방안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TSMC 독주 체제에 금이 갈 수 있는 셈이다.
AI 수요 폭증을 지탱하는 안정적인 전력망 확보도 난제로 꼽힌다. 황 CEO도 “인간의 노동은 쌀을 필요로 하듯이 AI 노동은 전기가 필요하다. 미래에 대만은 인간과 로봇, AI 노동을 통합하게 될 것이고, 그러려면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면서 행사에 참석한 장완완 타이베이 시장에게 전력 공급 확대를 요청했다.
한편 이날 업계에 따르면 황 CEO는 다음주 타이베이에서 엔비디아가 주최하는 ‘GTC 타이베이 2026’과 IT 전시회 ‘컴퓨텍스 2026’ 일정을 마친 뒤 한국을 방문해 구 회장과 만나 로보틱스 및 AI 관련 협력 방안을 구체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말에는 황 CEO의 딸인 메디슨 황 엔비디아 옴니버스 및 로보틱스 제품 마케팅 수석 이사가 방한해 류재철 LG전자 사장과 회동한 바 있다. LG전자는 지능형 홈 로봇 ‘LG클로이드’를 엔비디아의 로보틱스 플랫폼 ‘아이작’에 접목하는 방안을 협의해 왔고, 차세대 AI 모델 개발과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도 협력해 왔다.
황 CEO가 방한 기간 한국 주요 기업 총수들을 만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황 CEO는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간 한국을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치킨집에서 ‘깐부 회동’을 한 바 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5221538001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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