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부천아트벙커B39

“다시 활활.”
부천시 오정구에 자리한 부천아트벙커B39를 찾았을 때 만난 짧은 문장이 불꽃처럼 강렬하다. 콘크리트벽에 붙여 놓은 푸른색 네 글자가 독특한 이 공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출입구 옆 게시판은 이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예술활동과 시민을 위한 정보로 가득하다. 오른편 벽면에 걸린 대형 모니터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이 흥미로운 공간에서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콘크리트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 넓은 내부에는 안내소와 카페가 여유롭게 자리 잡고 있다.

■ 왜 이름이 ‘B39’일까
SF 영화에 나오는 비밀기지 이름 같은 ‘B39’에는 이 공간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숨어 있다. 올봄부터 부천아트벙커B39의 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부천시 문화정책과 김형태 팀장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부천아트벙커B39는 2013년 가동을 중단한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 건물을 활용해 2018년 5월 복합문화시설로 문을 열었지요. 시 승격 50주년을 맞은 2023년 부천시가 이곳을 ‘부천팔경’으로 선정할 정도로 문화 명소로 성장했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던 공간이 부천아트벙커B39라는 멋진 예술 거점으로 탄생하기까지의 사연이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1995년 5월부터 부천시에서 발생하는 하루 200t의 쓰레기를 태웠던 삼정동 폐기물 소각장은 환경 문제로 1997년 가동이 중단됐다가 안전성과 설비를 보완해 재가동했다. 그러나 2010년 대장동 자원순환센터가 확장되면서 소각장은 마침내 그 기능과 역할을 다했다. “철거될 예정이던 소각장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되면서 극적으로 살아 남았습니다.”

■ 쓰레기 소각장, 예술 공간으로 부활하다
공간은 쓰레기의 반입과 저장, 소각, 처리 과정을 하나의 축으로 따라가는 동선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덕분에 과거 소각장의 흔적과 현대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거듭난 과정이 눈앞에 극적으로 펼쳐진다. 소각장 주변에 사는 주민을 배려한 주민 커뮤니티 시설부터 둘러본다. 휴게실과 회의실,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공유 주방까지 갖추고 있는 이 시설의 관리자도 동네 주민이다.
부천아트벙커B39의 1층은 산뜻하게 단장한 주민 커뮤니티 시설을 비롯해 ‘멀티미디어홀(MMH)’, ‘벙커(BUNKER)’, ‘에어 갤러리(AIR GALLERY)’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형태의 공연과 전시가 이뤄지는 멀티미디어홀은 규모부터 관람객을 압도한다. 쓰레기 수거 차량이 자유롭게 드나들 정도로 넓은 공간에 첨단 기기를 설치해 공연을 펼치도록 설계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가로 8.5m의 대형 스크린과 전문가용 빔프로젝터, 강연용 음향 장비를 두루 갖춘 이곳에서 기획 전시와 공연, 세미나와 콘퍼런스 같은 주요 행사가 열린다.
“과거 온갖 생활쓰레기를 저장하던 벙커는 부천아트벙커B39를 상징하는 공간이지요. ‘B39’라는 이름이 바로 이곳에서 비롯됐습니다.” 지하 바닥으로부터 높이가 39m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을 굽어본다.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싸인 이 삭막한 내부를 창작 전시와 다양한 공연, 촬영이 이뤄지는 아름다운 무대로 만들어낸 부천시의 결단과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 아트벙커에 담긴 부천인의 마음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되면서 설치된 ‘벙커 브리지’는 멀티미디어홀과 1층 로비를 잇는 다리입니다. 덕분에 방문객들은 멀티미디어홀에서 에어 갤러리와 재벙커(ASH BUNKER)를 지나 유인송풍실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쓰레기가 소각돼 처리되는 절차에 따라 시설을 살펴볼 수 있도록 설계된 동선을 이동하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리 사이에 벤치를 설치해 관람객들이 여유롭게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훌륭하다. 대리석 타일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조화를 이룬 에어 갤러리가 눈에 들어온다.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로가 있던 야외 공간이 ‘중정’을 모티브로 설계됐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벽면을 모두 철거해 하늘을 실내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다양한 각도와 높이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소각과 정화 과정을 거쳐 깨끗해진 배기가스를 외부로 보내기 위해 사용되던 유인송풍실은 시설의 본래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다. 4층까지 직선으로 길게 이어진 이곳은 보존구역으로 지정돼 과거의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곳은 작품 전시와 공연은 물론이고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광고를 제작하는 대관 장소로 애용되고 있습니다.” 소각장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벙커와 브리지, 응축수 탱크 같은 산업시설을 공간 디자인에 적극 반영해 분위기를 연출한 독특한 풍경은 예술인의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이색 풍경은 일반 관람객에게도 색다른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층은 1층보다 흥미로운 공간이 많다. 중앙제어실과 숙직실 등 쓰레기 소각장 운영을 위한 직원의 전용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트벙커의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는 사무실이 산뜻하게 꾸며져 있으며 교육과 대관을 위한 스튜디오도 말끔하게 단장됐다. “소각장의 모든 설비와 프로세스를 통제하던 중앙제어실은 소각장의 역사와 가치, 환경과 생태를 살리고 문화를 꽃피우려 애쓴 부천시민의 활동을 기록한 작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중앙청소실을 리모델링한 아카이브관에서 아트벙커B39의 산업 유산 자료를 살펴본다. 혐오시설이던 쓰레기 소각장이 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크레인 조종실로 들어가는 길쭉한 길목은 전시 공간으로, 휴게실과 숙직실을 리모델링한 스튜디오는 학습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보존구역인 4~5층은 과거 소각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답게 독특한 형태의 기계설비가 빼곡히 차 있다. “기계설비에 의해 독특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보존구역은 SF나 스릴러, 미스터리, 호러 등 장르 예술에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 오감을 자극하는 예술마당
그동안 위탁 경영하던 부천아트벙커B39를 올해부터 부천시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상반기에 거둔 성과가 주목된다. 문체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추진하는 ‘지역전시 활성화 사업’ 공모에 선정돼 국비 5천만원을 확보했다. 이소율 주무관은 10월 말부터 한 달간 아트벙커 2층 전기실에서 미디어아트그룹 ‘더 스웨이’의 ‘스펙트럴 크로싱스’를 전시할 계획을 들려준다.
아트벙커는 문체부가 선정하는 ‘제2기 로컬100(지역문화매력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과 콘텐츠를 발굴해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추진되는 로컬100은 경쟁이 매우 치열한데 1기(2024~2025년)에 이어 2기(2026~2027년)까지 연속으로 선정된 것이다. 예술인에게 사랑받는 아트벙커는 세계 무대로 뻗어 나가고 있다. 유명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BTS 화보와 현재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촬영을 비롯해 수준 높은 전시와 공연이 이뤄지는 특색 있는 명소로 입소문이 나면서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부천아트벙커B39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기 때문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리와 빛, 공기의 흐름이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들의 화려한 빔프로젝션 매핑 기술이 거친 콘크리트 벽면을 화려한 우주 및 가상현실로 뒤바꾸기도 하고 실험적인 전자음악이 높이 39m의 천장을 타고 웅장하게 울려 퍼지기도 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과거의 숨결과 미래의 예술이 입체적으로 충돌하는 문화 아지트 부천아트벙커B39를 찾아보면 어떨까.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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