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여도 집에서 살고 싶다”…일본 ‘원격 돌봄’이 보여준 통합돌봄의 현실
24시간 방문요양·생활지원·스마트돌봄 결합…현장 “누가 연결하느냐가 핵심”

일본에서는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도 돌봄을 이어가는 이른바 '원격 돌봄'이 현실적인 돌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히 스마트기기나 안전 확인 시스템을 활용하는 개념이 아니다. 지역사회 안에서 다양한 재가서비스를 조합해 고령자가 가능한 오래 자택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지방 소멸이 동시에 진행되는 일본은 자녀가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부모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과 돌봄을 병행하는 '직장인 돌봄자'가 2030년 3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의 돌봄·시니어 라이프 전문 매체 〈카이고포스트세븐〉이 원격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재가서비스와 지역 돌봄 체계를 집중 조명했다. 매체는 지난 22일 보도한 '원격 돌봄의 확산… 장거리 돌봄을 지원하는 서비스부터 모니터링 기기까지 전문가 해설'이라는 기사를 통해,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원격 돌봄 기술과 제도를 상세히 소개했다.
이는 지난 3월 27일 통합돌봄 정책 시행에 들어간 한국에 "누가 돌봄을 연결하고 조정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과제를 함께 던진다.
■ "시설 대신 집에서 살고 싶다"…재가 중심으로 움직이는 일본
도쿄에 거주하면서 지방에 홀로 사는 80대 어머니를 돌보는 50대 여성 사례가 대표적이다. 어머니는 뇌졸중 이후 편마비가 남아 장기요양등급 '요개호2(要介護2)' 판정을 받았다. 일본의 요개호 등급은 한국 장기요양등급과 유사한 개념으로, 요개호2는 보행이나 일상생활에 상당한 도움이 필요하고 식사·배설·목욕 등에서 부분적 또는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태에 해당한다. 한국 노인장기요양보험 기준으로 보면 3등급 안팎의 중등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처음에는 시설 입소나 동거를 고민했지만, 어머니가 자택 생활을 강하게 원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대신 방문요양과 방문간호, 생활지원, 배달식, 긴급호출 시스템 등을 조합해 현재는 자택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재택의료 전문의 사사키 아쓰시(佐々木淳)는 "혼자 살아도 생의 마지막까지 집에서 지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24시간 방문서비스부터 소규모 다기능까지
실제 일본의 지역 재가서비스는 상당히 촘촘하게 구성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기순회·수시대응형 방문간호·개호(定期巡回・随時対応型訪問介護看護)'다. 요양보호사와 방문간호사가 하루 여러 차례 정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하고, 야간이나 응급상황에도 즉시 대응하는 '24시간 밀착형' 재가서비스망이 구축돼 있다. 월 비용은 장기요양등급에 따라 약 6,200엔에서 3만2,000엔 수준이다.
일본 개호보험은 일반적으로 이용자가 서비스 비용의 10%를 부담하며, 일정 소득 이상 고령자는 20~30%까지 부담률이 올라간다. 10% 본인부담 기준으로 환산하면 월 비용은 약 6만~30만 원 수준이다.
소규모 다기능형 재가개호(小規模多機能型居宅介護)'도 일본 돌봄의 특징적인 제도로 꼽힌다. 하나의 장기요양기관이 주간보호(데이케어), 단기숙박(숏스테이), 방문요양(개호)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용자는 상태 변화에 따라 서비스를 유연하게 선택·조정할 수 있고,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든 동일한 요양 인력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제도는 특히 치매 환자에게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낯선 환경으로의 변화나 갑작스러운 돌봄 인력 교체에 따른 치매 어르신의 인지적 혼란과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 방문요양은 요양보호사가 가정을 방문해 식사·배설·입욕 같은 신체활동 지원과 청소·세탁·조리 등 일상생활 지원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일본 방문요양 수가는 '1회 방문 시간' 기준으로 책정된다. 〈카이고포스트세븐〉에 의하면 비용은 개호보험 적용 후 이용자가 실제 부담하는 금액 기준으로, 신체활동 지원은 20~30분 이용 시 약 250엔(약 2,400원), 생활지원은 20~45분 이용 시 약 180엔(약 1,700원) 수준이다. 실제 서비스 총비용은 이보다 높으나, 나머지는 일본 개호보험 재정에서 지원한다.
방문간호는 간호사가 집으로 찾아가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의료 처치나 복약 관리 등을 돕는 서비스다. 방문재활은 물리치료사나 작업치료사가 집으로 찾아가 신체 기능 유지와 일상생활 훈련을 지원한다. 주간보호와 주간재활 서비스는 낮 동안 시설을 이용하며 식사, 재활, 인지활동 등을 지원받는 형태다.
한국 역시 방문간호와 주야간보호, 재활서비스 등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일본은 이를 케어매니저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조합해 재택생활 유지 전략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야간 대응형 방문요양 서비스도 눈에 띈다.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야간 시간대에 요양보호사가 방문해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특히 야간 배회나 화장실 이동이 잦은 치매 노인에게 활용된다.
■ 스마트기기보다 중요한 것은 '돌봄 조정'
일본은 재가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스마트 돌봄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움직임을 감지해 스마트폰으로 알림을 보내는 돌봄 카메라와 낙상 감지 센서, 음성으로 일정 확인이 가능한 스마트 스피커, 움직임이 없으면 자동 알림을 보내는 인체감지 센서, 원격으로 실내온도를 조절하는 스마트 리모컨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술들은 단순 편의 기능을 넘어, 혼자 사는 고령자의 안전을 확인하고 가족의 불안을 줄이는 재택돌봄 보조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 역시 AI 스피커와 돌봄 로봇, IoT 센서 기반 안부 확인 서비스 등을 일부 지자체 중심으로 확대하고 있다. SK텔레콤의 AI 돌봄 서비스나 지자체의 스마트 노인돌봄 사업처럼 음성 대화와 복약 알림, 응급 감지, 생활 패턴 분석 기능을 활용한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다만 한국은 아직 개별 기술 보급 중심 성격이 강한 반면, 일본은 케어매니저를 중심으로 재가서비스와 돌봄 기기를 함께 조합해 생활 유지 체계 안에서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실제로 치매와 신체장애가 있는 부모를 장기간 원격 돌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집안 여러 곳에 카메라와 센서를 설치해 위험 상황을 확인하고, 장시간 움직임이 없을 경우 24시간 방문간호나 긴급 대응 서비스와 연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상황을 센서나 카메라로 확인한 뒤 곧바로 간호서비스를 호출해 낙상 상황을 발견하는 사례도 소개된다.
일본 재가돌봄의 특징은 기계 자체보다 '어떤 위험에 어떤 서비스를 연결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배설 문제가 있으면 정기순회 서비스를 붙이고, 낙상 위험이 있으면 센서와 긴급호출 체계를 연결하며, 식사가 어려우면 배달식과 생활지원 서비스를 추가하는 식이다. 즉, 기술은 보조수단이고, 실제 핵심은 돌봄 위험에 맞춰 서비스를 조합하고 연결하는 체계에 있다.
■ 일본 재택돌봄의 핵심 축, 케어매니저
이 과정의 중심에는 케어매니저(介護支援専門員)가 있다. 케어매니저는 한국의 장기요양기관 사회복지사와 비슷해 보이지만 역할 범위는 훨씬 넓다. 장기요양 서비스 계획 수립뿐 아니라 가족 상담과 예산 조정, 의료·복지 연계, 민간서비스 연결, 위기 상황 대응 계획, 지역사회 자원 발굴 등을 함께 수행한다.
고령자 돌봄 전문 저널리스트 오타 사에코(太田差惠子)는 "케어매니저와 함께 다각적인 돌봄 계획(케어플랜)을 설계한다는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일본에서는 공적 개호보험 서비스 외에 우체국 직원의 안부 확인, 실버인재센터의 생활 지원, 외출 및 병원 진료 동행, 민간 긴급 호출, 고령자 전용 배식(도시락 배달), 심지어 고향 방문을 위한 귀성 교통비 할인에 이르기까지 민관의 다양한 서비스가 돌봄 계획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계·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배달식은 1식 300~700엔(약 2,800~6,500원) 수준이며, 안부 방문서비스는 월 2,000엔 정도(약 1만 9,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생활지원 서비스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청소나 전구 교체, 말벗 등을 제공한다. 공적 장기요양보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자원과 민간서비스를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핵심이다.
■ 한국 통합돌봄의 현실…"서비스는 있는데 연결은 아직 약해"
3월 27일 시행된 한국의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 통합지원 체계 역시 재택생활 지원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현장에서 이것들이 하나의 생활 설계로 통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재택생활이 가능한 상황인데도 결국 시설 입소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김현숙 달맞이요양원 사회복지과장은 "상담하다 보면 여러 서비스를 적절히 연결하면 충분히 집에서 생활할 수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하지만 현재는 기관별로 자기 서비스 이용 중심 상담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통합돌봄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장기요양기관 시설장과 사회복지사들의 조정 역량이 훨씬 중요해질 것"이라며, "서비스 제공자 역할을 넘어 지역 자원을 설계하고 연결하는 기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통합돌봄, 결국 중요한 것은 '연결하는 사람'
한국 통합돌봄의 과제 가운데 하나는 "누가 돌봄의 전체 그림을 조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한국은 오랫동안 의료와 장기요양, 복지, 지자체 돌봄 사업이 각각 분절된 구조로 운영됐다. 통합돌봄 정책은 이런 영역들을 지역 안에서 연결해 가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시행 초기 단계인 만큼 현장에서는 아직 역할과 협력 구조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치매 환자 가족들은 배회와 야간 돌봄, 식사 문제, 약 복용, 응급 대응 같은 문제를 동시에 겪지만, 현행 체계에서는 각각의 서비스를 따로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어떤 서비스를 신청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지 한 번에 안내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는 최근 화성·광명·안성·양평 등 4개 시군을 '통합돌봄도시'로 선정하고, 돌봄 대상자 발굴과 서비스 조정을 담당하는 'AIP(Aging in Place) 코디네이터' 사업 등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를 일본의 케어매니저와 유사한 역할로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혜주 우리동네노인주간보호센터 센터장은 "통합돌봄의 방향성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공공의 이해 부족과 기관 간 협력 한계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코디네이터 역시 돌봄을 연결·조정하는 역할을 기대받고 있지만 아직 현장에서는 역할과 권한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상태"라며 "결국 통합돌봄은 제도보다 사람과 협력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일본은 케어매니저를 중심으로 재가서비스와 생활지원, 돌봄기기를 함께 조합해 "가능한 오래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를 목표로 돌봄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원격 돌봄'이 보여주는 핵심 역시 기술 자체보다 지역 안에서 돌봄을 연결하고 조정하는 시스템에 가깝다.
일본은 오랜 시간 지역 안에서 의료·복지·돌봄을 연결하는 경험을 축적하며 역할을 다듬어 왔다. 한국 통합돌봄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단계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서비스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 안에서 돌봄을 연결할 사람과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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