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촉감 장난감’ 찾는 2030세대

이하은 2026. 5. 2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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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꾸러기 어른, 장난꾸러미 사다

말랑이·왁뿌볼 촉감완구
‘만지고 부수는’ 재미 가득
“적은 돈으로 스트레스 해소”
‘소확행 추구’ 젊은 층 인기

창원 상남동의 한 팬시 전문점. 진열대 앞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손에 든 건 아이들 완구 코너에 있을 법한 말랑말랑한 빵 모양 소품이었다.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더니 “이거 감자빵 말랑이 맞지?” 하며 장바구니에 담았다. 옆 진열대엔 왁스를 입힌 공 모양 제품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그 앞에도 10대보다 훨씬 연령대가 높아 보이는 손님들이 하나씩 집어 손바닥으로 눌러보고 있었다. 장난감 가게에 어른이 넘친다. 한때 아이들 문화로 여겨졌던 말랑이, 슬랑이, 왁뿌볼 같은 ‘촉감 완구’가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SNS에 ‘#슬랑이’를 검색하면 2030세대가 슬랑이를 소개하는 숏폼을 볼 수 있다.

SNS에 ‘#슬랑이’를 검색하면 2030세대가 슬랑이를 소개하는 숏폼을 볼 수 있다.

◇누르고, 부수고, 짜고… ‘감각형 장난감’의 진화= 촉감 완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말랑이는 고밀도 스펀지나 EVA 폼 소재로 만든 피젯 토이로, 누르면 찌그러졌다가 천천히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는 탄성이 특징이다. 감자빵·빵떡·마카롱 등 식품 모양을 본뜬 제품이 특히 인기다.

슬랑이는 슬라임과 말랑이를 합성한 이름처럼, 두 제품의 질감이 결합된 형태다. 외형은 말랑이처럼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내부에 슬라임 특유의 물컹하고 늘어나는 촉감이 살아 있다.
기자가 가진 말랑이./이하은 기자/

기자가 가진 말랑이./이하은 기자/

특히 ‘크런치 슬랑이’는 안에 작은 알갱이나 폼 조각이 들어 있어, 누를 때마다 바삭바삭하거나 뭔가 씹히는 소리가 난다. 내용물의 종류에 따라 소리가 제각각 달라 다양한 제품을 골라 사게 되는 소비 패턴을 만들어낸다.

왁뿌볼은 ‘왁스 뿌시기 볼’의 줄임말이다. 말랑한 내용물을 왁스로 감싼 구조로, 손으로 누르면 물컹한 촉감과 함께 겉면의 왁스가 바삭하게 부서진다. 한 번 부수면 원상복구가 안 돼 재구매를 유도하는 특성도 있다.

이들 제품은 아트박스·핫트랙스 등 팬시 전문점과 다이소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쿠팡 등 온라인 채널에서도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구글 트렌드 급상승 검색어에 타오바오·샤오홍슈·테무 등 중국 플랫폼이 함께 이름을 올린 것도 눈길을 끈다. 국내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해외 직구로 더 다양한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통점은 ‘보는 것’ 보다 ‘만지고 듣는 것’에 재미가 있다는 점이다. 말랑말랑하거나 쫀득쫀득한 촉감, 왁스가 깨지거나 알갱이가 으스러지는 소리, 반복해서 누르고 싶어지는 손맛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핵심 요소다.

김윤하씨가 가지고 노는 말랑이./이하은 기자/

김윤하씨가 가지고 노는 말랑이./이하은 기자/
김윤하씨가 가지고 노는 말랑이./이하은 기자/

김윤하씨가 가지고 노는 말랑이./이하은 기자/

◇“소리가 제각기 달라서 이것저것 다 사게 돼요”= 직장인 김윤하(25) 씨는 3개월 전부터 책상 위에 슬랑이를 두고 있다. 업무 중 전화를 받거나 회의 자료를 검토할 때 습관적으로 손에 쥔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유튜브 쇼츠에서 우연히 누군가 말랑이 짜는 영상을 봤는데, 소리가 자꾸 생각났다”며 “직접 사보니 아무 생각 없이 손만 움직이면 돼서 오히려 집중이 잘 된다”고 말했다. 크런치 슬랑이로 종류를 넓힌 건 최근의 일이다. “안에 뭐가 들었냐에 따라 소리가 완전히 다르다. 바삭한 것도 있고, 뽀득뽀득한 것도 있고. 그게 궁금해서 이것저것 다 사게 되는 것 같다.” 현재 보유한 촉감 완구만 열 개가 넘는다.

왁뿌볼에 빠진 대학생 황모(23) 씨는 조금 다른 이유를 댔다. “부수는 게 진짜 시원하다”는 것이다. “집에 오면 뭔가 해소가 안 되는 느낌인데, 이걸 쾅 누르면 왁스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그 느낌이 사라진다”며 웃었다. 처음엔 조카 선물로 사줬다가 본인이 먼저 손에 쥐게 됐다고 했다. 황 씨의 한 달 관련 지출은 2만~3만 원 수준이다.
김윤하씨가 가지고 노는 말랑이./이하은 기자/

김윤하씨가 가지고 노는 말랑이./이하은 기자/
김윤하씨가 가지고 노는 말랑이./이하은 기자/

김윤하씨가 가지고 노는 말랑이./이하은 기자/

◇숏폼이 불씨 당겼다… SNS 채널도 빠르게 늘어=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촉감 완구를 만지거나 부수는 ASMR 영상이 무수히 생산되고 있고, 고무나무 열매 속 고무를 손으로 짜내는 ‘고무 짜기’ 릴스까지 가세하며 화면으로 촉감을 대리 체험하는 콘텐츠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구글 트렌드 데이터는 이 흐름을 숫자로 보여준다. 최근 3개월(2~5월) 국내 관련 검색어 중 슬랑이가 검색 관심도 100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말랑이는 15 수준으로 그 뒤를 이었고, 슬라임과 왁뿌볼은 같은 기간 급격히 검색량이 늘어나는 ‘Breakout’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이미 유행 중인 슬랑이·말랑이에 이어 슬라임과 왁뿌볼이 새로운 검색 급등 품목으로 올라선 것으로, 촉감 완구 전반으로 관심이 확산되는 흐름을 나타낸다.

연예인 효과도 더해졌다. 배우 구교환이 ASMR 콘텐츠에서 왁뿌볼을 부수며 “이거 진짜 재밌다”고 반응한 영상이 확산됐고, 아이돌 그룹 엔하이픈 멤버들이 라이브 방송에서 왁뿌볼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선보이며 10~30대 팬덤의 구매를 자극했다.

◇“싸고, 빠르고, 지금 당장”…작은 보상 소비의 맥락= 이 현상은 단순한 장난감 유행이 아니다. 운동이나 여행처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스트레스 해소 방식 대신, 적은 돈으로 즉각적인 기분 전환을 얻는 ‘작은 보상형 소비’가 MZ세대 사이에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왁뿌볼 가격은 개당 2000~5000원, 말랑이와 슬랑이는 3000원부터 1만 원대에 이른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책상 위 해소 도구가 생기는 셈이다. 이는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심리와도 맞닿아 있다. 큰 지출 없이 감각적 만족을 즉각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물가 부담이 높아진 지금의 소비 환경과 잘 맞아떨어진다.

초저출산으로 어린이 완구 시장 자체가 줄어드는 흐름도 이 변화를 가속화한다. 어린이 소비자가 감소하는 자리를 성인 소비자가 메우는 구조다. 아동 중심이었던 완구 시장이 취향과 경험 기반의 성인 소비재로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슬랑이를 구입한 김 씨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애들 장난감이라고 하면 좀 창피할 것 같은데, 요즘은 주변에 갖고 있는 어른이 많아서 별로 그런 생각이 안 든다.”

‘장난감’이라는 말이 품고 있던 나이 제한이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스스로 그 진열대 앞으로 걸어간 것이다.

이하은 기자 eundori@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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