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車) 가고 포(砲) 온다…'무기 블랙홀' 된 독일, K방산엔 '경고등'

안옥희 2026. 5. 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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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독일의 자존심이자 제조업의 상징인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이 무기 생산기지로 간판을 바꾼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극심한 불황으로 공장 문을 닫는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초호황을 맞이한 방산업체들이 이 유휴 시설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자동차 공장들이 속속 군수공장으로 탈바꿈하면서, 유럽 경제 체질이 ‘전시 체제’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벤츠·폭스바겐 공장, 장갑차·아이언돔 기지로 변신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26일(현지 시간) 메르세데스-벤츠가 브란덴부르크주 루트비히스펠데 승합차 공장을 독일·프랑스 합작 방산업체 KNDS에 매각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나치 시절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이 공장은 현재 18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매수자인 KNDS는 전차 ‘레오파르트’와 ‘복서(Boxer)’ 장갑차를 만드는 유력 방산 기업이다. 전쟁 장기화로 국방비를 늘린 유럽 각국의 주문이 쏟아지면서 작년 말 기준 수주 잔고만 331억 유로(약 57조7000억 원)에 달한다. 당장 장갑차 3000대 추가 생산이 급해지자 벤츠 공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이 같은 ‘자동차의 군수 전환’은 독일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폭스바겐도 방공체계 ‘아이언돔’을 만드는 이스라엘 국영 방산업체 라파엘에 오스나브뤼크 공장을 매각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지난해 프랑스 알스톰 열차 공장이 KNDS에 넘어갔고, 부품사 콘티넨탈은 라인메탈과 손잡고 자동차 인력 수백 명을 방산 인력으로 재교육해 고용을 승계했다. 

현지 언론은 “방산업계가 인력 흡수를 넘어 생산시설 자체를 통째로 인수하는 대전환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독일 운터뤼스에서 라인메탈 직원이 전차용 포신 생산 공정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무기 공장 늘리는 유럽…K방산 위협?

유럽 현지의 급격한 방산 생산능력 확충은 거침없이 영토를 넓혀가던 K방산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국내 기업들이 동유럽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최대 무기는 뛰어난 가성비와 ‘압도적으로 신속한 납기’였다. 성능은 좋지만 만성적인 생산 지체로 무기 인도에 수년씩 걸리던 독일 등 유럽 방산업체들의 허점을 정확히 파고든 전략이었다.

그러나 독일 방산업계가 완성차 공장과 숙련된 제조 인력을 대거 흡수해 양산 라인을 증설할 경우, K방산의 가장 큰 비교우위였던 ‘빠른 납기’의 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특히 유럽연합(EU)이 역내 안보 블록화를 강화하며 “2035년까지 유럽산 무기 구매 비중을 65%로 확대하겠다”고 선언, '바이 유러피안' 기조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현지 기업들의 공급 능력이 정상화되면 한국 기업들의 신규 수주 전선에 급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방산 학계와 업계에서는 유럽의 생산 능력이 완전히 확충되기 전인 향후 1~2년을 한국 방산의 운명을 가를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루마니아 공장 착공식.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라인메탈 잡아라" 한화에어로, 베를린에 법인 신설

유럽 현지 장벽을 뚫기 위해 한국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독일 수도 베를린에 현지 법인 ‘한화 디펜스 도이치랜드(HDD)’를 전격 신설했다.

독일 최대 방산업체 라인메탈 출신의 핵심 인력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영입하고 대관 조직 강화에 나섰다.

과거 독일산 부품 수출 승인 거부로 고배를 마셨던 기술 수요국에서, 이제는 유럽 방산의 심장부에 직접 거점을 마련해 기술 공급국으로 정면 승부를 걸겠다는 포석이다.

방산업체 관계자는 “유럽 방산 기업들이 완성차 공장을 개조해 실제 무기 양산 체제를 갖추기까지는 최소 수개 분기에서 수년의 시차가 존재한다”면서 “K방산 입장에서는 이 과도기 동안 서유럽 틈새시장을 선점하는 동시에, 이번 독일 법인 설립처럼 현지 거점을 통한 합작 투자를 다각화해 유럽 자체 공급망 내부에 깊숙이 진입하는 속도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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