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잣집 연못·붓다 거울·위버멘슈 기둥… 사유의 정원, 철학을 모사하다[박경일기자의 여행]

박경일 전임기자 2026. 5. 28. 09:3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14년 준비끝 완전체 개방’ 경기 양평 메덩골정원
‘메꽃’ 흐드러지게 폈던 골짜기
페소 등 유명건축가 설계·건축
영화 ‘서편제’ 속 돌담 재현하고
바위부터 풀꽃까지 모두 ‘이식’
나무·꽃 등 ‘자연적 미감’ 대신
동·서양 인문학 서사담아 연출
‘반사되는’ 스테인리스 기둥들
높이 달리해 현실·이상 구분
적벽돌 원형으로 쌓은 미로엔
니체의 ‘영원 회귀’ 의미 담겨
꽃·거울 장식 콘크리트 건물선
무한반복 내 모습 보며 ‘깨달음’
메덩골정원 전경. 왼쪽이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을 승효상 건축가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지은 선곡서원이 있는 한국정원. 오른쪽이 철학적 사유를 건축으로 드러낸 현대정원이다. 붉은 벽돌로 지은 원형 건축물이 ‘미로’이고 그 뒤로 보이는 초록색 기둥을 올려놓은 건물이 ‘위버하우스’다.

양평=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여기 참으로 희한한 정원이 있다. 정원이긴 한데, 나무나 꽃 뭐 그런 것엔 별반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고, 물길을 내고…. 그렇게 정성껏 가꾸고 몰두해서 이뤄내는 게 정원이 아닌가.

그런데 여긴 아니다. 정원이 붙들고 있는 건 ‘인문학적 서사’다. 자연의 미감이나 생태적 당위 대신 서사(敍事)를 정원의 대들보로 삼았으니, 정원을 구성하는 나무도, 꽃도, 물도 다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재료일 따름이다. 자연 하나하나가 단어이고, 문장이고, 부호다. 이 정원에서 모든 자연은 ‘무엇인가의 상징’으로 해독된다. 아니, ‘자연은 서사의 완성을 목표로 감쪽같이 이식된 것들’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메덩골정원이 지향하는 궁극은 ‘자연의 미감’에 있지 않으며, 개울이며 구릉까지 다 서사를 위한 연출이다. 놀라운 건 이 같은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원이다.

# 아무것도 없던 곳에 정원을 짓다

경기 양평 양동면에 작년에 문을 연 ‘메덩골정원’이 있다. 정원이 있기 전부터 땅 이름이 있었다. 메덩골. ‘메꽃 흐드러지게 피는 골짜기’에서 붙여진 지명(地名)이다. 메꽃은 딱 이맘때쯤 피는 나팔꽃 닮은 덩굴식물 꽃. 음지를 제외한 어떤 환경에서도 자라는 식물이라 전국의 들에 흔전만전하다.

‘메꽃이 많이 핀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면, 필시 거기에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흔하디흔한 메꽃 말고는, 지명으로 삼을 만한 특별한 게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니까.

메덩골정원은 ‘아무것도 없던’ 양평 외진 골짜기에 은퇴한(아니 은퇴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얘기는 뒤에서 다시) 재력가가 14년의 준비를 거쳐 조성한, 이전에 본 적 없는 정원이다.

이 정원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남다르다? 독특하다? 낯설다? 뜻밖이다? 고르고 골라 선택한 형용사가 ‘희한하다’다. (희한하다: 매우 드물거나 신기하다.) 메덩골정원은 ‘드물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정원’이다. 왜 그런지 차근차근 얘기해보자.

메덩골정원은 다른 정원과 당혹스러울 정도로 다르다. 우선 정원의 중심이 ‘자연’이 아니다. 나무도, 꽃도 정원의 주인이 아니란 얘기. 정원을 가득 채우는 건 의도와 서사다. 작년에 개관한 한국정원은 그나마 좀 덜한 편. 오는 6월 2일 문을 여는 현대정원은 정원에 대한 상식을 전복한다.

한국정원의 무영원(無影苑)의 작은 연못. 먹을 푼 물을 담아 수면 위에 세상을 담았다.

# 메덩골정원, 그리고 시뮬라크르

메덩골정원을 해석하는 주요한 키워드는 ‘시뮬라크르(Simulacres)’다. 정원과는 털끝만큼도 상관없는 용어지만, 메덩골정원을 이해하자면 이 얘길 안 할 수 없다.

시뮬라크르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들고나온 개념이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을 뜻한다. 현실을 대체하는 감쪽같이 모사(模寫)된 이미지. 그게 곧 시뮬라크르다.

바나나가 안 들어간 바나나 우유,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가상 아이돌, 전형적인 한국의 전원 풍경을 그린 이발소그림. 단계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런 게 다 시뮬라크르다. 진짜 ‘그 사람’이 아닌 연출된 SNS 속 인플루언서도, 개념과 숫자로만 존재하는 가상자산도 마찬가지다.

보드리야르는 사물 자체가 아닌 기호와 이미지에 의해 통제되고 조작되는 현대사회의 소비 현상을 비판하며, 이 개념을 가져왔다. 철학적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뮬라크르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 가닿는다.

플라톤은 ‘현실 세계의 사물은 영원불멸하는 진짜 실재인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예술이란 모방(현실)을 또다시 모방한 것’이라고 봤다.

플라톤은 시뮬라크르를 ‘전혀 가치 없는 가짜’라고 보았다. 보드리야르도 ‘이미지가 실재를 먹어치웠다’며 부정적인 눈으로 봤다.

가볍게 정원 산책이나 하려다가 난데없는 이런 철학적 개념과 마주치게 된다면 어떨까. 정원 하나 보는데 플라톤·보드리야르가 등장한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인가, 아니면 흥미롭게 철학이론서를 뒤져볼 것인가.

# 철학으로 정원을 만들었다고?

메덩골정원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한국정원’이고, 다른 하나가 ‘현대정원’이다. 한국정원이 작년에 먼저 만들어져 공개됐지만, 개관을 목전에 두고 있는 현대정원 얘기부터 해보자.

현대정원은 한국정원보다 면적이 두어 배 넓다. 메덩골정원의 전체적인 무게중심이 현대정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는 얘기다.

현대정원은 다시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현대정원 3분의 2쯤이 철학의 정신을 구현한 ‘생각의 섬’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조경으로 설명하는 ‘대한민국 이야기’다.

생각의 섬 가장 높은 자리에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있고, 그 아래로 생텍쥐페리, 니코스 카잔차키스, 붓다, 플라톤이 있다. 이들의 철학적 사유를 담은 ‘예술과 결합한 건축’을 현대정원 생각의 섬 구역에 세웠다는 뜻이다.

현대정원 공간의 설계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한 건, 예술 및 건축 스튜디오 ‘페소 본 에릭사우센’이다. 칠레의 부부 건축가 마우리시오 페소와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이 설립한 스튜디오다.

남편 페소는 미국 코넬대 실무교수이자 예일대 객원교수. 아내 에릭사우센은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심사위원장 경력이 있다.

이들은 현대정원에 여러 철학자의 핵심 사상을 드러내는 이데아, 여정, 깨달음, 자유, 미로, 영원 등의 제목을 가진 건축물 또는 퍼빌리온(가설건축물)을 설계하고 지었다. 이들은 건축을 통해 어떻게 철학을 드러낼까.

‘붓다의 깨달음’을 표현한 공간. 꽃밭 뒤의 거울 반사를 통해 무한 반복되는 자신을 볼 수 있게 했다.

# 아모르 파티, 트로트가 아니라 철학

현대정원 개관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매표소와 연계해 운영할 방문자 센터 겸 전시장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다. 방문자 센터는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춤추듯 출렁이는 형상을 하고 있는 건물 ‘디오니소스’에 들어설 예정이다.

스페인 앙상블 스튜디오 건축가이자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인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이 설계한 디오니소스는 기둥 없이 외피로만 하중을 지탱하는 실험적인 형태의 비정형 건축물이다. 시공방식이 워낙 고난도여서 완공이 내년 하반기로 늦춰졌다.

매표소 옆 디오니소스 공사장 가림막에는 이런 글씨가 쓰여있다. ‘Amor fati(아모르 파티)’.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이다. 문장이 떠올리는 것 두 가지. 하나는 가수 김연자가 부른 동명의 대중가요. 다른 하나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다. 라틴어 문장 아모르 파티는 니체의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다.

늘 더 나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넘어서는 삶이야말로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는 방법’이며 그게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니체는 믿었다. 고통 속에서도 극복할 과제와 사명을 발견하고, 강한 의지로 그걸 달성하고 뛰어넘는 과정에서 위대한 인간, 곧 초인(超人)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니체 철학이 현대정원의 뼈대를 이룬다.

# 구조물로 구현한 플라톤의 이데아

매표소를 지나 현대정원으로 들어서자마자 플라톤의 철학을 형상화했다는 작품 ‘이데아’를 만나게 된다. 높낮이가 서로 다른 스테인리스 기둥을 가로세로 10개씩 모두 100개를 세워놓았다. 기둥 위쪽에 물안개를 분사하는 장치가 있다. 대체 뭘 얘기하자는 걸까. 그냥 봐서는 절대로 모른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구조물은 플라톤의 철학적 질문을 상징한다. ‘눈에 보이는 이것이 진짜일까.’ 플라톤은 세상을 현실세계와 이상세계로 구분했다. 스테인리스 기둥이 보여주려는 건 플라톤이 말한 이상세계, 즉 ‘이데아’다. 이데아는 현실 너머의 진짜 세상이면서 사물의 본성이자 순수, 영원, 불변의 가치를 지닌 이상세계다.

스테인리스 기둥은 정사각형 바탕 위에 세워졌고, 사각형 안에 원이 그려져 있다. 예술세계에서 정사각형은 현실세계를 반영하는 상징. 그 안에 그려진 완벽한 원형은 이상세계를 뜻한다. 현실세계 안쪽의 이상세계. 거기 세워진 스테인리스 기둥의 장치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 분사하는 물이 안개처럼 퍼지면서 거울 같은 스테인리스가 흐릿해진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흐릿한 형상은 니체가 말한 이데아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데아 위쪽에는 이란산(産) 붉은 사암(沙岩)을 가져다가 오목한 원형 무대처럼 꾸며놓은 ‘여정’이라 부르는 공간이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별을 여행하듯 원형의 공간을 천천히 돌아보라는 게 도슨트의 주문. 도슨트는 어린 왕자의 한 대목을 읽어준다. “어린 왕자는 말했어요. 네 장미를 특별하게 만든 건 네가 들인 시간이라고.” 그러곤 묻는다. “당신에게 ‘나의 장미’는 뭘까요.”

니체 철학의 ‘영원회귀’를 설명해주는 현대정원의 건축물 ‘미로’. 미로의 한가운데 소나무를 심어놓았다.

# 철학적 질문, 그리고 종교의 질문

현대정원에 붉은 벽돌로 크고 작은 원을 만들어 겹치는 식으로 만들어낸 ‘미로(迷路)’가 있다. 미로에서는 무얼 보아야 할까. 입구의 바닥에 영어로 적어놓은 글이 단서다. 니체의 저서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만약 악마가 가장 외롭고 쓸쓸한 순간에 당신을 따라와서 ‘지금 당신의 삶을 셀 수 없이 똑같이 반복해 살아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이 문장은 니체 철학의‘영원회귀(Eternal Recurrence)’를 설명한다.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기꺼이 동의하겠느냐’는 말은 이걸 묻는 것이다. 과연 지금의 선택은 영원히 반복될 가치가 있을까. 우리는 영원히 반복될 만큼 가치 있는 선택을 하고 있는가.

종교철학을 담은 공간도 있다. ‘붓다의 깨달음’이라 이름 붙인 공간은 등나무를 심은 노출 콘크리트 건물 안쪽에 사방을 꽃과 거울로 장식해놓고 관람자를 가운데 서게 해서 반사를 통해 거울 속에 무한 반복되는 자신의 형상을 보게 한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라는 뜻일까. 정중앙의 한 뼘쯤 되는 공간에 들어가니까, 사방의 거울 어디에도 자신의 모습이 사라지는 뜻밖의 경험을 했다. 중심에 가까워지면 자신이 사라진다는 것도 이 공간을 지은 이가 의도했던 것일까.

니체 철학의 정점은 정원 뒤쪽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웅장한 건축물 ‘위버하우스’에 있다. 위버하우스는 메덩골정원의 레스토랑 등으로 쓰이는 공간인데, 정원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라고 얘기해도 될 만큼 강력한 존재감과 철학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

위버하우스는 니체 철학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개념인 ‘초인(Ubermensch·위버멘슈)’을 상징한다. 니체가 얘기하는 초인, 그러니까 ‘위버멘슈’는 외부의 힘이나 절대자에 의존하기보다 엄격한 잣대로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성장하고자 하는 인간상을 말한다.

건축가는 땅에 뿌리를 박고 옥상 위로 치솟은 열여섯 개의 돌기둥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자신을 끊임없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초인의 열망을 표현했다.

위버하우스에는 메시지를 넘어선 미감도 느낄 수 있다. 주변과 썩 잘 어울리는 초록의 과감한 색감도 근사하고, 건물 뒤의 기하학적인 통로가 그려내는 곡선을 보는 미학적 즐거움도 훌륭하다.

현대정원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들어선 위버하우스. 니체 철학의 대표적 개념인 ‘초인(위버멘슈)’을 형상화했다.

# 자연을 빌려와 서사로 만든 정원

지금부터는 작년 9월에 개장한 메덩골정원의 ‘한국정원’ 얘기다. 한국 전통정원의 보편적 특징이라면 인공 요소를 최소화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다. ‘손대지 않은 무구한 자연’을 전통정원 최상의 덕목으로 친다는 얘기. 그런데 메덩골정원의 한국정원은, 이런 생각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한국정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다 ‘만들어낸’ 것이다. 정원에는 본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게 거의 없다. 정원의 고택이며 건축물은 물론이고 바위도, 돌도, 풀도, 나무도 모조리 트럭에 실어 가져온 것들이다. 정원의 연못과 냇물도 엄청난 양의 돌을 실어다가 인위적으로 조성했다. 정원을 적시며 흐르는 개울도, 펌프로 물을 순환시켜 흘려보내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자면 한국정원은 복제, 즉 ‘시뮬라크르’다. 뜻밖인 건 메덩골정원이 한국정원을 이렇게 ‘가져다 만들었다’는 걸 조금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원본보다 더 근사하게 재현해낸 복제를 자랑스러워하는 쪽에 가깝다.

시뮬라크르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이른바 ‘질 들뢰즈식’ 해석이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를 ‘가짜’로 치부했지만, 들뢰즈는 ‘진짜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복제의 영역’을 인정했다.

한국정원을 가득 채운 건 상징과 복제, 그리고 재현이다. 정원이 보여주는 상징은 구체적이다. 이를테면 한국정원 위쪽의 물이 솟는 작은 연못은, 경주 최부잣집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물이 솟는 연못에서 경주 최부잣집의 마지막 종손, 문파 최준의 나눔의 정신을 불러낸다.

초록의 푸르름을 마주하는 누정에다가는 ‘파청헌(把靑軒·푸르름을 잡는 집)’의 현판을 걸고 여말선초의 선비 운곡 원천석을 불러 내온다. 하필 원천석인 건 별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성리학적 공간이 필요했고, 원천석의 시가 경관과 썩 잘 어우러진다는 것 때문이다.

안동의 병산서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근사하게 지어낸 ‘선곡서원’ 역시 대표적 전통 경관의 시뮬라크르식 차용이다. 노래 ‘고향의 봄’의 가사에서 복숭아꽃, 살구꽃을 가져다가 고샅길에 심고, 영화 ‘서편제’의 인상적인 돌담길 이미지를 가져다 돌담을 쌓았다.

병산서원의 누각 만대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

# 메덩골정원은 왜 있어야 하는 걸까

메덩골정원이 보통의 정원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결정적 이유는 ‘순서’ 때문이다. 집과 자연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거꾸로 이야기를 재료 삼아 집과 자연을 그린다.

안동(병산서원)과 경주(최부잣집), 원주(원천석의 자취), 청산도(서편제)를 한자리에 모아서 서사의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원본’에 대한 강박이 전혀 없다. 원형성, 그러니까 ‘오리지널리티’는 처음부터 관심 밖이다.

메덩골정원이 선택한 서사와 철학적 사유를 담은 건축은 모두 설립자의 지목과 주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정원을 설계하고 구성한 이에게 눈길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 메덩골의 설립자는 과연 누구일까.

조선 최고의 정원인 담양 소쇄원이 주인 양산보의 은거의 삶과 미감에 힘입어 최고의 정원으로 인정받고 있듯이, 메덩골정원도 그걸 만든 이가 앞으로 나서야 서사가 완성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설립자에 대한 질문에 메덩골정원 측의 대답은 이렇다. ‘우리도 모른다.’

메덩골정원은 ‘정원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 질문 뒤에 따라오는 건 ‘정원의 의미’다. 이 정원은 왜 있어야 할까, 이 정원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류재용 메덩골 대표의 전언으로 듣는 설립자의 생각이다. “후손을 위해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은데, 회사를 물려준다면 30년이 간다고 장담할 수 없지 않습니까. 생각해보면 정원이란 건 전쟁이 나서 폐허가 되지 않는 한 살아있을 거라 생각하신 겁니다. 정원을 남겨두면 후손들에게 적어도 몇백 년은 가지 않을까 판단하신 거지요. 그냥 꽃과 나무를 심는 것보다 사유하고 성찰하며 그 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 정원 입장료는…

메덩골정원의 입장료는 한국정원과 현대정원이 따로 책정돼 있다. 한국정원만 보는 입장료는 평일·주말 똑같이 성인기준 5만 원이다. 현대정원만 이용하는 입장료는 평일 5만원, 주말 7만원이다. 두 정원을 모두 다 이용할 수 있는 통합권요금은 평일 8만원, 주말 9만원이다. 통합권 구입시 주중에는 경로(65세이상), 장애인, 군인·경찰관·소방관, 양평군민·양동면민 할인 혜택이 있지만, 주말에는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다.

박경일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