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글로벌AI] ‘AI 정신병’에 걸린 테크기업 CEO들… 환상과 현실 사이의 재앙

이규화 2026. 5. 28.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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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기업 CEO들 집단적 착시와 오판에 빠져있다"
현장실무와 동떨어진 CEO, AI 현재 능력 과대 평가
기술 한계와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
C레벨, 시장 압박과 성장동력 확보라는 강박에 갇혀
화려한 데모 화면 뒤 숨겨진 오류와 '환각' 인식해야
이규화 대기자


최근 글로벌 테크기업의 C레벨에서 기이하고도 위험한 징후가 관측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속에서 정작 산업을 이끌어가는 테크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집단적인 착시와 오판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테크 기업 CEO들이 'AI 정신병'(AI psychosis)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클라우드 기업 박스(Box)의 창업자 에런 레비(Aaron Levie)가 명명한 'AI 정신병'이라는 개념을 인용하며 현장 실무와 동떨어진 경영진이 AI의 현재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기업 생태계 전체가 심각한 기능 장애와 왜곡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경영진의 '실무 단절'이 어떻게 조직적인 재앙으로 이어지는지 경고하고 있다.

에런 레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CEO들이 AI로 구현되는 가치의 '마지막 1마일'(Last mile)에 해당하는 실제 노동 과정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집단적인 AI 정신병에 걸리기 쉽다"고 분석했다.

경영진들이 최고위 수준에서 AI 프로토타입을 가볍게 조작해 보거나 AI가 자동으로 계약서를 초안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 AI 에이전트가 모든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거대한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현장에서 소프트웨어가 배포되기 전 코드를 철저히 리뷰하고, 버그를 잡아내며, AI가 지어낸 허위 라이브러리 호출을 찾아내는 번거로운 실무는 경영진의 몫이 아니다.

기업의 고유하고 이질적인 계약 조건에 맞춰 AI 모델을 미세 조정하고 오류를 교정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는 고단한 과정 역시 그들의 시야 밖에 존재한다. 결국 기술의 한계와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리는 CEO들의 섣부른 결정은 기업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는 독약이 되고 있다고 레비는 지적한다.

이러한 'AI 정신병'이 초래한 가장 즉각적이고 참혹한 결과는 대규모 감원 풍조다. 테크크런치는 이를 두고 기록적인 매출 달성과 대량 해고가 동시에 일어나는 기묘하고도 전례 없는 '야만성'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26년 들어 단 5개월 동안 테크업계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무려 11만5430명에 달해 이미 지난해 전체 해고 규모에 육박하고 있다고 테크크런치는 밝혔다.

대다수 경영진은 이러한 구조조정의 핵심 명분으로 'AI 도입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를 내세운다. 예컨대 협업 툴 기업 클릭업(ClickUp)의 CEO 젭 에반스(Zeb Evans)는 최근 약 3000개의 AI 에이전트를 전격 도입한 후 전 직원의 22%를 해고했다. 그는 이것이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인간이 AI의 결과물을 검증하고 관리하는 '고성능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혁신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테크크런치가 제시한 객관적인 지표와 학술적 근거들은 경영진의 이러한 낙관론이 철저한 '망상'에 기반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테크크런치가 인용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캘리포니아 매니지먼트 리뷰'(California Management Review) 메타분석 결과에 따르면, AI 도입과 기업의 전반적인 총생산성 향상 사이에는 그 어떤 견고한 상관관계도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연구 역시 기업들이 인지하는 주관적인 AI 생산성 이익이 실제 측정된 객관적 개선치를 훨씬 상회한다는 이른바 '생산성 역설'을 경고하고 있다.

아울러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최신 연구 보고서는 거대언어모델(LLM)이 텍스트 기반 업무에서 인간의 80~95 % 수준의 기본적 역량에 도달하는 시점을 아무리 빨라도 2029년으로 내다봤다. 현시점에서 AI 에이전트들은 인간 수준의 정교한 업무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진단이다.

AI 이미지. 연합뉴스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AI 자동화가 가져온 기형적인 조직 구조의 변화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연구에 따르면 광범위한 AI 도입은 말단 업무를 빠르게 처리할 뿐, 결국 폭증한 AI 결과물을 최종 검증하고 승인해야 하는 병목 현상을 고스란히 경영진과 핵심 관리자에게 전가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적절한 인간의 감독과 통제가 배제된 채 자동화 속도만 빨라질 경우, 기업 조직은 효율화가 아닌 걷잡을 수 없는 시스템적 혼돈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AI 에이전트는 월급을 잃을지 모른다는 고용 불안도, 경력 관리에 대한 열망도, 감옥에 가고 싶지 않다는 준법정신과 같은 인간 고유의 '자기방어 기제'와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 노동자가 주는 유익한 견제와 제동 장치가 사라진 AI 중심의 독단적 경영은 기업을 파멸적인 결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번 테크크런치의 보도는 기술 자본주의가 마주한 구조적 모순에 대한 경고다. 오늘날의 테크 CEO들은 시장의 압박과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라는 강박 속에서 AI라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만병통치약으로 숭배하는 '기술적 물신주의'에 함몰되어가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앓고 있는 '정신병'의 본질은 기술 그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 경영의 오만과 현장 노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에런 레비의 조언처럼 진정한 혁신을 원하는 리더라면 AI의 화려한 데모 화면 뒤에 숨겨진 수많은 오류와 '환각 현상'(Hallucination)을 마주하고 기술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AI가 인간 노동의 훌륭한 조력자가 돼 진정한 가치를 발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이 망상에서 깨어나 인간 노동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어떻게 AI와 협업모델을 정교하게 구축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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