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 오싹한 '유령도시' 됐다…텅텅 빈 세종시 상권 [소멸 리포트]

신현보/이정우/김희선 2026. 5. 28.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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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이전에도 세종 상권은 공실 몸살
가족 정착·업무망·산업 연계 부족 한계
2차 이전 앞두고 "왜 그곳인가" 따져야
세종 주요 상권 모습. /사진=신현보 기자

"아. 무서워…"

최근 대낮에 찾은 세종시 주요 상권에 들어서자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입니다. 상권 곳곳 유리문에는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없다 보니 유령도시처럼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세종시는 '세종시가 미래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곳에서 보고 온 미래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풍경에 가까웠습니다.

2만평에 달하는 백화점 예정 부지는 수년째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야생공원처럼 방치돼 있었습니다. 어렵게 만난 한 청소 노동자는 "청소할 것도 없어서 앉아서 유튜브를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상가 안쪽 통로에는 임시 장터처럼 보이는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수산물 좌판과 먹거리 노점이 드문드문 손님을 맞았지만 주변 상가는 불이 완전히 꺼져 있었습니다. 죽은 듯 고요한 상가 한가운데 장터만 희미하게 숨을 붙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종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7%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현장에서 체감하기로는 90%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세종시는 상가 공실 해소를 위해 허용 업종을 넓히는 지구단위계획 변경까지 추진했지만 큰 소득은 없는 실정입니다. 유튜브에서는 이런 세종시를 '유령도시'에 빗댄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 다시 불붙은 2차 공공기관 이전론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공기관 이전 논의는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각 지역에서는 2차 공공기관 이전 유치전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방소멸 대응이라는 명분도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이 오면 지역은 반드시 살아나는 것일까요. 국회예산정책처의 '제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 성과와 시사점' 보고서는 이 질문에 신중한 답을 내놓습니다. 1차 이전 사업에서는 총 105개 공공기관이 혁신도시 77개, 세종시 19개, 개별지역 9개로 이전을 완료했습니다.

사진=신현보 기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105개 이전공공기관의 총 이전비용은 9조1549억원이었습니다. 당초보다 6456억원이 더 들었고 사업 기간은 평균 28.6개월 지연됐습니다. 2025년 말 기준 혁신도시 전입 인구는 23만4684명 늘었지만 가족동반 이주율은 71%, 정주여건 만족도는 69.4점에 그쳤습니다. 산학연 클러스터 분양률은 81.8%였지만 입주율은 56.6%였습니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혁신도시 입주기업 수는 늘었고 지역인재 채용률도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지역이 실제로 살아났는가"입니다.

보고서는 "인구가 감소한 지방자치단체는 혁신도시 중 70여개 기관이 이주한 2015년 대비 2024년 인구도 감소하였으며, 혁신도시 이주를 완료한 2019년 대비 인구도 감소했다"고 정리했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출처=국회예산정책처


또 "공공기관이 이전한 혁신도시 지역 시군구별 지역내총생산(GRDP)은 2015~2022년까지 대부분 증가추세를 보이지만, 전국 단위 GRDP 증가율과 비교하였을 때 일부 지자체의 경우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출근 인구를 만드는 일과 가족 단위 정착, 지역 소비, 지역사회와의 연결을 끌어내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뜻입니다.

 ◇ 정착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는

부산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A씨는 이 문제를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가족과 생활 기반이 함께 내려와야 정착이 되는데 기존 직원 상당수는 가족과 학교 주거 기반이 수도권에 남아 있어 완전히 이주하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녀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직원들은 직장 이전만으로 가족 전체가 움직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서울 기반 직원들이 강제로 내려온 경우가 많아 다시 올라가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컸지만 최근 입사자들은 본사가 지역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들어온 만큼 정착하려는 경우도 늘었다고 합니다.

영상=신현보 기자


다만 이 역시 지역 안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다는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주기적으로 근무지가 바뀔 수 있다면 결혼과 주거, 자녀 교육 같은 생활 기반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지역에 정착할 장치가 부족하다고 느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아 현장에서는 "어렵게 키워놨더니 남 좋은 일만 했다"는 하소연도 나온다고 합니다.

업무 비효율도 개선 과제입니다. 또 다른 지역 공무원 B씨는 "본사는 내려왔지만 함께 일하는 기관과 정부 부처 상당수는 여전히 서울에 있다. 회의나 협의가 필요할 때마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과 출장비가 든다"고 설명했습니다.

수도권에 맞춰진 눈높이도 이탈을 부르는 문제입니다. 세종에서 남편이 공무원으로 일해 주말부부 생활을 하는 C씨는 "생활의 기준이 이미 서울에 맞춰져 있고 자산 격차도 계속 벌어지다 보니 쫓기듯 결정했다"며 최근 서울에 집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의료 등 현실적인 인프라 격차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한 혁신도시 공기업 근무자 D씨는 "지역 의료기반이 취약해서 큰일 생기면 서울이나 인근 대도시로 가야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올해 초 수도권행 셔틀버스 운영은 논란 끝에 중단됐습니다. 부적절한 지원이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에 마음을 못 붙인 공무원들의 고충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 기관 이전보다 중요한 것

2차 공공기관 이전은 몇 가지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전 기관이 지역 산업과 실제로 맞물리는지입니다. 기관의 이름값보다 지역의 산업 생태계와 업무망, 인재 기반이 함께 작동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선진국 사례도 "어디로 보낼 것인가"보다 "왜 그곳이어야 하는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웃국 일본의 2023년 문화청 교토 이전입니다. 교토시는 이를 메이지 시대 이후 첫 중앙성청 이전이자 도쿄 일극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 문화 자산을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는 국가 프로젝트로 설명했습니다. 일본 문화청도 교토 이전을 계기로 문화행정을 관광, 복지, 교육, 산업 등 여러 분야와 연계하겠다는 방향을 밝혔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런 방식일 수 있습니다. 기관을 단순히 나눠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이 이미 가진 산업과 인재, 생활 기반에 붙이는 일입니다.

이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주목됩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 해양수산부와 HMM의 부산 이전을 언급하며 동남권을 남부 해양수도권의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밝혔습니다. 공공기관만이 아니라 민간 기업까지 함께 옮기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공무원 도시의 한계로 지적돼온 낮은 소비력을 보완하고, 지역 산업을 함께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교육과 인재 양성까지 결합된다면 효과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국립부경대와 한국해양대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맞춰 지역 밀착형 해양수산 학과 특성화에 나섰습니다. 한 지역 관계자는 "최근 부산 지역 대학 인근 상권도 침체된 분위기인데, 소비의 주축인 학생들을 유입할 유인이 더 마련된다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지방 살리기와 지역 흔들기 사이

지난 3월 인천시청 브리핑룸에서 인천공항 졸속 통합 반대 시민·노동단체 대책위원회가 '인천국제공항 허브화 흔드는 공항 기업 졸속 통폐합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렇게라도 공공기관 이전을 하지 않는다면 수도권 집중이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다만 공공기관 이전이 기존 지역의 핵심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지도 함께 따져야 합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공항공사·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통폐합 논란처럼 이미 지역에 뿌리내린 산업 기반을 흔드는 개편은 의도치 않은 갈등을 부를 수 있습니다.

인천 지역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인천시의회는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통폐합 반대 및 추진 중단 촉구 결의안'을 원안 가결했습니다. 인천시장 후보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신경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인국공 관계자는 "공항 통합이 이뤄지면 지방공항의 누적 적자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떠안는 구조가 될 수 있다"며 공사의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균형발전 정책은 특정 지역의 기능 이전이 다른 지역의 기반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설계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공공기관 이전의 기준은 기관 배치 자체가 아니라 지역 산업과 주민 생활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드는 데 있어야 합니다.

일본에서 지방소멸론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오다기리 도쿠미 메이지대 교수는 "지역이 인구 추계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인구가 감소해도 주민이 행복하게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멸 리포트'는 소멸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 곳곳의 변화와 그 이면을 기록합니다.

신현보/이정우/김희선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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