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외부감사 거절당한 아파트 5년간 95곳… 관리비 수억 새도 몰랐다
매년 수십 곳서 감사 포기
현행법 처벌 규정 없어 방치

국내 대형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실시한 외부 회계감사에서 최근 5년간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단지가 100곳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의견 거절은 외부 감사인이 재무제표를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사실상 감사 자체를 포기한 상태를 의미한다. 상장기업이라면 상장폐지 사유가 될 정도의 중대한 문제지만, 현행법상 아파트 단지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실정이다.
28일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정부가 관리하는 의무관리 대상 공동주택 가운데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외부 감사에서 의견거절 판정을 받은 아파트 단지는 모두 95곳으로 집계됐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은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이나, 150가구 이상이면서 승강기 또는 중앙집중식 난방시설을 갖춘 공동주택에 대해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감사 항목에는 결산보고서 작성 기준 준수 여부, 재무제표와 세부 명세 일치 여부, 관리비 부과 적정성, 지출 증빙 관리 상태 등이 포함된다.
연도별로 보면 의견거절을 받은 단지는 2020년 20곳, 2021년 14곳, 2022년 14곳, 2023년 28곳, 2024년 19곳이었다. 매년 10~20여 개 단지가 회계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외부 감사 결과는 일반적으로 ▲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등 4단계로 나뉜다. 이 가운데 의견거절은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감사인이 필요한 회계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재무제표 자체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경우다.
업계에서는 아파트 감사의견 거절의 상당수가 관리비 유용이나 횡령, 자료 제출 거부 등과 연관돼 있다고 보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임원이나 관리사무소 관계자가 회계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거나, 관리비 집행 내역을 불투명하게 처리하는 사례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실제 횡령 사건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광주지방법원은 지난해 9월 광주 광산구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과 관리소장에게 공용 하자보수금 707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각각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대표회장이 주식 투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사실도 드러났다.
춘천지방법원 역시 지난해 강원 원주의 한 아파트 경리과장에게 관리비 약 1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해당 경리과장은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관리비를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 같은 비리가 수사나 재판으로 이어지기 전까지는 사실상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현행법에는 외부감사를 제대로 받지 않거나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도 행정 처분이나 벌칙을 부과할 명확한 규정이 없다. 다만, 외부 회계감사를 아예 받지 않거나 부정하게 받는 경우는 징역 또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단지는 회계감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비리 가능성이 큰 곳으로 판단한다”며 “지방자치단체에 해당 단지 정보를 통보해 특별감사 대상에 우선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행법상 의견거절 자체만으로 제재할 수 있는 근거는 미비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 변호사는 “외부 회계법인의 의견거절이 나오면 이후 지자체나 정부 차원의 추가 감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관리비 부당 집행이나 회계자료 미제출 등에 대해 보다 강한 행정·형사상 제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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