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국제화'해야 살아남는다 [지금, 대학을 묻다]
편집자주
'벚꽃 피는 시기로 망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한국의 대학은 위기다. 상아탑의 권위를 지키면서도 변화한 사회에 맞는 인재 배출에도 충실한 새로운 대학의 좌표를 전문가 칼럼 형식으로 제시한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산업과 노동, 교육의 구조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생성형 AI는 더 이상 선형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수개월 단위의 성능 도약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학습 연산 규모 역시 지난 10여 년간 약 1억 배 이상 확대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과거 대학이 지식을 전달하고 학위를 부여하는 기관이었다면, 이제 대학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혁신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가장 먼저 생존의 위기를 체감하는 곳은 지방대학이다.
지방대학의 위기를 단순히 학령인구 감소로 설명해선 안 된다. 문제의 본질은 대학의 존재 이유와 경쟁력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의 연간 출생아 수는 1970년 100만 명을 상회하였으나 2025년에는 25만 명 수준까지 감소했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대학 정원보다 입학 가능 인원이 적은 구조적 미충원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방대학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필자는 답을 두 가지로 제안하고 싶다. 하나는 국제랭킹을 끌어올려 세계시장에서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 대학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존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미국S&P500이나 나스닥100에 주목할까. 미국 기업이라서가 아니다. 이 지수들은 지속적 경쟁을 통해 우수 기업을 선별하고, 그 결과 높은 신뢰와 브랜드 가치를 확보해 왔다. 경쟁력이 낮은 기업은 제외되고 새로운 혁신기업이 편입되면서 지수 자체가 하나의 미래가치가 된다. 대학도 다르지 않다. 학생과 학부모, 연구자와 기업은 대학의 이름보다 대학이 가진 경쟁력과 미래 가능성을 보고 선택한다.
오늘날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국제대학평가다. 2026년 QS세계대학평가에서 세계 100위권에 진입한 한국 대학은 서울대 등 4개 대학이다. THE 평가에서도 4개 대학이 올라있다. 대부분 서울에 있다. 지방으로 가면 국제평가수준은 떨어진다. 일반 지방대학 가운데 세계500위권 안에 안정적으로 위치한 대학은 일부 과학기술대학 외에는 부산대, 경북대 등 소수 거점대학 정도다.
국제랭킹만 높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수도권 추격이 아니라 독보적 대학모델 구축과 국제적 가시성 제고로 전환되어야 한다. 한 대학이 생존하려면 타 대학이 갖지 않은 독보적인 가치를 지녀야 한다. 세계에는 독보적 모델로 살아남은 대학들이 있다. 미국의 올린공대는 학생 수가 400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전통적 공학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프로젝트 기반 교육모델을 구축하였다. 규모가 아니라 교육혁신 자체를 경쟁력으로 만든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핀란드의 알토대학은 창업으로 독보적 대학모델을 구축하였다. 이 대학의 학생 주도 스타트업 행사인 슬러시(Slush)는 매년 1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세계적 창업 플랫폼이 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트벤테대학은 기업가형 대학모델을 구축하여 지역 산업과 창업 생태계를 연결하는 독자적 경쟁력을 확보하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남을 따라가지 않았다. 자기만의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국제사회가 인정하도록 설계했다.
한국 지방대학도 이제 선택해야 한다. 정부 사업에 맞춰 이름만 바꾸는 특성화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신만의 독보적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국제화, 연구성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국제적 가시성을 높여야 한다. 평범하게 쇠퇴할 것인가, 독보적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지방대학은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구자억 서경대 혁신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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