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서 ‘일베 손가락’ 인증, “표현의 자유가 혐오 보호해선 안 돼”
법조계·학계 “제도적 마지노선 세워야”

김해 봉하마을 '일베 손가락 인증' 사건이 공분을 사고 있으나, 이를 방지할 대책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법조·학계는 '표현의 자유'가 혐오를 보호해선 안 된다는 지적과 함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지난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7주기 추도식이 열린 김해 봉하마을 현장에서 한 남녀가 혐오·극우 주장이 주를 이루는 온라인 사이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상징 문양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조롱성 인증 사진을 찍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추모객들이 모인 현장에서 일베를 상징하는 손가락 모양을 취하며 고인을 모욕하는 글귀를 온라인에 게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는 개인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추도식이라는 엄숙한 공간에서조차 고인 비하와 조롱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상황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현행법 체계 안에서 일베 손가락 혐오를 실질적으로 단죄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형일 법무법인 믿음 변호사는 "단순한 혐오나 손가락 인증만으로는 형사상 책임을 묻기 어렵고, 사자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를 적용하기도 더더욱 어렵다"고 짚었다.
김태형 변호사도 "혐오 표현이라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에서 제외하기 쉽지 않고, 기존 법적 테두리 안에서는 건드리기 쉽지 않은 영역"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표현의 자유 범주를 한참 벗어난 혐오는 형사 책임을 물 수 있다.
지난 4월 평화의 소녀상 테러와 위안부 모욕 등을 일삼은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 사례를 보면, 그는 혐오 발언·행동과 더불어 허위사실 유포·경찰 미신고 현수막 게재 등을 한 혐의(사자명예훼손·집회시위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가짜 피해자, 성매매 여성'이라고 수차례 반복적으로 온라인·오프라인에서 주장해왔다.
반면, 봉하마을 '일베 손가락 인증'은 구체적 허위 사실 적시 등이 동반되지 않은 단순 혐오 표현이기에 법적 책임을 물기 어렵다. 재단 관계자, 유가족 등이 혐오 행위 당사자, 단체 등에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방식도 일부 거론되지만, 역시나 현실적이지는 못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법조·학계는 차별금지법 제정 등 규제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김태형 변호사는 "유럽 등에서는 민주주의·표현의 자유를 넘어 인간 존엄을 해치는 혐오 표현은 법적으로 규제하자는 흐름이 있다"며 "국내에서도 혐오 표현이 점점 활개치는만큼 이를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 방향성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독일에서는 나치즘, 홀로코스트 상징하는 문양인 '하켄크로이츠' 사용과 나치식 경례를 법적으로 금하고 있다. 이를 어길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김형일 변호사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수준의 혐오 표현이라면 표현의 자유로부터 보호받기 어려워야 한다"며 "혐오 표현 법적 정의·범위 등을 확실하게 마련하는 게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상환 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방지하려면 차별금지법 제정 등 제도적 마지노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의 본질은 혐오와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구체화하는 것"이라며 "상징·선언적으로라도 혐오 표현 규제를 통해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혐오 표현 처벌 등 방지 관련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조롱 논란 기사를 SNS에 공유하며 "엄격한 조건하에 조롱·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과 일베 같은 사이트의 폐쇄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안지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