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전설에 대한 예우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배우는 아니었다. 외모도 역할도 여느 배우와 달랐다. 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당찬 여성 역할을 했다. 영화 ‘화니 걸’(1968)과 ‘추억’(1973)이 대표적이다. 가수로 인기가 높기도 했다. 영화제작과 연출까지 겸하며 60년 넘게 활동했다. 아카데미상과 그래미상, 에미상, 토니상을 모두 받았다. 개인으로선 극히 드문 기록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84)는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수식이 적절한 인물이다.
□ 제79회 칸국제영화제는 지난 23일 오후(현지시간) 폐막식에서 스트라이샌드에게 명예황금종려상을 시상했다. 프랑스 유명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8분가량 수상자의 업적을 소개했다. 스트라이샌드의 활약이 담긴 영상이 2분 넘게 이어졌다. 이후 스트라이샌드가 영상으로 4분 넘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명예황금종려상 시상에 약 15분이 소요됐다. 이날 폐막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수상자에 대한 존중이 충만했던 순간이었다.
□ 지난 17일에는 박찬욱 감독이 코망되르훈장을 받았다.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중 최고 등급 수훈이다. 수여자는 카트린 페가르 프랑스 문화장관이었다. 페가르 장관은 수훈 전 직접 쓴 연설문을 읽었다. 박 감독은 연설문을 미리 받아 수행 통역사에게 번역을 부탁했다. 워낙 문학적인 표현으로 박 감독의 영화세계를 돌아본 문장들이라 제대로 된 번역에만 5시간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박 감독의 삶을 알지 못하면 담길 수 없는 내용들이 연설문을 채웠다.
□ 국내 문화예술계에는 원로로 불리는 많은 전설이 있다. 문화예술 발전에 여러모로 공헌한 이들이나 대중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지금 갈채받지 못하는 이들이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건 무척 한국적인 현상이다. 각종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지만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의례적인 일로 치부되는 게 허다하다. 스트라이샌드의 수상 모습과 박 감독의 수훈 장면은 전설에 대한 예우가 어찌해야 하는지 새삼 깨닫게 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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