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킬링필드처럼”···피란민 100만명 품은 ‘전시수도 부산’ 세계유산 도전

배문규 기자 2026. 5. 2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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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묘역에 유엔 참전국 국기가 게양돼 있다.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장병들이 안장된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다. 국가유산청 제공
지난 26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주묘역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지난 26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분홍빛 철쭉 사이 낮은 묘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영국 미들섹스연대 소속이던 라일리 중위는 1951년 1월, 스물네 살의 나이에 낯선 한국 땅에서 숨졌다. 한국전쟁에는 유엔 깃발 아래 22개국이 참전했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 이곳에 묻혔다. 공원은 1951년 유엔군사령부가 조성했고, 현재는 12개국에서 온 2328구 시신이 안장돼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군 묘지인 이 곳은 부산이 단순한 후방 피란지가 아니라 세계와 연결된 ‘전시 수도’였음을 보여준다.

오는 7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 부산은 이 기억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1950년 8월18일부터 서울 환도 때까지 부산은 1023일 동안 대한민국의 피란수도였다. 부산시가 2030년 등재를 추진하는 ‘피란수도 부산’은 수도 기능 유지와 피란민 보호, 국제협력의 흔적을 담은 11개의 연속유산이다.

전쟁의 상흔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전쟁 속에서도 정부 기능을 유지하고, 약 100만명의 피란민과 부산시민을 보호했으며, 유엔 참전과 국제구호를 통해 사회적 위기에 대응한 도시의 경험을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로 제시하려 시도한다.

일견 평범한 근대 건축처럼 보이는 부산근현대역사관도 이러한 맥락 위에 있다.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해방 뒤 미국공보원으로 쓰였고, 한국전쟁 발발 뒤에는 미국대사관도 들어섰다. 이곳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유엔기구와 세계 각국을 잇는 외교·원조의 창구였다.

아미동·우암동 피란주거지는 피란민의 주거와 생존을, 부산항 제1부두는 피란민과 유엔군·구호물자가 드나든 관문을 보여준다. 임시중앙청과 경무대, 영도다리와 복병산배수지 등도 각각 행정·통치 기능과 도시 생활 기반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전쟁 속에서도 국가와 시민의 삶을 지탱한 도시 시스템의 흔적들이다.

지난 26일 부산 중구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의 모습.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한국전쟁기 미국대사관과 부산미국공보원으로 사용됐다. 국가유산청 제공

‘피란수도 부산’은 세계유산 등재기준 가운데 3번(문화전통·문명의 증거)과 6번(중요한 사건·사상 관련 유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우슈비츠’와 ‘킬링필드’처럼 20세기의 아픈 기억을 담은 장소도 기준 6번에 근거해 등재된 바 있다. 산업유산과 전쟁·난민의 기억, 도시 시스템으로 확장되는 최근 세계유산의 흐름에 맞춰 피란수도 부산도 국제연대와 인류애를 앞세운다. 한국전쟁에는 중국·북한도 얽혀 있는 만큼, 이러한 접근은 등재 논리를 세우는 데도 중요하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초기에는 정부기관과 피란민 수용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지금은 인류애와 국제연대라는 기준이 훨씬 명확해졌다”며 “세계유산위원회 부산 개최도 이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세계유산 등재와 보존관리 방향을 논의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7월19~29일 부산에서 열린다.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비롯해 각국 대표단과 국내외 전문가 3000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벡스코에는 축구장 두 배 크기의 전시·체험 공간 ‘대한민국관’을 조성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 준비 현황 보고회에서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최근 BTS 부산 공연으로 불거진 ‘숙박비 바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연합뉴스

부산 |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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