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백절불굴 여장부’ 자동차 운전기사 김부영

2026. 5. 2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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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60여명 남성 틈에서 만점 합격
가난·편견·조롱 딛고 꿈 이뤄


1926년 5월 24일자 조선일보에 100년 전에는 흔치 않았던 여성 자동차 운전기사 김부영씨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다. 운전기사가 되기까지의 눈물겨운 도전의 과정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를 따라 10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세상은 자꾸 변해 간다. 여자로서 차관(次官)도 생기고 지사(知事)도 생기고 대의사(代議士)도 생기며 또는 근육 노동에 이르러도 남자와 일반으로 하늘에서 나는 재주, 땅에서 화살같이 달아나는 재주를 부리게 되었다, 더욱이 여사는 밥 한 그릇도 번쩍 들지 못하고 허리가 한 줌이나 되어 빼들빼들하여야만 귀부인이니 얌전하고 아름다운 처녀니 하고 일컫는 조선에서까지 여류 비행가, 여자 자동차 운전수가 하나씩 둘씩 생기기 시작하니 이 얼마나 기꺼운 일이냐? 조선 여장부 권기옥(權基玉)양은 중국에서, 박경원(朴敬元)양은 일본에서 상당한 비행사의 1위를 얻어 이역 공중을 횡행한다 함은 본지에 여러 번 보도한 바로 누구나 다 같이 아는 터이려니와, 이제 우리는 조선에 오직 한 사람의 여자 자동차 운전수로 남자 이상의 저 굳센 힘과 갸륵한 축지(縮地) 기술을 가진 김부영(金富永) 여사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조선 여자로서 자동차 운전을 배우던 이는 많았으되 혹은 중도에 그만두고 혹은 면허장을 얻어 가지고도 가정에 들어앉고 말았으므로 현재 직업적으로 자동차 운전수가 되어 있는 이는 이 한 사람뿐이다. 그는 작년 11월 20일에 강원도 춘천 도청에서 60여 명 남자 틈에 첫째로 시험에 합격하여 면허장을 얻었으니 보통 사람과 같은 환경을 가지지 못한 그로서 성공하기까지에 당한 고생은 듣는 이로 하여금 눈물이 자연히 옷깃을 적시게 한다.”


기사는 이어진다. “그가 자동차 운전수가 되기까지의 성력(誠力)과 지내온 바 눈물어린 역사를 좀 들어보자. 그는 전남 목포(木浦) 태생으로 일찍이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4살에 부모의 강제 결혼으로 10년 동안을 뜻 맞지 않은 가정 생활을 해 오다가 배우고자 하는 욕망에 부모의 만류도 듣지 않고 이제로부터 4년 전 귀뚜라미 슬피 우는 쓸쓸한 가을에 경성을 찾아왔으니, 때에 그의 나이 23세의 꽃같은 청춘 여성이었다. 그는 반년간 강습소에 다니며 여자고등보통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하다가 하루아침에 느낀 바 있어 재작년 4월에 황금정에 있던 경성 자동차 학교에 들어갔다. 1년이란 세월을 학업과 실습에 전력하여 그 학교를 졸업하고 작년 4월에는 얼마큼 자신이 있어 운전수 면허 시험을 보기로 결심하고 광주 도청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일은 실패되어 마침내 합격하지 못하고 그 다음 달 5~6일에 전주로 와서 다시 시험을 보았으나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달 11일에 경성으로 올라와서 시험을 치루었으나 마저 성공치 못하였다마는, 백절불굴(百折不屈)하는 정신으로 더욱 열심에 열심을 더하여 배우고자 하였으되, 원래 넉넉치 못한 가정에서 타 쓰던 돈이라 이제는 집에서 한 푼의 학자(學資)도 더 변통치 못하게 되었고, 세 곳으로나 시험을 보러 다니는 동안에 비용으로 자기 몸에 지녔던 여간한 금붙이, 은붙이, 비단 의복 벌을 일일이 팔아 버렸으니 천리(千里) 객창(客窓)에서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그는 어찌할 바를 알았겠느냐.다만 날마다 밤마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중에 그가 졸업한 학교 선생 허남(許楠)씨의 은혜를 입어 그 집에 가 있으며 한편 빨래와 바느질 등 가사를 돕고 한편으로 또다시 계속하여 운전수 면허 시험 준비를 하는 즈음,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그의 약간 있던 베 의복조차 도적을 맞게 되니 그는 선생이 사다 준 두 개의 ‘사쓰’로 한여름을 나게 되었다.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 치는 법이 없음에 그는 그렇게 천만 가지 괴로움을 겪으며라도 생명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기어이 다시금 시험을 치러 면허장을 받고야 말기로 뜻하였다. 남자 운전수들에게 별별 구박과 설움을 받아 가며 학술과 운전에 맹렬한 연습을 하여 작년 10월 경기도 도청에 네 번째 시험 원서를 제출하였으나 호사다마(好事多魔)는 예부터 전하는 말이라, 이번에는 꼭 성공을 하리라고 기약한 터에 경찰 당국의 실책으로 원적지에서 신원증명(운전수 시험을 본다니까 남자인 줄만 알고 필요없다고 하였다)을 받지 못하게 되어 그만 시험 치를 자격을 잃게 되었다. 그때에 그는 경기도 보안과, 본정 경찰서, 자기 원적이 있는 강화경찰서 면사무소로 두루 다니며 그지없는 눈물을 흘리고 겨우 신원증명을 받아 손에 드니, 시험 기일이 벌써 이틀을 지났다. 시험날을 유일의 희망과 즐거움으로 알고 이 슬픔 저 고생을 다 당하며 덧없는 세월을 보내던 그의 마음이 과연 어떠하였으랴? 그는 그만 세상을 비관하고 인생을 저주하는 가운데 교교(皎皎)한 달밤에 밝게 비치는 한강수 푸른 물에 고혼(孤魂)이 되려 하였던 일까지 있었다. 경관에게 발견되어 그대로 허(許)씨 집으로 돌아옴에 그는 가슴에 쌓인 한을 호소할 길이 없어 한 줄기 눈물을 벽에 뿌릴 따름이었다. 그리고 절식(絶食) 단명(短命)을 결심하여 또다시 세상을 버리려 하였으나 선생과 그 가족의 간곡한 위로로 뜻 아닌 살길을 밟게 되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멸시와 눈물의 시간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면허 시험에 합격했다. “가을도 지나고 어느덧 백설(白雪)이 건곤(乾坤)에 가득 찬 11월 중순을 당하니, 이번에는 강원도 춘천도청에서 운전수 면허 시험을 본다는 발표를 듣게 되었다. 처음 가졌던 굳은 정신을 다시 분발하여 밤을 새워 학과를 준비하고 낮에는 운전 연습을 하여 그는 단단한 자신을 가졌으나 ‘사쓰’ 두 개로 여름을 나는 그 가련한 처지에 있던 그로써 어찌 여비조차 용이히 장만만 할 수 있었으랴? 먼젓번 경기도청에서 시험을 보려고 수속하던 때에 취하여 쓰고 남은 돈 2원 50전이 오직 그의 전 재산이었으니 얼마나 한 고통을 받았으리요. 염치를 불고하고 모 자동차부에 가서 외상으로 춘천까지 갔다 오기를 간청하였으되 오히려 ‘건방진 년’이라는 무수한 욕만 먹고 비 오듯 하는 눈물에 싸여 거의 정신을 잃을 뻔하였다. 그 참혹한 광경을 본 경원 자동차 운전수가 만일의 동정을 표하여 그 이튿날 춘천 가는 대절 차 한 귀퉁이에 그의 몸을 부치게 하였다. 그는 산 설고 들 설은 춘천 땅에 이르러 하등(下等) 중에도 하등인 객주집을 찾아갔다. 밥에서는 흙덩이가 쑥쑥 올라온다. 시험 준비로 하룻밤을 새고 나서 게으른 주인이었는지라 아침 밥도 얻어 먹지 못하고 도청을 향하여 시험장에 들어가니 냉방에서 잠도 못 자고 속조차 빈 터에 사지를 벌벌 떨며 손이 곱아 시험 답안을 쓸 수가 없어 마지막 문제는 구두(口頭)로 대답하고 나왔다. 그의 학술 시험은 만점이었다. 다음 날은 운전 시험이었으니 마당에 S자를 그려 놓고 5분 동안에 그 금 안으로 전진 후진을 하게 하였다. 그는 2분 40초 사이에 만장의 박수와 시험관의 ‘잘한다’ 소리로 시험을 모두 만점의 성적을 얻어 수험자 60여 명 중에 넷만 뽑힌 그 가운데에 제1호로 작년 12월 2일에 합격을 하였다. 불우한 경우에서 성공한 것은 분투 노력한 결과이라.”

그럼 조선 최초의 여성 운전기사는 누구였을까. 1920년 3월 11일자 매일신보를 보자. “경기도 제3부 보안과에서는 지난 11일 자동차 운전수의 면허시험을 집행하였는데 수험자 44명 중 묘령의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전주 읍내 대화정 253번지 출생 당시 경성 입정정 232번지 명성여관에 유숙 중인 최인선(崔仁善·24)인데, 1914년 공주 공립보통학교 졸업생으로서 작년 11월 15일에 황금정 3정목 황금 자동차 상회 내 자동차학교에 입학하여 1920년 1월 5일에 3개월 강습을 마치고 다시 동교 연구과에 입학하여 연습한 터로, 시험 성적도 좋으며 성질과 소행 등 한 점의 그릇되는 것이 없는 터인데, 조선에 여자 운전수는 처음되는 터이오. (하략) ”

100년 전 여성들에게 자동차 운전대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시대의 금기를 넘어서는 도전이었다. 김부영은 남성 중심 사회의 냉대를 견디며 스스로 길을 열어갔다. 오늘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는 여성의 사회 진출 뒤에는 이름 없이 시대와 싸워야 했던 이들의 눈물과 용기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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