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플러스] 분묘기지권, 이제는 ‘공짜’가 아닐 수 있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에서 분묘는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조상을 기리는 공간이었고, 그 위에 형성된 법리가 바로 ‘분묘기지권’이다. 특히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분묘를 설치하는 이른바 ‘승낙형 분묘기지권’은 전통적으로 ‘무상 사용’이 당연한 것으로 이해돼 왔다. 쉽게 말해 땅 주인이 허락했다면 그 대가를 따로 내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2025년 12월11일 선고된 대법원 2023다261302 판결은 이 오래된 전제를 흔들었다. “처음에는 무료로 쓰기로 했더라도, 사정이 바뀌면 나중에 돈을 내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지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조상의 분묘를 설치했고, 이후 토지가 여러 차례 거래돼 병원 법인이 새 소유자가 됐다. 새 소유자는 “이제는 땅을 쓰는 대가를 내라”고 요구했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종전 법리는 비교적 명확했다. 분묘기지권은 성립 유형에 따라 승낙형, 취득시효형, 양도형으로 나뉘는데, 승낙형은 약정이 없으면 무상, 취득시효형도 원칙적으로 무상, 양도형만 유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즉 “허락 받고 쓴 땅에 돈을 내라”는 요구는 쉽게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관습법상 권리의 내용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권리의 취지, 당사자의 이해관계, 사회 변화, 그리고 전체 법질서와의 조화 속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고 봤다. 그 기준으로 ‘공평의 원칙’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에 따라 설령 처음에 지료 약정이 없었거나 “공짜로 쓰라”는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후 ▲토지소유자가 바뀌고 ▲지가가 상승하며 ▲토지의 활용가치가 커지고 ▲사용 기간이 장기화되는 등의 사정이 생기면, 더 이상 무상 사용을 유지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경우 토지소유자는 지료를 청구할 수 있고, 분묘 관리자는 그 시점부터 상당한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이 판결의 의미는 단순히 한 사건의 결론을 넘어선다. 사실상 모든 유형의 분묘기지권에 대해 ‘조건부 유상성’의 문이 열린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승낙형 분묘기지권에서조차 무상 원칙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기존 법리와의 단절이 뚜렷하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 대해 비판도 적지 않다. 관습법은 오랜 사회적 관행에서 형성되는 것인데, 법원이 ‘공평’이라는 이름으로 그 내용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전국 곳곳의 분묘 관리자가 갑자기 지료 부담을 지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분명한 방향을 보여준다. 더 이상 분묘기지권은 전통만으로 유지되는 영역이 아니라, ‘재산권과 공평의 균형 속에서 재조정되는 현대적 권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질문은 바뀌었다. “허락 받았으니 공짜인가?”가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도 공짜가 공평한가?”이다. 이 변화는 우리 주변의 많은 토지와 분묘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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