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쉼 없이 달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천천히 걸을 용기’

[한국독서교육신문 이민영 대학생기자]
교수님, 과제, 스펙... 숨 가쁜 일상 속에서 나만 멈춰 선 것 같을 때
매일 아침 캠퍼스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혹은 도서관 한구석에서 쏟아지는 과제와 학점,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숨이 턱 막혔던 경험이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 멈춰 서서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오늘 가져온 책은 바로 그런 날, 마음에 따뜻한 온기 한 스푼을 얹어줄 소설입니다. 바로 천선란 작가의 SF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입니다. 사실 'SF'라고 하면 외계인이나 차가운 우주선, 복잡한 과학 이론이 먼저 떠올라 거리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책은 기술의 화려함 대신, 그 화려한 기술에 밀려 '빠르게 달리기'를 강요받는 세상에서 상처받고 소외된 존재들을 향해 아주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따뜻한 소설이 지금 전 세계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20만 부 넘게 팔리며 미국, 영국, 독일 등 10여 개국에 수출되었고,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거쳐 최근에는 세계 3대 영화사인 워너 브라더스 픽쳐스와 영화화 판권 계약까지 마쳤습니다. 전 세계가 왜 이토록 이 이야기에 열광하는지, 대학생 기자의 시선으로 그 매력을 쏙쏙 뽑아 전해드리겠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이 만나 만들어낸 '기적 같은 연대'
배경은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한 미래의 사회입니다. 경마 경기에는 인간 대신 가볍고 부서져도 상관없는 휴머노이드 기수가 말을 타고 달립니다. 오직 빠르게 달리기만을 강요당하다 연골이 다 닳아버린 경주마 '투데이', 그리고 투데이의 파트너였던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가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어느 날 콜리는 경기 도중 스스로 말에서 떨어지는 '낙마'를 선택합니다. 투데이가 다리를 완전히 잃고 안락사 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맨날 달리기만 하느라 보지 못했던 파란 하늘을 처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 부서진 로봇을 폐기 직전의 마사에서 발견하고 구해낸 것은 바로 우리 또래의 소녀 '연재'입니다. 로봇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꿈을 접고 방황하던 연재는 콜리에게 묘한 이끌림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 휠체어를 타는 연재의 언니 '은혜'와, 소방관이었던 남편을 잃고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두 딸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엄마 '보경'이 합류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p.221)
책 속 은혜의 말처럼, 세상이 정한 '정상'의 기준에서 조금씩 비껴 서 있는 이들이 모여 부서진 콜리를 고치고, 경주마 투데이를 구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로봇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상처를 알아보고 연대하는 모습은 읽는 내내 가슴을 꽉 차오르게 만듭니다.
"휠체어를 끄는 로봇보다, 완만한 경사로가 먼저 필요합니다"
대학생 기자인 제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공감했던 것은, 미래 사회를 빌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무거운 사회적 이슈들을 아주 날카롭고도 다정하게 짚어낸다는 점이었습니다.
작가는 은혜의 목소리를 통해 장애인 인권과 이동권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은혜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몇천만 원짜리 최첨단 기계 다리가 아니었습니다. 인도에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그리고 누구의 도움 없이도 버스와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습니다. 다수의 편리함을 위해 소수의 불편함을 당연하게 전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비되고 버려지는 동물권 문제, 한부모 가족이 겪는 경제적·정서적 결핍까지 소설은 따뜻하게 품어 안습니다. 세상의 구석에서 누구도 홀로 물방울처럼 울지 않도록 말입니다.
"천천히 달려도 괜찮습니다, 행복한 순간만이 그리움을 이기니까요"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p.221)
로봇인 콜리가 엄마 보경에게 건네는 이 대사를 읽을 때는 저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오늘 내 주위에 있는 소중한 행복들을 얼마나 놓치고 살았는지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천선란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전 메모장에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적었다고 합니다.
스펙 쌓기 경주마처럼 매일매일을 서둘러 달리고 있는 우리 대학생 친구들에게 꼭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남들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천천히' 걸어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전공 책 대신, 내 마음을 파랗고 따뜻하게 물들여줄 『천 개의 파랑』을 펼쳐보시는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