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 K무비, AI 도입에 적극…할리우드와 정반대 행보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6. 5. 2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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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심층보도 ‘K무비, AI에서 돌파구 찾다’
선택 아닌 필수…제작비 절감·정부 지원
박찬욱·봉준호 등 거장들은 ‘인간성 상실’ 우려
배우 외에 모든 장면이 AI로 생성된 영화 ‘더 하우스’ [CJ ENM]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K-콘텐츠의 화려한 외양 뒤로, 한국 영화 산업은 전례 없는 재정적 위기에 직면했다.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극장 매출은 약 45% 급감했고, 스트리밍 플랫폼(OTT)의 부상은 관객들의 발길을 돌려놓았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과거 연간 40~50편에 달했던 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중대형 영화는 지난해 단 20편에 그쳤다.

CNN은 26일(현지시간) 한국 영화계가 자금난 속에 인공지능(AI) 도입을 돌파구로 삼고 있다고 심층 보도했다.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CJ ENM을 비롯한 대형 제작사들은 생존 위기에서 AI에 손을 내밀고 있다. 백현정 CJ ENM 콘텐츠혁신담당은 “최근 몇 년간 한국 콘텐츠의 제작비가 폭등하면서 글로벌 영토는 확장됐지만 정작 손에 쥐는 이익은 크지 않다”며 AI 도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배경을 설명했다.

도입 효과는 즉각적이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한국 최초의 AI 장편 영화 ‘서쪽으로 달려라’는 신화 속 괴물과 폭발 장면 등 특수효과 전반에 AI를 활용했다. AI 연출을 맡은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의 권한슬 대표는 “기존 컴퓨터 그래픽(CGI) 작업과 비교해 속도는 10배 빨라졌고 비용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CJ ENM이 구글 클라우드 코리아와 협력해 선보인 60분 분량의 하이브리드 공포 스릴러 ‘더 하우스(The House)’ 역시 단 5억 원의 제작비로 완성됐다. 배우들은 그린스크린 앞에서 단 4일 동안만 촬영을 진행했고, 구글의 AI 도구(Imagen, Nano Banana 2, Veo)가 가상의 배경을 정교하게 입혔다. 백 담당은 “로케이션 이동을 최소화함으로써 제작 기간을 50% 이상 단축할 수 있다”며, 서양 기준 데이터에 치우친 AI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자체적인 K-콘텐츠 에셋 라이브러리를 구축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영화계의 급진적인 AI 수용 태도는 미국 할리우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할리우드는 2023년 미국작가조합(WGA)과 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의 장기 파업을 거치며 AI 도입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인간 노동권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100% AI로 만든 영화 ‘Cat Biggie’ [CJ ENM]
오히려 한국 정부는 이를 기회로 보고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감행하고 있다. 정부는 2026년 AI 관련 예산을 전년 대비 3배로 늘렸으며, 최근에는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영화 제작을 위해 80억 원의 긴급 자금을 배정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역시 AI 기반 제작에 198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여기에 발맞춰 CJ ENM은 올해 2월 학계와 중소 스튜디오를 아우르는 ‘AI 콘텐츠 동맹’을 발족하며 생태계 선점에 나섰다.

시각특수효과(VFX) 베테랑인 모팩 스튜디오의 장성호 대표는 AI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질적 향상을 이끄는 도구라고 강조한다. 그는 “과거에는 각 부서에 20~30명이 매달려야 했던 작업을 이제는 단 1~4명의 팀장급 인력만으로 더 빠르고 높은 퀄리티로 완수할 수 있다”며 소규모 스튜디오에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기술 도입의 그림자에 대한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들은 AI의 영토 확장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신작 ‘어쩔수가없다’에서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소외되는 인간의 폭력성을 직설적으로 다루었다. 박 감독은 “해고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매우 폭력적인 행위이며, 현재 AI가 인류에게 바로 그 일을 자행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역시 영화계 내 AI 오남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왔다.

저작권과 크레딧 배분을 둘러싼 회색지대도 문제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가이드라인을 내놓고는 있지만, 생성형 AI가 만든 결과물의 창작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알고리즘이 도출해 낸 획일적인 미학이 K-무비 특유의 ‘인간적 질감’과 독창성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은 “현실에서 구현하기 힘든 이미지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반면, 무언가를 잃어버릴 위험도 크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화제를 모았던 AI 장편 영화 ‘서쪽으로 달려라’는 티켓 반값 할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의 7분의 1 수준에 그치며 흥행에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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