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만 골라 굶겨죽이는 '나노 항암치료기술' 개발

암세포만 골라 굶기고 사멸까지 이르게 하는 나노 항암 치료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됐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신소재공학과 권인찬·태기융 교수 공동연구팀은 암 조직에서만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이중 효소 기반 항암 시스템(RDC/DAO@NC)'을 개발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기술의 핵심은 암세포의 필수 영양소인 아르기닌을 제거해 암세포를 굶기고, 동시에 활성산소를 만들어 암세포 사멸까지 유도하는 방식이다. 특히 종양의 산성 환경에서만 효소가 활성화되도록 설계돼 정상 조직 손상을 줄일 수 있다.
연구팀은 암세포 성장에 필요한 아르기닌을 분해하는 효소인 아르기닌 디카르복실라제(Arginine Decarboxylase, RDC)와 활성산소 생성을 유도하는 디아민 산화효소(Diamine Oxidase, DAO)를 하나의 나노운반체(Nanocarrier, NC)에 탑재해 연쇄 반응(cascade reaction)을 구현했다.
아르기닌 디카르복실라제는 아르기닌을 아그마틴으로 바꾸는 효소로, 평소에는 활성이 낮지만 산성 환경에서는 스스로 활성형 구조로 변하면서 기능이 강화되는 산도 반응 특성을 가진다. 디아민 산화효소는 아그마틴을 포함한 다양한 디아민 계열 분자를 산화적으로 분해하는 효소다. 나노운반체는 약물·효소를 나노 크기로 포장해 체내 안정성과 종양 내 축적·체류를 높이는 전달체이다.
항암 치료는 정상 조직의 손상을 줄이면서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 표적항암 치료는 약물을 종양까지 전달하거나 종양 환경에서 방출되도록 설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실제 치료 물질 자체가 정상 조직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아르기닌의 고갈을 유도하는 항암 치료' 역시 암세포의 영양 공급을 차단할 수 있지만 정상세포의 대사와 면역 기능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암세포를 '굶기고 공격하는' 이중 효소 기반 항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치료 기술은 두 효소가 순차적으로 작동하는 '연쇄 반응' 방식으로 이뤄진다. 먼저 RDC 효소가 암세포의 성장에 꼭 필요한 영양소인 아르기닌을 제거해, 암세포의 에너지 공급을 차단한다.
이어 DAO 효소가 RDC 반응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인 아그마틴을 다시 분해해 과산화수소(H2O2)를 생성한다. 이때 만들어진 활성산소는 암세포에 강한 산화 스트레스를 유도해 결국 세포 사멸을 일으킨다. 특히 RDC 효소는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거의 활성화되지 않고, 종양의 약산성 환경에서만 선택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돼 정상 조직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했다.
연구팀은 두 효소를 하나의 나노운반체 안에 함께 탑재해 반응 거리를 줄였으며, 이를 통해 마치 '나노 크기의 반응 공간(나노반응기·nanoreactor)'처럼 연쇄 반응이 효율적으로 일어나도록 구현했다.

세포실험에서 항암 효능이 검증했다. RDC 단독 처리군에서는 암세포 증식 억제 효과가 나타났지만 세포 사멸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RDC와 DAO를 함께 사용한 경우에는 활성산소 생성 증가로 인해 세포 사멸 효과가 일부 강화됐다. 특히 나노운반체 탑재군에서 연쇄 반응 속도가 최대 5.1배 증가하는 강력한 효과를 보였다. 이는 두 효소가 가까운 거리에서 연속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나노반응기' 구조에 따른 결과다.
동물실험에서도 안전성이 검증됐다. 실험용 마우스에 RDC/DAO@NC를 3일 간격으로 총 4회 정맥 투여한 결과, 종양 내 효소 축적량이 최대 3.3~4.6배 증가했고 종양 내 아르기닌 농도는 약 80% 감소했다. 또 종양의 크기와 무게가 유의미하게 줄어드는 항암 효과가 확인됐다. 활성산소 증가와 세포 사멸 지표 상승도 관찰됐다. 반면 체중 감소나 주요 장기 독성은 나타나지 않아, 치료 효능과 안전성이 함께 검증됐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약물을 종양에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치료 효소 자체가 종양의 미세환경에서만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암세포의 영양 공급을 차단하는 대사 치료와 활성산소 기반 세포 사멸을 동시에 구현함으로써, 기존 아르기닌 고갈형 항암 치료의 한계를 보완한 새로운 정밀 항암 전략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향후 다양한 암종으로의 적용 범위를 확장하고 장기 안전성을 검증하는 한편, 기존 항암제 및 면역항암 치료와의 병용을 통해 차세대 효소 기반 항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번 연구결과는 생체재료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 '바이오머티리얼즈 리서치(Biomaterials Research)' 5월 15일자 온라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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