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복잡해졌는데···" 기계화된 학폭위

강주비 2026. 5. 2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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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심의 건수 급증세…변호사 선임·맞신고 빈번
교사 중재 기능 위축…민원 부담 속 형식적 대응
"사건 맥락 반영 부족" 지적…교육적 해결 강화해야

학생 간 갈등이 교실이 아닌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와 법률 절차로 넘어가는 사례가 늘면서 사건 경위와 피해 정도를 고려한 교육적 중재와 관계 회복 기능보다는 ‘신고 여부’에 초점이 맞춰진 형식적 심의가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26일 광주시교육청이 관내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 5천1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표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광주 지역 학교폭력 피해응답률은 3.3%로, 전년 대비 0.6%p 증가했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생이 5.8%로 가장 높았고 중학생 2.2%, 고등학생 1.3% 순이었다. 피해 유형은 언어폭력이 41.2%로 가장 많았고 집단따돌림 및 괴롭힘 16.2%, 신체폭력 12.4%, 강제적인 심부름(강요) 9.3% 순으로 조사됐다.

학폭위 심의 건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광주 서부교육지원청 학폭위 심의 접수 건수는 2024년 666건에서 2025년 840건으로 증가했고, 동부교육지원청 역시 같은 기간 337건에서 438건으로 늘었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폭 문제가 ‘법률 분쟁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학부모들이 생활기록부 기재와 입시 불이익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사건 발생 직후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상대 학생을 맞신고하는 사례도 많다.

이 과정에서 학교와 교사의 중재 기능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과거에는 담임교사 중심으로 학생 간 갈등을 조정하려는 시도가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학부모 민원과 행정심판, 소송 부담 등으로 인해 학교가 적극 개입을 꺼리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게 교육 현장의 공통된 설명이다.

광주의 한 중학교 교사 A씨는 “예전에는 학생 간 다툼이 생기면 교사가 중간에서 관계를 풀어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지금은 섣불리 개입했다가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이 크다”며 “결국 절차대로 학폭위에 넘기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되는 분위기가 있다”고 털어놨다.

갈등의 사법화 속에서 학폭위는 사건 맥락보다 절차·신고 여부 중심으로 기계화되고 있다. 특히 피해학생이 먼저 신고한 뒤 상대 측이 맞신고를 하면서 사건이 ‘쌍방 폭력’ 구도로 바뀌는 사례(무등일보 2026년 5월26일자 6면)도 반복되고 있다. 학생 간 신체 접촉이나 언쟁이 있었던 사실만 확인되면 방어행위 여부 등과 관계없이 형식적 균형 논리에 따라 양측 모두 처분이 내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학폭 사건을 다수 맡아 온 김문기 변호사는 “실체적인 사건 판단보다 ‘양측 모두 신고했다’는 사실 자체에 무게를 두는 경우가 있다”며 “폭행을 막기 위한 소극적 방어행위까지 동일 선상에서 판단되는 사례도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폭력 예방법에는 형법상 정당방위 개념이 직접 규정돼 있지 않아 조사관이나 위원 성향에 따라 판단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사건의 맥락보다 절차적 균형에 치우친 심의가 이뤄질 경우 억울함 논란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당국 역시 행정적 조치의 한계를 인정하며 관계회복 중심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학폭위 심의 이전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관계회복 숙려제’를 본격 도입했다.

관계회복 숙려제는 학생 간 갈등 발생 시 전담기구 심의 이전 단계에서 대화와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교육청이 파견한 관계 조정 전문가가 학생 간 대화를 중재하며 진정성 있는 사과와 화해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예전보다 경미한 사안들도 심의위원회 요청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행정적 조치만으로는 관계 회복에 한계가 있다는 고민이 현장에도 있다“며 ”광주는 초등학교 전 학년을 대상으로 관계회복 숙려제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교육적 해결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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