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 기지 흉기 난동 왜?… 극야·폐쇄 공간 속 ‘월동 증후군’ 탓 분분[Who, What, Why]
지난달 13일, 50대 시설관리반장
“다 죽여버린다”며 동료들 위협
월동대 숙소 옆 기지에 비상격리
한달 만에 국내 송환해 警 수사
겨울 시작되면 극한의 고립경험
한정된 인간관계 속 우울감 유발
적개심·인지기능저하 등 겪기도

지난달 13일 오후 7시 20분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식당에 시설관리반장 50대 A 씨가 그라인더로 철판을 잘라 직접 만든 30㎝짜리 흉기를 들고 들어섰다. A 씨는 “다 죽여버린다” 폭언과 함께 한 대원의 목에 흉기를 들이밀었다. 비상알람이 울리자 저녁식사 중이던 대원들은 혼비백산 대피했고, 월동대장과 총무가 가까스로 A 씨를 설득해 분리에 성공했다. 한국의 두 번째 남극 상설기지 한복판에서 벌어진 흉기 위협 사건이었다.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발생 28일이 흐른 이달 11일이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극지연구소에서 사고 관련 자료를 확보하면서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해양수산부도 같은 날 공식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다행히 사고 당시 인명 피해는 없었다. A 씨는 5월 7일 기지를 떠나 11일 국내에 도착해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형근 극지연구소 인프라운영부장은 “비상 항공편을 확보하고 기지에 도착하기까지 약 3주가 소요됐다”며 “2차 사고 위험으로부터 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해 대원이 귀국하는 시점까지 비공개 조치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후 A 씨가 귀국하기 전까지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있다. A 씨는 월동대 숙소가 있는 메인동과 인접한 ‘비상대피동’에 격리됐지만, 기지에 별도의 치안 인력이 없는 탓에 자해 등 돌발 상황에 대비해 기지 총무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해야 했다. 일부 대원들은 불안감을 호소하며 가해자의 조속한 퇴거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귀국 경로는 남극의 고립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한국에서 출발한 송환팀은 뉴질랜드와 미국 맥머도기지를 경유한 뒤 경비행기로 장보고기지에 도착했다. 가해자를 인계받은 송환팀은 다시 ‘맥머도 → 뉴질랜드 → 호주 → 인천’ 역순의 경로로 돌아와야 했다. 극지연구소는 “활주로나 관제 없이 해빙 위에 착륙할 수 있는 경비행기를 확보하는 문제와 현지 기상 변수로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장보고기지는 2014년 2월 동남극 북빅토리아랜드 테라노바만에 준공된 한국의 두 번째 남극 상설기지다. 우주·천문·빙하·운석 등 남극 대륙 기반 연구를 수행하며, 현재 제13차 월동연구대 소속 18명이 지난해 11월부터 1년 일정으로 파견 근무 중이다. 한국은 1988년 세종기지에 이어 장보고기지를 세우면서 남극에 상설기지를 2개 이상 보유한 세계 10번째 국가가 됐다.
연구소의 가장 큰 한계는 필연적 ‘고립’이다. 남극 겨울이 시작되는 4월 이후엔 기상 악화로 항공편이 사실상 끊기고 영하 30도 안팎의 극야가 약 6개월간 이어진다. 가장 가까운 도시까지 최단 경유시간이 20시간에 달한다. 사건이 터져도 외부 사법·의료 인력의 즉시 투입이 불가능해 18명의 월동대가 자체적으로 모든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학계는 이런 환경에서 발생하는 심리 변화를 ‘월동 증후군(Winter-over syndrome)’으로 정의한다. 백야·극야와 폐쇄된 공간, 한정된 인간관계가 우울감과 적개심, 인지기능 저하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2018년 러시아 벨링스하우젠 기지에서 동료를 칼로 찌른 사비츠키 사건을 두고도 러시아 언론은 “밀폐된 공간의 긴장(tensions in a confined space)”을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극지연구소는 사건 직후 기지 체류 인원 전원을 대상으로 원격 화상 면담과 전문 심리 상담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월동대 선발 과정의 검증을 강화하고, 갈등 관리·사건 대응 매뉴얼을 재정비하며, 남극 파견 전 교육을 강화하는 등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게 연구소 측 설명이다. 다만 한국 기지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이 외부에 늦게 알려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7월 세종기지에선 술 취한 총무가 조리대원을 폭행한 뒤 CCTV가 삭제되는 등 은폐 의혹 속에 2개월 만에야 외부에 알려진 바 있다.
남극에서 한국인이 저지른 범죄에는 한국 법이 그대로 적용된다. 1959년 체결된 남극조약이 영유권 주장을 동결(제4조)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가해자 국적국 관할권에 종속(제8조)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6년 33번째 가입국이 됐고 1989년 협의당사국 지위를 획득했다. 또 한국 형법 제3조(내국인의 국외범)는 “본법은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에게 적용한다”고 규정해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A 씨에 대해선 수사 결과에 따라 형법 제284조 특수협박 등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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