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심리치료 병원 연 유수양 원장] 트라우마·경계인으로 치열했던 삶…‘복지’로 꿈 완성

광주일보 2026. 5. 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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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조대여고 3년 때 5·18 겪어
병원에 헌혈 갔다 국가폭력 참상에 큰 충격
이화여대·도쿄대서 정치학 전공
이유 없는 통증 고통…심리치료 관심
가고시마 의대 진학 ‘정신과 전문의’
언어·학문·문화 사이 경계인의 삶
인생 고비고비 만남 통해 삶 단련시켜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에서 윤멘탈클리닉을 운영하는 유수양 원장은 자택 곁에 경도발달장애아동을 위한 데이케어센터 ‘미리온’을 오픈했다. <유수양 원장 제공>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

그를 인터뷰 하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흔히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몇권이 될 지 모른다고’들 한다. 그의 삶이 딱 그랬다. 마치 드라마처럼 이야기가 끝없이 흘러나왔고 그건 모두 ‘도전의 역사’였다. 일본 국립정신병원 근무 당시 동료 직원이 “선생님은 둥지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언젠가 선생님이 그 둥지를 떠나도 그 둥지는 남아 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잘 살아간다”고 했다는데, 그는 자신의 인생을 개척함과 동시에 사람 사이를 조율하고 연결하고, 연대를 도모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일본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에서 유멘탈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유수양 원장을 만났다.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한 그는 정신과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이자, 한의학 박사이자, 사회복지 법인 운영자다. 유 원장은 인터뷰 전날인 지난 15일 ‘2026 비움박물관 인문학 산책’에서 ‘트라우마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트라우마, 디아스포라, 치유’ 세 개의 단어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그는 ‘경계’의 인간이다.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지만 일본에 38년째 머물며 한국인과 일본인 ‘그 사이’에 있다. 학문의 경계도 넘나든다. 그의 삶은 ‘디아스포라,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타이틀로 아사히 신문에 5회 연재될 예정이다. 마쯔바라 히로시 기자는 한국-일본, 인문학-의학, 심리치료-정신의학, 한의학-서양의학, 사회복지-의료라는 다섯 가지 ‘경계’를 주제로 취재했다.

◇여고생이 겪은 광주 5·18

이야기의 출발은 조대여고 3학년이던 1980년 5월이다. 전남대 병원에 헌혈을 하러 갔다 사람들이 피로 현수막을 쓰는 모습을 본 그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22일 전남도청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광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 가고 싶었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그는 계엄군이 지키는 학교로 향했다. 모두 안된다고 했지만 한 군인이 교실까지 동행하겠다고 했다. 그는 울면서 말했다. “왜 국군이 국민을 죽여요. 국민학교 때 위문편지도도 쓰고 위문품도 열심히 보냈는데요.” 자신을 국문과생이라고 밝힌 군인은 “학생 여기서 이런말 하면 절대 안돼. 다른 데서도 하면 안돼. 혹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나에게 편지를 보내”라고 조용히 말했다.

받아든 주소로 편지를 썼다. 도착한 3장 분량의 답장은 검열로 거의 다 지워진 상태였다. 간단한 인사말과 “대학 가서 많이 배워야 한다”는 내용은 남아 있었다. 마지막장에는 강은교의 시 ‘우리가 물이 되어’가 적혀 있었다. 그는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지금도 가장 애정하는 시다. 5월을 지나며 그는 “내 나라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그는 “내가 설 자리가 손바닥만큼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회가 닿아 교환학생으로 일본 쯔다쥬쿠 여자대학으로 떠났다. 도쿄대 출신 좌파 지식인들과 교류가 이어지고, 광주의 이야기를 듣는 모임에 여러 차례 참여해 발언했다.

“이곳에서는 제가 경험한 광주의 이야기를 들어줬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안보였거든요.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이사람들 옆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도쿄대 대학원에 진학, 국제정치학과 전쟁론을 공부한 그는 국제전쟁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살인적인 두통이 찾아왔다. 병원에서는 뇌종양을 의심하는 것 같았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심리치료를 받았다. 이완명상을 하고 40분 넘게 울며 일어와 한국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치유를 경험한 그는 심리치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심리치료가 인기였고, 미국을 오가며 공부한 후 심리치료 트레이너가 됐다. 한국인이 영어와 일본어로 치료하니 희소성이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린시절의 심리적, 신체적, 성적 학대 등 가정 내 폭력은 무료로 치료했다. ‘나를 믿게하는 게’ 필요했기에 전문성을 갖춰야했다. 국립가고시마 의과대학에 들어가 레지던트까지 12년을 공부하며 수백 케이스가 넘는 임상 경험을 쌓고 실력을 키웠다.

미리온 내부 모습.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그의 또 다른 정체성은 ‘디아스포라, 경계인’이다. 그는 경계인의 삶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디아스포라는 고향을 떠나 두개의 시공간을 동시에 사는 사람입니다. 완전히 여기도, 거기도 아닌 삶이죠. 남들은 잘 발견하지 못하는 ‘틈’을 발견해요. 그 틈에서 ‘깊이’를 보고 세계를 확장해갑니다. 디아스포로라는 타인의 슬픔을 잘 알아보고 낯선 곳에서도 오래 버티고 작은 것에서 고향을 발견합니다. 내 뿌리를 내린 자리가 바로 나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상실보다는, 만들고 확장시키는 삶을 살아갑니다. 디아스포라는 경계인입니다. 언어와 언어 사이, 문화와 문화 사이, 기억과 현재 사이에 서서 조율하고 연결시키며 삽니다. 경계에 있기 때문에 중심을 상대화할 수 있고 당연한 것을 다시 봅니다. 경계에 있다는 것은 불완전함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살아본 적이 없는 실험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 숙명입니다. 경계인이라는 위치가 오히려 나를 잘 살게 해주었습니다.”

인생 고비 고비 많은 사람을 만났다. 롤모델이 된 역사적 인물도 있고, 차별에 대한 전투력을 상승시킨 사람도 있었다.

‘태풍의 눈’으로 아쿠다카와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기자였던 히노 케이조(1929~2002)는 경계인의 삶에 대해 혜안을 준 인물이다. 경성에서 태어나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아사히 신문 특파원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왔고 경계인의 고통과 통찰을 다룬 작품으로 남겼다. 미 국무장관을 지냈던 콜린 파월은 차별 앞에서 마음 조절법을 알려준 인물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너희들이 나를 아무리 밀어내도 나는 결국 다시 이 운동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문이 완전히 열리지 않아도 나는 그 문앞에서 품위와 실력으로 존재하겠다”고 말했고 파월은 그들이 틀렸음을 실력으로 입증했다.

한국에 대해 망언을 서슴치 않았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 등 일본의 정치인과 레지던트 시절 선배 의사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단련시켜준 사람이다.

“어느 날 선배가 ‘이물이 이물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겠어’라며 정신과의사는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더군요. 이물이 일본에서는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인데 저를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낙인 찍은 거죠. 그 때 다짐했죠. 나는 너같은 사람한테 상처 받지 않는다. 내 스스로 나를 지킨다고요.”

유수양 원장.
◇트라우마 치유와 연대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는 인간의 삶을 조용히, 때로는 극적으로 파괴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질환들이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고 트라우마 치유가 안된 사람들은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일을 반복한다고 강조했다. 5·18과 세월호 등도 마찬가지다.

“트라우마 회복의 서사에는 두 가지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에 근거해 ‘우리들’이 경험한 객관적인 일들을 정확히 밝히는 것입니다. 이후 개인 개인이 경험한 주관적 진실들이 그들의 몸과 마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공감하는 게 필요합니다. 첫번째가 이뤄지지 않으면 두번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받은 후 개인 치료가 이뤄져야합니다. 진실을 밝히는 건 사회와 정치, 국가가 해줘야할 부분인데 이게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과정이 빨리 마무리되고 한 사람 한사람 치유로 나아가야합니다.”

이토시마와 한국에서 M&L 심리치료 과정을 운영중인 그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 일이 힘든 게 아니라 그 일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감정이 힘든 경우가 많아 네거티브한 감정이 이어진다”며 “일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고 내 안에서 일어난 감정을 내가 소중하게 받아들이며 원인 제공자를 만나지 않아도 그 당시의 나를 만나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래전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라는 의대 입학 시험 논술형 문제에 이렇게 썼다.

“의대에 들어가면 재시험을 한번도 치르지 않고 졸업할 것이다. 의사 자격 취득 후 트라우마 치료 전문 정신과 전문의가 된다.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아동 정신과 분야를 공부할 것같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집도 학교도 아닌 제 3의 장소를 만들어주고 싶다. 언젠가 그 곳에 엄마 아빠들도 오게 해서 양육에 관한 고민, 또 부모들의 개인적인 고민들을 들어주고 지원하고 싶다.”

오랫동안 품었던 꿈은 지난 4월 ‘완성’됐다. 도쿄 등에서 살았던 그는 12년 전 이토시마에 정착했다. 의료는 복지와 연대해야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는 그는 사회복지법인 ‘미리온(美理音)’을 설립했다. 아름다운 고향 영산포의 자연의 소리를 그리워하며 붙인 이름이다. ‘미리온’은 경도발달장애 아동의 방과후 돌봄 서비스를 진행하는 곳으로 자택 옆 80년된 고택을 구입해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500평의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강아지 ‘라이안’과 뛰어논다. 부모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함께 열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센터에 오는 우리 아이들과 부모님들, 또 저를 함께 돌보는 공간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고향’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터뷰 후 그가 작은 수첩을 건넸다. 치료를 받고 수채화 전시회를 연 환자의 그림으로 만든 수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받으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징표 같았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 유수양 원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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