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비 수사로 돈 찾아줄게"…도박 빚 몰린 경찰의 두 얼굴[사건의재구성]
직위해제 후 도움 손길 내민 가게서 현금 훔쳐 또 도박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이 돈을 어디서 구하지…"
20대에 경찰로 입직해 일선 지구대 등에서 근무한 A 씨(30)는 불법 스포츠토토에 빠졌다. 수년간 반복된 도박은 빚을 눈덩이처럼 불렸다.
빨리 빚을 갚고 다시 도박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A 씨는 결국 '민중의 지팡이'를 거꾸로 집어 들었다. 자신의 경찰 신분을 범행 도구로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A 씨가 노린 대상은 자신이 외국인 유학생 범죄예방 교육을 하던 한 대학교 관계자들이었다.
그는 친분을 쌓아 온 대학교 관계자 B 씨로부터 사기 피해 사건을 상담받던 중 경찰 직위를 악용하기로 마음먹었다.
B 씨는 과거 무면허운전 방조죄로 처벌받았는데, 이 때문에 지인이 자신에게 빌려 도박자금으로 쓴 돈을 되돌려받지 못하고 있었다.
A 씨는 "극비리에 함정수사를 진행하면 돈을 모두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B 씨가 지인에게 빌려준 액수만큼을 자신의 계좌로 입금하면, 계좌를 동결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수사 기법'을 꾸며냈다.
B 씨는 경찰관의 말을 믿었다. 그렇게 A 씨 계좌로 1억 1876만 원을 보냈다. 그러나 함정수사는 없었다. B 씨는 수사가 아니라 함정에 빠진 셈이었다. B 씨는 이후 "그동안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3개월 가까이 굶었다"며 A 씨를 고소했다.
A 씨는 범행을 숨기기 위해 피해자의 경찰 조사까지 막으려 했다. 그는 B 씨에게 43차례에 걸쳐 보이스톡과 전화, 메시지를 보내거나 직접 찾아가는 등 스토킹 범죄를 저질렀다.
A 씨의 범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또다른 대학 관계자인 C 씨에게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며 5550만 원을 빌렸다. 이 돈은 모두 도박자금이나 채무 변제에 사용됐다. 그는 신고를 막기 위해 C 씨를 상대로 100차례 스토킹했다.
결국 피해자들의 신고로 A 씨의 범행은 들통났다. 전남경찰청은 업무상횡령, 사기,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 경장 A 씨를 지난해 2월 직위해제했다.
직위해제된 A 씨에게 지인 D 씨는 손을 내밀었다. 목포에 소재한 음식점에서 일을 거들며 종업원으로라도 지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A 씨는 같은 해 7월 이 가게 카운터에서 현금 12만 원을 훔쳐 도박에 썼다.
항소심을 맡은 광주지법 제1-1형사부는 지난 21일 "피고인의 스토킹 행위로 피해자들이 상당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다"며 "현직 경찰관의 지위를 이용해 피고인을 믿고 있던 피해자들에게 악질적인 거짓말을 하고 1억 7400만 원의 금액을 가로챘다"고 일침을 가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는 점, 피해자 중 한명에게 퇴직연금을 양도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 도박중독치료를 받기로 다짐하는 점 등을 고려한다"며 원심보다 낮은 징역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sta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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