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보다 중요한 건 데이터…제조업 혁신, ‘AI 쓰는 사람’에 달렸다"

"AI가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닙니다. AI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겁니다. AI는 데이터 처리, 사람은 창의성과 경험입니다. 둘을 함께 쓸 때 비로소 강해집니다."
토마스 커퍼스 미국 조지아공대 기계공학부 석좌교수가 26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2026 밸류팩처링 국제학술대회(ICV2026)' 기조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AI 시대 커퍼스 석좌교수가 강조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쓰는 사람이다.
커퍼스 석좌교수는 기계를 움직이고 제어하는 시스템 전문가다. 조지아공대 제조 연구소를 이끌며 제조·에너지·국방 분야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등과 AI 기반 첨단 제조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커퍼스 석좌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AI와 인간의 협력 방식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했다. 레이저로 금속 분말을 녹여 층층이 쌓아 부품을 만드는 금속 3D 프린팅 공정에는 23개 이상의 독립 변수가 존재한다. 인간이 모든 변수를 동시에 최적화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는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지만 어떤 변수가 실제로 중요한지 해석하고 방향을 정하는 데에는 인간의 경험과 직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자동화가 아닌 '증강 지능', 즉 AI가 데이터를 처리하고 인간이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다.
다만 AI를 도입한다고 해서 저절로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커퍼스 석좌교수는 "어떤 회사가 AI로 불량품을 골라내고 싶다고 했는데 불량률이 백만 분의 일이었다"며 "AI는 데이터가 필요한데 그 정도 데이터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불량품이 백만 개당 하나꼴이면 AI가 학습할 데이터가 너무 적다는 뜻이다.
올바른 질문은 오히려 반대였다. AI로 좋은 부품을 골라내고 AI가 인식하지 못한 것만 전문가에게 넘기는 것이다. 구글 맵이 잘못된 길을 안내하듯 AI는 완벽하지 않다. 인간의 판단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값비싼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커퍼스 석좌교수는 "오늘날 고등학생들이 프로그래밍하는 아두이노, 라즈베리 파이가 닐 암스트롱을 달에 보낸 미항공우주국(NASA) 컴퓨터보다 수천 배 강력하다"고 말했다. 첨단 기술이 더 이상 거대한 설비나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커퍼스 석좌교수팀은 실제로 8달러(약 1만2000원)짜리 마이크로폰으로 기계 소리를 분석해 최적의 회전 속도 구간을 찾아냈다. 기계가 심하게 떨릴 때 대부분의 공장은 회전 속도를 줄이지만 소리 분석으로 떨림이 발생하는 구간을 파악한 커퍼스 석좌교수팀은 반대로 속도를 높여 그 구간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AI 도입 전에 넘어야 할 가장 큰 장벽은 데이터 수집과 저장이다. 커퍼스 석좌교수는 "많은 기업들이 아직도 측정값을 엑셀에 입력하고 있다"며 "측정값이 블루투스로 컴퓨터에 자동 입력되는 디지털 캘리퍼스 하나만 도입해도 오류가 줄고 입력 시간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30년 전 마트 계산원이 모든 번호를 직접 입력하다가 지금은 스캔 하나로 끝내는 것과 같은 변화가 제조 현장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커퍼스 석좌교수는 강연 후 만난 자리에서 “데이터 체계가 갖춰지면 약 10~15% 수준의 노력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커퍼스 석좌교수팀이 항공기 엔진 내부에서 고속으로 회전하는 날개 부품인 터빈 블레이드 제조사와 협력한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통계 분석만으로 생산 시간을 17% 절감했다. 블레이드 제작 시간 자체는 안정적이었지만 블레이드마다 공구 세트가 달라 교체 시간의 편차가 컸다. 비슷한 공구를 쓰는 블레이드끼리 묶어 작업 순서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다만 데이터를 다루는 인력 문제도 과제로 남는다. 커퍼스 석좌교수는 제조 공정과 데이터 시스템을 함께 이해하는 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어느 한쪽만 아는 사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제조 AI에 필요한 알고리즘이 반드시 고도로 복잡한 것만은 아닌 만큼 기초적인 알고리즘부터 현장에 맞게 적용하고 점진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커퍼스 석좌교수는 기술이 대기업에만 머물러서는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나 삼성 같은 대기업은 이미 잘하고 있지만 텔레비전 나사를 만드는 직원 다섯 명 회사에도 첨단 기술이 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커퍼스 석좌교수는 이를 '제조업의 민주화'라고 불렀다.
한국과의 협력도 같은 맥락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공급망을 이루는 중소기업들까지 기술 협력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아공대에는 한국인 교수진과 한국 관련 연구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 협력의 기반이 이미 갖춰져 있다. 커퍼스 석좌교수는 "현대자동차가 미국 사바나에 새 공장을 열었고 조지아공대 졸업생들이 다수 근무하고 있다"며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사바나 공장은 기존 컨베이어 벨트 방식 대신 자율이동로봇(AMR)으로 부품을 운반하는 첨단 기술을 도입했다. 그는 엔지니어링 지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일수록 외부 기술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조지아공대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은 지난해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협력 관계를 공식화했다. 커퍼스 석좌교수의 이번 학회 참석도 그 흐름 위에 있다.

한편 ICV2026은 생기원이 주관하는 첫 국제학술대회로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밸류팩처링'을 새로운 제조 패러다임으로 선포하고 세계적 석학들과 함께 제조업 미래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밸류팩처링은 가치(Value)와 제조(Manufacturing)를 결합한 용어로 산업혁명 이후 250년간 이어져온 생산성 중심 제조업에서 탈피해 경제·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1회 학술대회임에도 15개국에서 136편의 초록이 접수되며 국내외 연구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조가현 기자 ga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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