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0% 후계자’ 이규호, 코오롱 군살 빼고 AI·우주에 베팅
[비즈니스 포커스]

코오롱그룹이 1년 새 계열사 7곳(45개→38개)을 무더기로 정리했다. 덩치를 키워 재계 순위를 높이기보다 수익성 중심의 고밀도 구조조정에 돌입한 모습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코오롱의 자산총액은 15조5080억원으로 전년 대비 3380억원 늘었으나 재계 순위는 38위에서 39위로 한 계단 하락했다. 서열 상승 대신 알짜 자산만 남기겠다는 이규호 부회장식 ‘선택과 집중’의 결과물이다.
“능력 입증 못 하면 지분 없다”…조건부 승계 8년째
코오롱그룹은 2018년 이웅열 명예회장이 물러난 뒤 8년째 총수 공석 상태다. 후계자로 지목된 이규호 (주)코오롱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42·1984년생)은 지주회사 (주)코오롱 지분을 단 1주도 보유하지 않았다.
오너 4세대가 지주사 주식 0%로 경영 전면에 나서는 구도는 재계에서도 드문 풍경이다. 이 명예회장이 용퇴하며 내건 원칙은 명확했다. “경영 능력을 입증하라.” 능력 없으면 주식도 없다는 조건부 승계 방침이다.
이규호 부회장은 미국 출생으로 복수국적자였지만 미국 시민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한국 육군 현역에 입대했다. 파병 부대는 레바논 유엔평화유지군인 동명부대였다. 레바논 파병 경험은 경영 승계 이전부터 책임경영 의지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 사재를 들여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글로벌 주식을 장내에서 매수했다. 지주사 지분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실무를 익힌 핵심 사업 회사의 주식부터 확보한 것이다. 시장 평가를 직접 받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AI 기판 소재·아라미드 집중…비주력 사업 정리
이 부회장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의 중심에는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 5월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수익성이 저하된 필름·디스플레이 사업 매각 검토를 공식화했다. 인공지능(AI)·고기능 소재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겠다는 전략이다.
여성복 브랜드와 코오롱글로텍 천연잔디 사업도 정리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AI 데이터센터와 5G 통신용 핵심 소재인 특수 플라스틱(mPPO) 사업은 전면 강화했다. 현재 김천 2공장에 전용 생산시설을 구축 중이다.
전기차용 타이어코드는 베트남 공장 증설을 통해 2027년까지 연간 생산능력을 5만7000톤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1조원 이상 투입한 아라미드 사업이 최근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실적 개선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룹 전반의 계열사 정리 방식은 실익 없는 상장폐지와 기능 통합이 골자다. 주가 부진이 장기화된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상장 유지 비용 절감을 위해 자진 상장폐지 후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자회사 코오롱ENP를 흡수합병해 고기능성 플라스틱 라인업을 일원화했다. 지난 1년간 청산·해산 절차를 완료했거나 진행 중인 계열사는 총 7곳이다. 과거 방식의 레거시 사업을 줄이고 첨단 화학 소재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한 것이다.

코오롱스페이스웍스에 복합소재 역량 집결
코오롱그룹은 지난해 7월 그룹 내 복합소재 역량을 집결한 코오롱스페이스웍스를 출범했다. 우주항공 산업은 극한의 환경을 견뎌야 하는 만큼 소재 기술의 정점이 요구되는 분야다. 코오롱은 수십 년간 축적해온 탄소섬유 복합소재 가공 기술을 무기로 우주항공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코오롱스페이스웍스는 코오롱데크컴퍼지트, 코오롱글로텍, 코오롱ENP 등에 분산됐던 방산, 차량 경량화, 수소탱크 관련 자원을 통합했다. 우주 발사체와 인공위성은 무게를 1g이라도 줄이는 것이 비용과 직결되는데 코오롱은 금속보다 가볍고 강한 특수 복합소재를 제시했다.
출범 이후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2월 현대자동차·기아와 ‘전략적 미래 모빌리티 소재 사업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투자를 유치했다. 자체 개발한 54L 수소연료탱크의 국제인증(ECE R134)과 177L 제품의 한국가스안전공사(KGS) 인증을 잇달아 획득했다.
코오롱스페이스웍스는 국내 최초 민간 발사 서비스 기업 이노스페이스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등 방산과 우주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영업이익 158% 급증했는데 순손실 왜
(주)코오롱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638억원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1분기 실적은 수익성 개선 속도가 한층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1분기 매출 1조5188억원, 영업이익 988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158.3% 급증했다. 프리미엄 자동차 판매 호조를 이어간 코오롱모빌리티그룹과 주택 프로젝트를 대거 준공시킨 코오롱글로벌의 선전이 그룹 전체 이익을 견인한 결과다.
영업이익 급증세와 달리 1분기 당기순손익은 447억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기조를 유지했다. 코오롱티슈진 주가 상승에 따른 전환사채(CB)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반영된 영향이다. 자회사 주가 상승으로 인한 평가손실은 실제 현금 유출이 없는 비현금성 항목에 해당하나 회계 기준상 손익계산서에는 손실로 계상되는 구조다.
건설 경기 불황에 대비해 코오롱글로벌의 잠재적 부실 가능 비용을 선제적으로 장부에 반영한 빅배스(Big Bath) 전략도 적자 지속의 배경이다. 향후 발생 가능한 리스크를 미리 반영해 재무 불확실성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코오롱그룹은 구조조정 비용 정리가 마무리되는 2027년을 당기순이익 흑자전환의 원년으로 설정했다. 올해 장부상 부실 요인을 모두 털어내면 영업이익 개선이 순이익으로 직결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시험대 오른 이규호의 ‘뉴 코오롱’
재계는 지분율 0%인 이 부회장이 최종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향후 2~3년간 증명해야 할 결과물에 주목한다. 우선 코오롱인더스트리 구조조정 성과가 숫자로 발현되어야 한다. 비주력 사업을 팔아 확보한 실탄을 특수 플라스틱 물질(mPPO), 아라미드, 우주항공 등 고부가가치 미래 사업에 재투자해 눈에 보이는 수익성을 내는 것이 급선무다.
장부상 영업이익을 넘어 당기순이익의 확실한 흑자전환 시점을 당기는 것도 과제다. 회계상 잠재 부실을 털어내는 비용 정리가 마무리되고 순이익이 플러스로 돌아서야 시장에서 온전한 턴어라운드(실적 반등) 성적표를 인정받을 수 있다.
지배구조 안정화도 과제다. 이 부회장은 이미 지주사인 (주)코오롱과 주력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사내이사직을 모두 확보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법적 책임을 지는 등기임원 자리는 확보했으나 지분율 ‘제로(0)’라는 한계 속에서 책임경영의 정당성을 유지하려면 주주들을 납득시킬 압도적인 실적이 필수적이다.
향후 본격화될 지분 승계 과정에서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증여세 등 재원 마련을 어떻게 시장 친화적으로 해결할 것인가도 과제다. 코오롱 본사 회장실은 8년째 비어 있다. 그룹 안팎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사업 재편과 실적 개선 여부가 향후 승계 작업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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