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표고, 숲과 흙이 길러낸 ‘신비로운 향’에 반하다
땅·나무 속 균사가 만든 자실체
참나무 같은 활엽수에서 자라
생으로 구우면 ‘묘한 향’ 솔솔
말려서 국물에 넣으면 감칠맛
양념에 볶고 불맛 듬뿍 입힌뒤
야채와 함께 말아낸 김밥 별미

버섯은 신비로운 생물이다. 우리는 버섯을 채소처럼 먹지만 버섯은 식물이 아니다. 엽록소가 없어 햇빛으로 양분을 만들지 못한다. 버섯은 대체로 죽은 나무와 낙엽·흙 속 유기물을 분해하며 살아간다. 식탁 위에서는 그저 반찬 하나에 불과해 보이지만 자연 속에서는 숲을 해체하고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는 거대한 순환의 일꾼이다.
우리가 먹는 버섯은 사실 버섯의 전부가 아니다. 버섯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땅속이나 나무 속에 가느다란 실 같은 균사(버섯을 구성하는 세포)가 그물처럼 퍼져 있다. 흙 한줌 속에도 상상보다 훨씬 긴 균사 그물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버섯의 갓과 자루라고 부르는 부분은 균사가 어느 순간 만들어 올린 자실체다. 포자를 퍼뜨리기 위해 잠시 세상 밖으로 내민 구조물이다. 비가 온 뒤 숲길에 갑자기 버섯이 솟아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버섯 세포벽 재료는 식물보다 곤충에 더 가깝다. 식물 세포벽의 핵심 물질은 셀룰로스지만 버섯 세포벽에는 키틴이 많다. 곤충·새우·게의 껍데기를 이루는 물질과 같은 계열이다. 그래서 버섯은 연해 보이면서도 쉽게 곤죽이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표고버섯은 더 신비롭다. 참나무류 같은 활엽수에서 자라고 지금은 원목이나 톱밥 배지에서 널리 재배된다. 생 표고를 구우면 숲 냄새나 고기 냄새 같기도 한 묘한 향이 올라온다. 말린 표고를 물에 불리면 향은 더 진해진다. 국물에 몇 조각만 넣어도 풍미가 확 바뀐다.
이 풍미의 바탕에는 감칠맛이 있다. 버섯에는 글루탐산 같은 유리 아미노산이 들었다. 표고에는 글루탐산의 감칠맛을 증폭시키는 구아닐산(GMP)도 있다. 다시마와 말린 표고를 함께 넣어 육수를 내면 고기를 넣지 않고도 고기 국물처럼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과학적 이유다.
하지만 표고의 진짜 개성은 향에 존재한다. 분말수프에 말린 표고 조각 몇개가 들어 있을 뿐인데 무슨 라면인지 맞힐 정도로 향이 강하다. 표고를 통째로 가만히 두면 그저 버섯다운 냄새가 난다.
그런데 자르거나 말리고 다시 불리는 과정에서 향이 뚜렷해진다. 표고 특유의 향을 만드는 황화합물 렌티오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조직이 손상될 때 효소 반응이 시작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버섯을 건조하고 써는 과정 자체가 이미 조리의 시작인 셈이다.
렌티오닌은 신선한 표고를 약 60℃에서 천천히 말린 뒤 따뜻한 물에 불렸을 때 풍부하게 만들어진다. 바로 센 불에 익히면 효소가 활동할 틈도 없이 반응이 꺼진다. 말린 표고를 물에 불려 쓰는 방식은 단순한 보존법이 아니라 향을 극대화하는 조리법이다.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제철 식재료를 가져다 요리하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작은 분식점 ‘샐러마리’에서는 표고버섯의 맛을 한층 더 끌어올린 김밥을 맛볼 수 있다. 표고를 양념에 볶고 불맛을 입혀낸 뒤 깻잎과 양배추, 여러 채소와 함께 말아낸다. 양배추 역시 황화합물 특유의 향을 지닌 채소여서 표고와 잘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아삭한 양배추와 쫄깃한 표고의 식감이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표고가 주연이 된 음식 맛을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음식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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