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상품권 사기당했다”던 피해자, 알고보니 연 3,128% 사채업자

박수연 기자 2026. 5.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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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전 필요한 사람 노리고 접근”
사기 피고인에게 무죄 판결

상품권 미끼 신종 대부업 기승
정부도 불법 업자 대응나서

A 씨는 2025년 6월 9일 네이버 카페에 '50/80, 6월 16일 지급'이라며 신세계 모바일 상품권을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를 본 B 씨는 A 씨에게 연락해 구매의사를 전달했고, A 씨는 "돈을 보내면 신세계 모바일 상품권을 전송하겠다"고 하고는 실제로는 상품권을 보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80만 원어치의 백화점 상품권을 50만 원에 할인 판매하고, B 씨가 50만 원을 바로 지급하면 A 씨가 6월 16일까지 80만 원어치의 백화점 상품권을 보내주기로 한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썼다. B 씨는 A 씨에게 50만 원을 송금했고, 이후 약속한 날까지 상품권을 지급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A 씨를 고소했다. 처음부터 약속한 상품권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던 A 씨는 2025년 10월까지 B 씨 등 피해자 6명으로부터 11회에 걸쳐 총 33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재판을 통해 이 거래는 실상 급전이 필요했던 A 씨가 상품권을 판다고 속이고 돈을 융통하려한 변칙적 금전 소비대차 계약으로 드러났다. 상품권 거래과정에서 대주(돈이나 물건을 빌려준 사람,상품권 구매예약자로 가장한 B 씨)와 차주(돈이나 물건을 빌려 쓴 사람, 상품권 판매자로 가장한 A 씨)가 된 두 사람이 서로 대여조건을 맞춰본 뒤 모바일 메시지를 통해 일종의 상품권 거래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계약서를 주고 받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상품권 거래 사기범으로 기소된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상품권을 사겠다고 연락한 피해자들이 피고인에게 '상품권 사채거래'를 위해 접근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상품권 사채거래는 급전이 필요한 피해자가 불법 사채업자에게 상품권을 파는 것처럼 계약을 맺고 사채업자가 미리 대금을 지불한 뒤 고리의 이자를 붙여 상품권으로 상환을 요구하는 신종 고금리 사채다. 

최근 정부는 이같은 상품권 매개 고리대금업이 기승을 부리자 '상품권 사채'도 불법사금융으로 보겠다고 밝히고 단속에 들어갔다.

광주지법, "상품권 사채 피해자에게 '사기' 혐의 무죄" 선고
광주지법 형사6단독 차기현 판사는 5월 19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26고단3562 음주운전 사건에 병합된 2026고단168 사기 사건). 

차 판사는 B 씨 등 피해자들이 대부업법, 이자제한법 등을 교묘히 피하기 위해 상품권 거래를 가장한 단기 고이율(高利率)의 소액 대부행위 또는 개인 간 금전소비대차('고리 사금융')를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피고인 A 씨에게 약정한 시기에 상품권을 구입해 보내줄 경제적 능력이 부족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은 피해자들 역시 이미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차 판사는 "피해자들은 각각 단기간에 고리의 이자를 더해 받을 생각에 '채권추심에 성공하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지, A 씨의 기망행위에 속아 돈을 보낸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차 판사는 "피해자 B 씨가 6월 9일 급전으로 A 씨에게 50만 원을 빌려주면 일주일 뒤(6월 16일)에 이자 30만 원을 더한 80만 원으로 반환하기로 하되, 만약 A 씨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B 씨가 경찰에 물품구매 사기인 것처럼 고소할 수 있도록 상품권 거래의 외양을 취한다는 것이 이 거래의 실제 의미"라고 판단했다. 굳이 그렇게 하는 까닭은 A 씨가 제때 변제하지 않으면 민생 범죄를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경찰을 활용해 피고인을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차 판사는 두 사람 사이의 고리 사금융 거래 내용은 A 씨가 50만 원을 일주일 쓰고 이자로 30만 원을 내기로 한 것으로, 그렇게 된다면 두 사람이 약정한 이자율은 연 3128.5%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차 판사는 "B 씨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 역시 같은 상대(A 씨)로 같은 형태의 고리(연이율 약 1,000~8,000%가량) 사금융을 하면서 상품권 거래인 것처럼 둔갑시켰고, A 씨가 제때 상품권을 보내주지 않자, 문자로 고소하겠다고 압박하다가 물품 구매 사기인 것처럼 가장해 경찰에 진정서나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차 판사는 피해자들은 사채업자처럼 정형화된 계약서 양식까지 만들어놓고 모바일 메시지를 통해 사실은 돈을 빌리는 사람인 '상품권 판매자'가 그 양식을 채우도록 해 받아뒀다는 점도 짚었다. 차 판사는 "진정 또는 고소할 때는 피해자들은 A 씨 앞으로 빈 양식을 보낸 부분은 생략하고, A 씨가 빈 양식에 내용을 채워 회신한 부분만 제출해 상품권 거래를 A 씨가 주도한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고 밝혔다. 차 판사는 피해자들이 사채를 빌려줄 때 보증인을 세우는 것처럼 부모의 연락처를 적게 하거나 주민등록등본 등 각종 서류를 요구했던 점도 언급했다. 차 판사는 "이는 사채업자에 버금가는 치밀함을 보인 것으로서 이들을 단순한 상품권 구매 희망자로 보는 것은 A 씨와 피해자들 사이 거래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차 판사는 B 씨 등이 A 씨의 변제의사와 능력에 관해 착오에 빠져 거래한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계약 내용이 공통적으로 약 1~2주 이후에 상품권을 신규로 구매해서 보내준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환금성이 높은 상품권을 갖고 있지 않은 A 씨가 당시 B씨 등이 보내온 돈에다가 불과 일주일 뒤에 연 환산 1,000~8,000%가량의 추가금을 붙인 액면가의 상품권을 사서 B씨 등에게 보내주기로 하는 약정이 통상적인 상품권 거래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를 정상적 매매라고 생각한 피해자들도 없었을 것임은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 판사는 "피해자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피고인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점으로, 더는 돈을 빌릴 곳이 없어 상품권 거래 형태를 가장한 고리의 사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피해자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고리의 사금융 이외에는 돈을 빌릴 곳이 없는 피고인을 상대로 하는 다소 위험한 거래이지만 혹시 손실을 보더라도 소액에 그친다는 점은, 착오에 빠지지 않은 피해자들이 피고인에게 돈을 빌려주게 된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 판사는 B 씨 등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발동 필요성 역시 부정했다. 차 판사는 "A 씨에 대해 사기죄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여지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대부업법, 이자제한법 위반 소지가 높은 피해자들의 변칙적인 고리 사금융 행위도 제대로 조사하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들의 채권추심 행위를 도와주기 위해 경찰의 수사 역량이 동원되고 법원을 통해 국가형벌권까지 발동한다는 것은, 궁지에 몰린 경제적 취약계층의 고혈을 빠는 고리 사금융을 더 열심히 하라고 국가가 권장하는 것에 불과해서 매우 부적절하고, 형법에 사기죄를 두고 있는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1심 선고 후 피고인만 항소하고 검찰은 항소하지 않아, 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부분은 그대로 확정됐다.

정부, "외관상 상품권 매매 가장해도 강력 대응"
상품권 사채는 최근 인터넷 카페·SNS 등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문제는 외관상 정상적 계약 형태를 띄다보니 피해자가 상품권 미상환 시 불법사채업자가 상품권 거래사기라며 피해자를 협박하고, 오히려 피해자가 경찰에 사기죄로 고소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5월 21일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이재명 정부 세 번째 '불법사금융 근절을 위한 범정부 TF' 회의를 개최했다. 상품권 예약판매를 빙자한 변종 수법이 기승을 부리자 열린 회의였다. 

정부는 외관상 상품권 매매를 가장하더라도 거래 내용상 대부업 등록 없이 반복적으로 거래하는 경우 상품권 예약판매도 대부업법을 적용해 불법사금융업자로서 강력히 대응하기로 했다. 또 상품권 예약판매 피해자도 일반 불법사금융 피해자와 동일하게 '원스톱 지원체계'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상품권판매자가 '사기 피의자'로 고소되거나 이미 사기죄로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소송을 지원하기로 했다. 

최근 연합뉴스 보도 등에 따르면, 상품권 사채를 이용한 뒤 불법 추심에 시달리던 30대 여성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21일 KBS는 21만 원을 빌려주고 30만 원 상품권을 요구하는 등 고금리를 내세운 상품권 사채 업자가 검찰에서 불법 추심 관련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을 보도했다. 이날 인천지검은 "'상품권 사채'에 대한 대부업법 위반 혐의는 경찰에서 불송치(혐의없음) 처분되었다가 서울서부지검에서 2026년 4월 '상품권 판매를 가장한 대부업' 해당 여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라는 취지로 재수사 요청하여 현재 경찰 수사 중이어서 '상품권 사채' 자체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는 기사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은 앞으로도 '상품권 사채' 등 불법사금융업자에 대하여는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엄정하게 대응함으로써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