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고아 1074명 살린 기억의 공간 충현원

광주일보 2026. 5. 27.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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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북한군과 중공군이 매서운 겨울 바람을 몰고 서울을 향해 남하했다.

충현원은 6·25 전쟁 전후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젖먹이 고아를 보호하기 위해 건립됐는데 초기에는 선교사의 지원을 받아 운영됐다고 한다.

블레이즈델과 충현원의 오랜 인연은 6·25 전쟁고아와 맞닿아 있다. 블레이즈델은 6·25 전쟁 이후에도 고아들을 돌볼 시설을 찾던 중 2005년 미국에서 열린 '미군 병사와 한국 아이들' 사진전시를 계기로 충현원과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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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표 경제부장
1950년 12월 북한군과 중공군이 매서운 겨울 바람을 몰고 서울을 향해 남하했다. 시민과 군인들은 서둘러 서울을 빠져나갔고 거리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만 남겨졌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많은 아이들이 굶주림과 추위 속에 영양실조와 질병 등에 시달렸고 하루하루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그 때 이 아이들을 살리는 믿을 수 없는 ‘세 번의 기적’이 일어난다. 1950년 12월 20일 전쟁고아와 보호 인력 등 1074명이 미 공군 수송기를 타고 김포에서 제주도로 이송된 이른바 ‘유모차 공수작전(Operation Kiddy Car)’이다.

첫 번째 기적은 ‘의인 등장’이었다. 미 공군 장교이자 군목(목사)이었던 러셀 블레이즈델은 1·4 후퇴를 앞두고 철수 명령이 내려졌지만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상부의 철수 명령을 잠시 미루고 보호소를 만든 뒤 서울 곳곳을 돌며 전쟁고아들을 모았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 중 하나였던 제주도로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고민했다. 제주행 배편을 기대하고 아이들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인천항에 도착했지만 남겨진 배는 폐선뿐이었다. 바닷가 겨울 바람은 면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6·25 전쟁, 믿을 수 없는 세 번의 기적

모두가 포기를 생각할 무렵, 두 번째 기적인 ‘대형 수송기’가 나타났다. 수소문 끝에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미 제5공군 작전참모 로저스 대령이 김포공항에 대기중이던 16대의 C-54 수송기를 찾아낸 것이다. 조건은 단 하나, 김포공항까지 15시간 내에만 도착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겨우 한 대뿐인 트럭으로 1000명이 넘는 인원을 김포공항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두가 피난길에 오른 탓에 추가 운송 수단을 찾는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블레이즈델은 여기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밤새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며 수송차량을 찾아 헤맨 끝에 마지막 세 번째 기적을 만난다. 시멘트를 옮기기 위해 남아 있던 미국 해병대 트럭 14대를 발견한 것이다. 김포공항 도착 시간까지 불과 4시간이 남아 있는 시점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2시간여 늦게 도착한 김포공항에는 수송기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전은 정식 군 작전은 아니었지만 한 인간의 간절한 인류애가 세 번의 기적을 만들고 1000여명의 생명을 살린 전쟁 역사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후 블레이즈델은 명령 불복종과 미 공군 수송기 사용 문제 등으로 군 감찰을 받고 군사재판에 회부되는 고통을 겪는다. 다행히 중형 처벌로 이어지지 않고 타 지역 전속 조치 수준에서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진다.

자칫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이 기적 같은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민주·인권의 도시 광주의 역할이 컸다. 1949년 박순이 선생이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설립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동복지시설 중 하나인 충현원이 그 중심에 있다. 충현원은 6·25 전쟁 전후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젖먹이 고아를 보호하기 위해 건립됐는데 초기에는 선교사의 지원을 받아 운영됐다고 한다. 6·25전쟁 이후에는 보호와 정착, 입양까지 이어지는 복지사업을 전개했고 현재는 당시 역사를 기록하는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양림동 충현원을 찾아가면 블레이즈델 동상을 비롯해 여러 참전용사들이 기증한 조형물과 해외입양 한인을 상징하는 다양한 전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충현원은 또 블레이즈델 대령이 2007년 5월 1일 세상을 떠난 이후 매년 추모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 현충시설 지정 기대

블레이즈델과 충현원의 오랜 인연은 6·25 전쟁고아와 맞닿아 있다. 블레이즈델은 6·25 전쟁 이후에도 고아들을 돌볼 시설을 찾던 중 2005년 미국에서 열린 ‘미군 병사와 한국 아이들’ 사진전시를 계기로 충현원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충현원의 설립 정신에 깊이 공감한 그는 한국전쟁고아 관련 자료를 기증했다.

블레이즈델은 또 전쟁고아의 이야기가 단순 기록에 그치지 않고 이후 삶까지 함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자신의 회고록 판권을 충현원에 넘겨달라는 유언도 남겼다. 미국 내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연구자들은 이 같은 충현원의 역사를 전쟁고아 보호에서 해외 입양, 사후 관리까지 이어진 대표적 연구 사례로 평가하고 있으며 지금도 충현원과 다양한 교류·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국내에서 충현원이 관할 자치단체 등에 의해 단순한 아동복지시설로 여겨진 탓에 아직까지 현충시설로 지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참혹한 전쟁 속 기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광주 충현원이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돼 블레이즈델의 인류애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공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박진표 기자 luc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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